오늘 경기는 중반까지 멋진 투수전의 정석을 보여준 경기였습니다. 올러와 아빌라의 맞대결이었는데, 둘 다 오늘 공이 너무 좋더라고요.
아빌라는 실투가 거의 없었고, 올러는 오늘만큼 변화구(슬러브, 체인지업, 커브)가 잘 꺾인 날이 있었나 싶을 정도로 손끝 감각이 좋아 보였습니다. 변화구가 잘 감겨서 그런지 오늘 평소보다 직구 구사율은 낮춘 대신, 변화구로 SSG 타선을 완벽하게 압도했죠.

올러의 실점도 운이 따르지 않은 실점이었죠. 1사 이후에 올러 천적 정준재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정준재가 2루로 가는 걸 막기 위해서 평소답지 않게 올러가 신경전을 벌였고, 0볼 2스트라이크라는 유리한 카운트를 선점한 이후에 포수가 송구하기 편하게 바깥쪽 빠른 공이 들어갔는데, 한준수의 송구가 좋지 못해서 정준재가 2루에서 세이프가 됩니다.(최원호 해설은 한준수랑 친한가? 송구 안 좋았는데 왜 칭찬을?)
그리고 올러 상대로 안 좋은 박성한이 바깥쪽 낮게 잘 떨어진 올러의 체인지업에 타이밍을 완벽하게 빼앗겨서 방망이만 갖다 댔는데, 이 타구가 하필 올러의 키를 살짝 넘기며 적시타가 됐죠. 참 운이 안 좋았다고 할 수밖에 없는 실점이었어요.
그런데 올러 공이 6회에는 좀 안 좋긴 했습니다. 첫 타자 안상현에게 맞은 타구부터 잘 맞은 타구였고, 1사 1루 상황에서 에레디아(오늘 감 진짜 좋아 보였습니다.)가 친 타구가 힘이 실려서 좌중간 가르는건가 싶었는데 김호령이 좋은 수비를 보여주면서 위기에서 벗어났죠.
투구 수만 보면 7회에 올라와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긴 했는데, 6회에 실투가 많아지긴 해서, 교체 타이밍은 나쁘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아빌라는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참 좋은 투수네요. 가장 큰 장점은 ‘실투가 거의 없습니다.’ 특히, 변화구가 밋밋하게 들어가는 게 거의 없고,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움직임이 심하네요. 아빌라가 시즌 시작부터 SSG와 함께 했으면 SSG 상대로 이렇게 우위를 가지긴 어려웠을 것 같습니다.

KIA 쪽으로 게임이 풀리기 시작한 건 아빌라가 마운드에서 내려오면서부터죠. 8회 첫 타자 김호령이 전영준의 빠른 공을 밀어 내며 안타로 출루합니다.
그리고 타석에 들어 선 박재현이 평소답지 않은 침착한 자세로 1구와 2구를 고른 이후, 빠른 공에 타이밍을 두고 있다가 하이 패스트볼이 들어오니까 냅다 강한 스윙을 했고, 이 타구가 우측 라인 선상에 떨어졌죠.
타구가 워낙 깊숙했기에 1루 주자 김호령이 여유 있게 홈에 들어올 수 있었고, 박재현은 3루로 뛰다가 아웃됐는데, 두 가지 점에서 판단이 아쉬웠습니다. 첫 번째는 무사에 상위 타순으로 연결되는 상황이었기에 2루에서 머물렀어도 괜찮았다는 점이에요. 안전지향으로 주루를 했어야죠.
두 번째 판단 미스는, 2루에서 한 번 멈춘 겁니다. 차라리 처음부터 SSG에서 홈 승부를 할 거라고 생각하고 3루까지 뛰었으면 슬라이딩 안 하고도 3루에서 살았을 겁니다.
그런데 이 두 가지 모두 ‘경험 부족’에서 비롯된 문제라고 생각해요. 제가 계속 이야기하는 부분이지만, 박재현은 이제 프로 첫 시즌이고, 재작년까지 고등학생이었습니다. 올해도 이런 주루 플레이를 하면서 몸으로 깨우치는 과정이라고 봐야죠.
게다가 박재현은 바로 실수를 만회했죠. 10회 첫 타자로 나와서 문승원의 잘 떨어진 포크볼을 노렸다는 듯이 걷어 내는 스윙을 하는데, 롯데 레이예스 보는 줄 알았습니다. 그리고 이번에는 지체 없이 좋은 판단으로 1루에 멈춘 게 아닌 2루까지 달려서 끝내기 승리에 발판을 디뎠습니다.
박재현의 가장 큰 장점이 여기에 있어요. 실수를 해도 주눅들지 않는 다는 것. 그리고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 박재현은 아마 야구 안 하고 회사 생활했어도 잘 했을 겁니다. 직장인의 가장 큰 덕목이 뭡니까. 실수는 누구나 할 수 있지, 실수로부터 배워서 성장의 영양분으로 삼는 것. 박재현은 이걸 20살이라는 나이에 벌써 해내고 있습니다. 회사 생활 했어도 아마 귀여움을 많이 받는 신입사원 막내 역할 했을 것 같아요.
10회 박재현이 2루타를 친 덕분에 정현창은 당연히 번트. 그리고 SSG에서도 3루는 주자는 전략으로 수비를 했고, 김도영과 카스트로는 당연히 거르고 나성범이 대주자 박정우로 바뀌었으니 만루 작전을 했죠. 이건 모든 감독들이 그렇게 했을 당연한 선택입니다.
살짝 다른 이야기지만, 저는 나성범을 빼지 않았더라도 만루 작전을 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김도영은 리그 최고 타자이고, 카스트로는 컨택이 좋아서 인플레이를 만들 수 있는 능력이 출중한 타자죠. 반면, 나성범은 컨택은 그리 좋은 선수가 아니니, 아마 나성범이 있었더라도 감독들 중 절반 이상은 만루 작전을 했을 것이라고 봅니다.
아무튼, 박정우가 타석에 들어섰는데, 스퀴즈를 하기엔 홈 포스 아웃 상황이라 쉽지 않고 박정우는 파워가 너무 없어서 외야 플라이를 날릴만한 타격을 하는 선수가 아니라 쉽지 않을 거라고 봤는데, 박정우가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문승원의 빠른 공을 강하게 컨택해서 끝내기 안타를 만들어 냈죠.
정상 수비였으면(그런데 그 상황에서 전진 수비는 당연한 겁니다.) 병살타로 이닝이 끝날 수도 있었던 상황이었지만, 타구 자체는 잘 맞았습니다. 100% 빠른 공이 올 거라고 생각하고 스윙을 했던 게 좋은 결과로 연결됐죠. SSG 입장에서도 박정우가 빠른 공에 늦은 걸 봤으니 변화구 던지기엔 애매했을 겁니다. 폭투 확률도 있었고, 타이밍 앞에서 맞으면 뜬공이 나올 수 있었을 테니까요. 그러니 빠른 공으로 승부를 했죠.

오늘 경기 대체로 투수들은 잘 해줬지만, 딱 1명 정해영이 안 좋았죠. 앞서 이의리도 공포의 11시 포심이 나오며 선두 타자를 출루시켰고, 고등학교 친구에게 결정적인 2루타를 맞아 실점 위기까지 갔지만, 그래도 변화구 제구가 잡힌 덕분에 삼진 3개로 스스로 위기를 벗어났으니 잘 했다고 해주고 싶습니다.
1점 지고 있었던 경기였지만 비로 연이틀 쉬었고 내일 하루 경기하면 휴식일이라 불펜을 아낌없이 투입할 수 있는 상황. 그래서 아낌없이 투입했는데, 10회에 정해영이 당첨! SSG 상대로 워낙 안 좋았기에 우려섞인 시선을 봤는데 한유섬에게 맞은 안타는 재수가 없었죠. 그런데 유인구를 더 확실하게 떨어뜨렸어야 했습니다.
그리고 안상현이 번트를 시도하니까 몸쪽 하이패스트볼 던져서 번트 대기 어렵게 하려 했는데 하필 이 공이 안상현의 헬멧 창에 스치면서 헤드샷 퇴장. 다만, 볼질 하다 맞은 것도 아니고 안타나 사구도 운이 안 따랐기에 막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무사 1, 2루 상황에서 올라 온 투수는 김범수. 아, 이렇게 경기를 내주게 되는 구나 싶었는데, SSG에서는 정준재에게 번트를 지시했고 이 타구가 김범수 정면으로 갔습니다. 사실, 3루 승부가 쉽지 않은 상황이었는데, 김범수는 과감하게 3루로 던졌고 베이스에 닿는 2루 주자의 손 끝과 김범수의 공을 받은 정현창의 글로브 완전 포구가 동타임이라 원심인 아웃이 그대로 유지되면서 큰 위기를 넘겼습니다.
최원호 위원도 지적했지만, 이때 정현창은 1루 송구를 생각하면서 팔을 당기면서 포구를 할 게 아니라, 1루수인 것처럼 포구를 했어야 하죠. 하지만 정현창도 박재현이랑 동기죠. 둘 다 이러면서 배우는 게 있다고 생각합니다.
여전히 계속된 위기에서 최근 안 좋은 조상우가 올라왔는데 이지영이 나쁜 공에 자꾸 방망이가 나오면서 조상우를 도와줬고 오늘 감이 좋은 에레디아가 타석에 들어와서 쉽지 않을 거라고 봤는데 유리한 카운트에서 던진 슬라이더가 정말 좋은 위치에서 떨어지면서 에레디아의 방망이를 유인해내는 데 성공했습니다. 승리 투수의 자격이 충분했던 조상우의 좋은 공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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