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KIA의 목표는 '우승'도 아니고 '5강'도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올해 KIA의 목표는 주전이 아니었던 선수들이 성장하며 팁의 뎁쓰를 두텁게 하는 것에 있다고 봅니다. 그래서 전 올해 승패에 초연한 편입니다. 지더라도 어쩔 수가 없어요. 2024년 우승 멤버 중에서 무려 5명(최형우, 박찬호, 최원준, 이우성, 장현식)이 다른 팀으로 떠났으니까요. 한국시리즈 엔트리가 30명이었으니까 6분의 1이 물갈이 된거죠.(주축은 아니었지만 서건창과 한승택도 타팀 이적)
그래서 마운드에서 올러와 네일이 호투하고 타선에서는 김도영이 홈런을 치고, 김선빈이 적시타를 쳐서 이기는 경기보다 오늘처럼 황동하가 7이닝을 무실점으로 던지고 풋내기 리드오프 박재현이 4타수 4안타에 쐐기 2점 홈런을 치고, 하위 라운드에 지명된 외야수가 프로 첫 안타를 타점을 올리는 2루타를 쳐서 이기는 오늘 같은 경기가 참 기분 좋은 승리입니다. 미래에 대한 희망찬 기대를 할 수 있으니까요.

황동하, 증속의 성공과 결정구의 발견
그동안 황동하는 부침이 있는 모습을 보였지만, 나이를 감안해야 합니다. 아직 02년생입니다. 게다가 황동하가 엄청난 기대주도 아니고 2022년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에 지명된 투수입니다. 명문고를 나온 것도 아닙니다. 황동하가 나온 인상고는 전라북도 정읍시 신태읍에 있는 작은 학교입니다. 10년이라는 짧은 역사에서 프로 배출 선수가 넷 밖에 없습니다. (박제범, 전희범, 황동하, 양가온솔. 이 중 박제범과 전희범은 현재는 프로 팀 소속이 아님)
이런 작은 학교에서 1군 마운드에 오르는 것부터가 대단한 성과죠. 처음 황동하가 마운드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그냥 흑마구에 변화구를 자주 섞어 던지는 투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작년부터 구속에 상승을 보였습니다. 아래는 황동하의 연도별 포심 평균 구속입니다.

2024년과 2025년 사이에 무려 2km/h 이상을 끌어 올렸습니다. 최고 구속도 많이 올랐죠. 147km/h까지 던집니다. 하지만, 올 시즌 황동하가 개인적으로 더 놀라운 부분은 최근 2경기 선발로 나와서 던졌음에도 평균 구속이 시즌 초보다 더 붙었다는 점입니다. 보통 불펜 투수들이 선발로 나와서 던지면 구속이 떨어지기 마련인데, 황동하는 지난 롯데전에서 4이닝 동안 70개의 공을 던지며 올 시즌 두 번째로 높은 평균 구속인 145.3km/h를 기록했고, 오늘도 145km/h의 평속으로 올 시즌 등판 경기 중 3번째로 높은 평속을 보였습니다. (가장 높은 평균 구속을 기록한 경기는 4월 19일 두산전으로 145.5km/h)
오늘 근무 때문에 야구를 제대로 보지 못해서 방금 다시보기로 봤는데, 오늘 황동하 투구에 있어서 개인적으로 가장 인상적이었던 장면은 7회에도 포심에 힘이 있어서 김현수의 타이밍이 늦는 장면이었습니다. 한계 투구수에 다다랐음에도 불구하고 포심 구속이 7회에도 크게 떨어지지 않았어요. 7회에 포심을 8개 던졌는데 145km/h 미만의 포심은 단 1개도 없었습니다. 이는 바꿔 말하면 황동하는 선발로 뛸 수 있는 '체력'을 갖췄다는 의미입니다.
황동하가 7회에 안타를 많이 맞은 이유는 포심의 힘이 떨어져서가 아니라 악력이 떨어져서인지 오늘 잘 들어갔던 포크볼이 계속 존 가운데에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오늘 특히, 포크볼의 움직임이 좋았는데 우타자 몸쪽으로 파고 드는 움직임을 보이는 포심의 움직임과 비슷한 위치에서 떨어지는 포크볼의 조합으로 많은 삼진을 잡았죠. 다시 말하면 '피칭 디자인'이 완성된 모습이었습니다.

직전 시즌까지 황동하의 주무기는 슬라이더였습니다. 슬라이더의 움직임이 좋아서 결정구를 항상 이 슬라이더로 썼죠. 그런데 올해 슬라이더가 밋밋하게 들어가면서 홈런을 많이 허용했습니다. 슬라이더가 제대로 안 떨어지면 홈런 치기 가장 좋은 구종이죠. 그래서인지 올 시즌 황동하의 포크볼 구사비율은 19.3%를 기록하며, 커리어에서 가장 높은 수준인데, 포크볼의 피안타율이 .211 밖에 되지 않습니다. 작년에는 포크볼의 피안타율이 무려 .435. 그 전해에도 포크볼 피안타율이 .247를 기록하며 슬라이더(.238)보다 높았고요.
시즌 전 프리뷰를 작성할 때, 황동하에 대한 내용을 쓰면서 황동하의 장점은 선발과 불펜을 모두 오가며 스윙맨 역할을 할 수 있는 투수이고, 단점은 황동하가 3선발을 뛰는 상황이면 팀 마운드가 무너진 것이라고 적었는데, 지난 롯데전과 오늘 KT전을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최근 2경기에서 황동하의 선발 마운드에서 피칭을 보면, 3선발 역할을 충분히 하고도 남을 것 같습니다. 물론, 오늘과 같은 피칭을 계속 유지를 해야겠지만요.
어쩌면, 처음부터 황동하에게 맞는 옷은 '스윙맨'이 아니라 '붙박이 선발'이었는 지도 모릅니다. 오늘 상대가 약한 타선도 아니고, 현재 리그에서 가장 정확한 타격을 하는 타선이었습니다. 게다가 삼진 수가 적었으면 '운빨'이라고 할 수도 있겠는데, 삼진을 무려 8개나 잡았고 그 와중에 볼넷은 단 1개도 내주지 않았어요. 당일 투수의 피칭 퀄리티를 판단할 수 있는 게임 스코어만 보면, 에이스의 게임 스코어입니다. (찾아보진 않았습니다.)
황동하가 오늘과 같은 피칭을 앞으로도 꾸준히 보여주면, KIA의 가장 큰 약점은 '국내 선발의 부족한 기량'을 보완할 수 있습니다. 올 시즌 마운드의 열쇠는 이의리가 쥐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처음부터 황동하를 선발로 써야 하지 않았나 싶네요.
황동하가 선발 마운드에 안착하면서 김태형을 키울 수 있는 시간이 더 늘었죠. 오늘 2이닝을 무실점으로 마무리 한 김태형도 좋은 투수이지만, 아직 변화구를 스트라이크 존에 넣는 수준까지 완성되지 않았기에 시간이 조금 더 필요합니다. 김태형은 오늘처럼 10일에 한 번씩 선발 마운드에 올리거나, 충분한 휴식일을 주면서 가비지 이닝을 던지게 하면서 천천히 키워야죠. 어차피 양현종 다음을 생각한다면 그리고 이의리의 군 입대를 생각하면 선발은 미리 미리 육성 로드맵을 짜야 합니다.

박재현, 갈수록 발전이 눈부시다.
개막하고 현재까지 KIA에서 가장 눈부신 활약을 하는 선수를 꼽자면 박재현이네요. 작년 모습만 보고 도무지 1군에 있으면 안 될 선수라고 봤는데, 1년 만에 완전히 다른 선수가 됐습니다. 타석에서나 수비를 볼 때나 미숙한 모습이 너무 많이 나왔는데, 스펀지처럼 능력이 업그레이드 되고 있네요.
오늘 타격할 때 가장 인상적인 부분은 낮은 코스의 변화구를 배럴 타구로 만드는 스킬입니다. 첫 타석부터 오원석의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몰리긴 했지만, 좌타자들이 가장 치기 어려운 구종이죠)를 걷어 올려서 정타를 치더니, 6회 주권의 체인지업을 제대로 노리고 퍼올려서 홈런을 만들어 내더라고요.
수비(오늘 수비는 좀 아쉬웠지만), 공격, 주루 모든 부분에 있어서 확실한 발전이 보입니다. 스탯도 많이 끌어 올렸죠. 타율 .313에 OPS .791, WRC+ 110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딱, 하나 아쉬운 부분이 출루율인데 .345의 출루율은 톱타자로 쓰기엔 부족한 출루율이죠. 아직은 타석에서 덤비는 모습이 더 강합니다.
하지만, 이 선수 나이를 생각해야죠. 이제 고졸 2년차 야수입니다. 고졸 2년차가 이런 모습을 보이는 것도 쉽지 않아요. 프로 2년차부터 자기만의 스트라이크존을 만드는 것은 보통의 재능이 아니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올해 박재현이 지금의 성적을 유지할 가능성은 개인적으로 그렇게 높게 보지 않습니다. 하지만, 내년에는 올해보다 더 좋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충분히 되고도 남네요. 박재현의 톱타자 기용은 '임시방편'이라고 생각했는데, 이 정도면, 올 시즌 끝날 때까지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밀어줄 가치는 있어 보입니다. 많은 공들을 보면서 성장하고, 지금 KIA 타선의 가장 큰 고민인 톱타자 공백을 잘 해결해줬으면 좋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오늘 한승연의 타격도 인상 깊었습니다. 아직 다듬어야 할 부분은 많지만, 1군 무대에서 쫄지 않고 '삼진을 많이 먹더라도 강한 타구를 날리자'는 스탠스로 스윙을 하는 모습이 굉장히 인상적이었어요. 이범호 감독에게 실망하는 부분이 많지만, 오선우나 한승연을 보면, 타격 코치로서 능력은 있다고 생각합니다. 일단 '삼진을 두려워하지 말라'는 스탠스로 타자들을 키우고 있으니까요.
전, 타자들의 삼진이 많은 걸 부끄러운 기록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타석에서 강한 스윙으로 빠른 타구를 보내는 건, 타석에 선 타자에게 부여된 제일 첫 번째 임무라고 생각합니다. 노림수를 갖고 타석에 들어서서 자기가 노린 공이 들어와서 강한 스윙을 하면 분명히 좋은 결과가 나오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삼진을 줄이라는 식의 지도자들의 언질은 구시대적이라고 생각함)
아무튼, 황동하가 올 시즌 선발 로테이션에 안착을 한다면. 박재현이 올 시즌 톱타자로 시즌 끝까지 완주한다면. 성영탁과 정해영이 올 시즌 리그 최고의 불펜 원투 펀치로 활약해준다면. 올해 KIA는 우승을 하지 못 하고 가을야구를 하지 못 하더라도(외국인 타자까지 받쳐주면 가을 야구도 가능할 지도?) 허투루 보내는 시즌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지난 2년간 잃어 버린 자원이 너무 많습니다. 이제 뎁쓰를 다져야 할 시기입니다.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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