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요인
김건국 대 김건우. '김건' 맞대결이었는데 이름 두 글자만 같지, 한 선수는 30대 후반, 한 선수는 20대 중반. 그리고 한 선수는 좌완, 한 선수는 우완이라서 이름 두 글자 말고는 대척점에 있는 선수들이었죠.
오늘 경기는 구원진의 4.2이닝 1피안타(이마저도 내야안타) 무실점이 승리의 가장 큰 원동력이 됐지만, 임시 선발을 롤을 맡고 등판한 김건국이 4.1이닝을 2실점(4피안타 2사사구)으로 막아준 것이 승리의 주춧돌이 됐다고 생각합니다.
시즌 초에 KIA 상황이 안 좋을 때 가비지 이닝을 나이 많은 김건국이 소화하는 것에 대해 강하게 비판한 적이 있었는데, 그 비판이 미안할 정도로 최근 두 번의 등판에서 결과가 너무 좋습니다. 양현종 다음의 베테랑 투수로서 팀에 정말 큰 역할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연봉 값은 이미 하고도 남았다고 생각해요.
오늘 SSG 김건우는 흡사 이의리의 피칭을 보는 듯 하더군요. 140km/h 후반의 빠른 공과 좋은 체인지업을 앞세워서 KIA 타자들을 상대했는데 가운데 몰리는 공은 거의 없고, 대부분의 공들이 보더라인에서 놀았습니다. 그 결과 김건우 상대로 4이닝 동안 안타 1개 치는 데 그쳤지만, 볼넷은 6개나 얻어 냈죠.
하지만 김건우는 공략하지 못했어요. 치기 좋은 공이 하나도 안 왔습니다. 오히려 김건우의 볼들이 까다로웠는데, 볼넷을 6개나 골라 낸 타자들의 집중력을 칭찬하고 싶어요. 그 덕분에 김건우에게 더 이상 말리지 않고 5회 이전에 마운드에서 내려보낼 수 있었으니까요.
박성한의 2루타와 희생플라이, 그리고 에레디아의 홈런 한 방으로 끌려 가고 있던 경기였는데 김건우가 내려가고 5회에 박찬호와 위즈덤의 연속 안타와 최형우의 볼넷, 그리고 앞 두 타석에서 김건우의 변화구에 삼진을 당했던 오선우가 풀카운트에서 좌투수 박시후의 변화구를 타이밍을 잃었음에도 뱃 컨트롤로 2타점 적시타를 때렸죠. 잘 맞은 타구는 아니었는데 운이 따랐습니다.
결승타는 오늘도 고종욱의 몫이었습니다. 이창진이 부진한 틈에 좌익수 5번으로 나와서 오늘도 삼진 없이 어떻게든 타구를 인플레이 시키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기어코 올 시즌 최고의 불펜투수 중 한 명인 이로운의 공을 공략해서, 중전 안타를 때렸죠.
고종욱의 타구는 맞는 순간에는 안타라고 생각했는데 쉬프트가 걸려 있어서 박성한의 정면으로 가는 듯 했는데, 타구가 스핀을 강하게 먹은 덕분에 박성한의 글러브를 스치며 결승타가 됐습니다. 역시 운이 따랐고, 결승 득점을 올린 박찬호도 잘 맞은 타구가 박성한의 정면으로 갔는데, 그게 글러브 끝에 맞으면서 안타가 되면서 결승 득점의 시발점이 됐습니다.
시즌 초와는 너무나도 달라진 불펜진
오늘 투수들이 정말 잘 던져줬죠. 김건국은 3이닝 2실점만 해도 괜찮은 피칭이었는데 무려 5회까지 올라와서 마운드를 지켜줬습니다. 그리고 최지민, 전상현, 조상우, 정해영이 올라왔는데 SSG 타자들은 2루 베이스도 못 밟았고, 단 1명만을 출루 시키는 데 그쳤어요. 그 마저도 박성한의 빗맞은 내야 안타였고요.
투수들도 잘 했지만, 수비도 든든했죠. 외야수들은 실수 없이 모든 타구를 처리해줬고, 내야에서는 박찬호가 종횡무진 활약하면서 넓은 수비 범위와 강한 어깨를 통해 호수비를 여러 차례 했습니다. 고명준의 내야안타처럼 아쉬운 순간도 있었지만 보통의 유격수들이라면 그런 타구는 잡아내지도 못 했을 거에요. 일요일에 조금 쉰게 박찬호에게도 도움이 된 게 아닐까 싶습니다.
투수들 이야기로 돌아와서, 시즌 초에 KIA가 부진한 이유는 김도영의 부상도 부상이었지만, 곽도규가 빠지면서 헐거워진 불펜진의 부진이 가장 컸죠. 아래는 올 시즌 월별 KIA 구원진의 성적입니다.(괄호 안은 리그 순위)
4월과 5월에 키움 다음으로 리그에서 구원진 성적이 가장 안 좋았는데, 6월에는 SSG 다음으로 구원진 ERA가 좋습니다. 다만, 많은 볼넷으로 WHIP과 피OPS 순위는 중위권이긴 했어요. 시즌 전체로 보면 여전히 키움 다음으로 구원진이 안 좋고요.
시즌 초에 구원진이 헤맬 때 저는 긍정적으로 본 게 '삼진율'이었습니다. 불펜투수들의 구위가 망가졌으면 그때는 진짜 위기이지만, 삼진율은 준수해서 구위는 살아 있다고 봤거든요.
그리고 세부 스탯에 비해서 ERA가 좋게 나오는 이유는 전 '경험'에서 찾고 싶습니다. 한 시즌을 보내면서 꾸준한 경기력을 유지하는 건 정말이지 너무 힘든 일입니다. 특히, 등판이 잦은 불펜투수들은 더 그래요.
그런데 지금 KIA 구원진의 주축인 전상현, 조상우, 정해영. 이 세 명의 투수들은 구원투수로 경험이 리그 최고 수준으로 많은 선수들이죠.(정해영은 아직 20대 중반인데!) 정해영은 리그 최연소 세이브 기록을 갈아 치우고 있고, 전상현은 타이거즈 홀드 역사를 새로 썼으며, 조상우는 데뷔 해부터 마무리, 셋업 등 가리지 않고 나오면서 정말이지 많은 경험을 쌓은 베테랑들입니다.
KIA 구원진의 구위가 다른 팀에 비해서 부족할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경험 만큼은 그 어느 팀과 비교해도 떨어지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이런 경험들이 세부 스탯이 별로인 와중에도 '승리를 지켜주고 있다'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지나치게 긍정적이고 낙관적인 해석이지만요.
하지만 야구라는 게 '숫자'가 모든 걸 보여주는 것은 아닙니다. '숫자'는 과거의 발자취이지, 미래의 지표가 되진 않습니다.(물론, 미래의 지표가 된다는 주장도 존중합니다.) 그리고 숫자로 보이지 않는 것들을 지금 KIA의 구원 투수들이 보여주고 있다고 생각해요.
최지민, 이제는 믿어도 되나?
곽도규가 시즌 아웃 되면서, 최지민의 역할이 정말 중요해졌습니다. 프로 2년차인 20살 시즌에 59.1이닝을 던지며 2.12의 ERA를 기록했고(다만, 운이 많이 따른 ERA라고 생각합니다.) 국대에서도 좋은 피칭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지난해 46이닝 동안 탈삼진보다 볼넷이 더 많은 최악의 피칭(46이닝 40볼넷 37탈삼진)을 하면서 부진에 빠졌고, 올해도 29이닝 동안 29볼넷으로 볼넷율은 더 나빠졌습니다. 그래도 제가 최지민의 단점으로 꼽는 빠른 공에 비해 부족한 탈삼진 능력은 어느 정도 향상시키긴 했어요.(K/9 8.07 커리어 하이)
시즌 기록만 보면, 여전히 최지민은 믿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6월에 최지민은 11이닝을 투구하면서 ERA 3.27, 피안타율 .211, 피OPS .651 그리고 11개의 탈삼진을 잡으면서 곽도규가 해 준 역할의 65% 정도는 해주고 있습니다. 여전히 8개의 볼넷을 내주면서 제구력면에서는 아쉬움이 있지만요.
최지민은 마운드에서 단순하게 생각했으면 좋겠어요. 빠른 공과 체인지업이라는 좋은 무기가 있는데, 너무 완벽하게 던지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제가 생각하는 최지민의 가장 큰 장점은 '장타 억제 능력' 입니다. 최지민은 커리어 140.1이닝을 투구하는 동안 피홈런을 9개 밖에 안 맞았습니다. 9이닝 당 피홈런이 0.62개에 불과합니다.
이렇게 강한 공을 던지는 데 왜 자꾸 피해만 가는 지 모르겠습니다. 지금보다 피홈런 수치가 더 올라가도 좋으니, 정면 승부 적극적으로 했으면 좋겠어요. 개인적으로 오늘 KIA 투수들이 던진 공 중 가장 멋진 공은 앞 타석에서 홈런성 2루타를 친 안상현을 풀카운트에서 헛스윙을 유도해 타석에서 주저 앉힌 최지민의 슬라이더였습니다.
최지민만 6월의 피칭을 시즌 끝까지 유지해주면, 곽도규의 공백은 그리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남은 시즌 오늘 같은 투구를 꾸준히 보여주면서 팬들과 코칭스태프의 신뢰를 더 얻어냈으면 좋겠어요. 그런 구위를 가지고도 남은 투수이니까요.
내일은 이도현과 김광현의 매치업이네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길 수 있는 매치업이 아닙니다. 2023년 드래프트에서 7라운드에 지명된 이도현(당시 1라운드는 윤영철)의 올 시즌 2군 성적은 ERA 8.94, 피안타율 .349, 49.1이닝 동안 볼넷(41)이 탈삼진(34) 많은 프로 선수라고 볼 수 없는 기록입니다.
하지만 위에도 언급했지만, 기록은 모든 걸 설명해주지 않죠. 아마 가장 최근 피칭을 통해 선수가 어느 정도 자리 잡았다고 코칭스태프에서는 판단한 게 아닐까 싶어요. 실제로 가장 최근 등판이었던 6월 18일 삼성과의 경기에서는 6.2이닝 동안 4피안타 2볼넷 5탈삼진 0실점으로 아주 훌륭한 피칭을 했습니다. 아마 이 경기 덕분에 1군 선발로 내세운 게 아닐까 싶어요.
이도현이 내일 어떤 투구를 할 지 잘 모르겠습니다. 지금 알려진 정보는 빠른 공을 던질 줄 안다는 게 전부에요. 그냥 마운드에서 쫄지 말고 존에 적극적으로 자기가 가진 투구를 최선을 다해 던져줬으면 싶습니다. 3이닝만 2실점으로 막으면 성공이라고 생각해요. 그 다음에는 경기가 팽팽할 때는 성영탁, 조금 기울어졌을 때는 김민주와 이호민을 활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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