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IA에 유리할 수밖에 없는 서스펜디드 선언
KS에서 강우 콜드 승패는 없다는 원칙은 이해합니다. 강우 콜드란 건 어찌됐든 긴 정규시즌 스케줄 소화를 위해서 시행하고 있는 제도이기 때문에 포스트시즌에 강우 콜드로 승패를 결정하는 건 부조리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죠. 그렇다면, 더더욱 우천 시에 경기 개시에 대해 신중한 판단을 했어야 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냥 KS 1차전은 월요일에 할 게 아니라 날씨 좋은 수요일에 하는 게 맞습니다.
1차전 비가 아리까리하게 온 것도 아니고, 경기 개시부터 계속 내렸고, 방수포도 3번이나 다시 깔았음에도 경기를 강행한 건, 누가 뭐라고 해도 역대 최악 수준을 다투는 KBO 행정력의 극치를 보여줬죠. 그리고 이 판단 때문에 KIA는 승리하고도 찜찜한 기분을 지울 수 없게 되었습니다. KIA 타선이 원태인 스스로 극복할 수 있는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능력을 갖춘 타선인데(압도적인 리그 1위 타선이니까요.), 그럴 기회 조차 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래서 결론적으로 '서스펜디드 때문에 1차전 KIA가 잡았다'는 평가는 들을 수밖에 없습니다.
삼성의 두 번의 아쉬운 선택
서스펜디드 이야기는 여기서 마무리하고 6회 무사 1, 2루 상황에서 개시된 오늘 상황만 놓고 보자면, 삼성이 추가점을 뽑을 수 있는 굉장히 좋은 기회였고, 전상현도 오랜만에 등판이라 초반에 제구가 흔들릴 수 있었는데, 김영웅이 너무 쉽게 번트를 댔고, 너무 좋지 못한 번트가 나왔죠. 삼성 주자들이 모두 느린 주자들(디아즈, 강민호)였고, 김영웅은 잡아 당기는 좌타자라서 컨택만 되면, 1사 2, 3루 상황은 충분히 기대할 수 있습니다.
다만, 박진만 감독이 김영웅에게 번트를 지시한 건, 삼진이 많은 김영웅의 컨택 능력을 믿지 못 해서라고 밖에 볼 수 없는데, 그럴 거면 김영웅을 빼고 번트 경험이 많은 선수를 대타로 썼어야죠. 김영웅은 올해 번트 시도가 1번 밖에 없었다고 합니다. 물론, 6회였기에 김영웅을 빼기란 쉽지 않았을테지만, 그럴거면 그냥 강공 시도 하는 게 나았죠. 결과도 최악이었고, 시도 자체도 의문이 많았던 결정이었습니다.
삼성에서는 원태인 다음에 (좌완) 이승현이 나왔습니다. 이승현은 정규시즌에도 KIA 타선을 상대로 강한 모습이었고, 경기 개시 시점이 묘해서 그런 지, KIA 타자들이 이승현의 빠른 공과 변화구에 전혀 대응이 안 되었어요. 커브에 컨택 조차 버거워했고, 커브가 부담스러우니 히팅 포인트를 뒤에 두니까 빠른 공에도 스윙이 계속 늦었습니다. 소크라테스, 김도영, 나성범 모두 다 스윙이 늦었어요.
전 이승현이 마운드에 있는 한, KIA가 점수 내기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봤어요. 게다가 이승현은 올 시즌 사실상 선발투수로 뛰었기에 9회까지 다 뛸 수도 있었죠. 염경엽 감독이 에르난데스로 끝까지 밀어 붙인 것처럼, 박진만 감독도 이승현으로 끝까지 밀어 붙이는 게 어땠을까 싶습니다. 그런데 박진만 감독은 아직 1차전이라서 그런지 몰라도 볼넷을 내주자 이승현을 마운드에서 일찍 내렸죠.
문제는 올해 KIA 타선은 삼성 불펜 상대로 굉장히 좋은 타격을 보였다는 점입니다. 김태훈은 KIA 상대 성적이 좋았지만(피OPS .600) 임창민(KIA전 피OPS 1.065), 이상민(KIA전 1.065), 김재윤(KIA전 .836) 모두 KIA 상대로 큰 재미를 보지 못 했죠. 가장 나빴던 선수는 오승환이지만, 엔트리에 없고. 암튼, 오죽하면 이범호 감독이 인터뷰로 우리가 삼성 불펜은 잘 공략했다고 했을까요. 그만큼 KIA 타자들은 삼성 불펜 상대로는 자신감이 있었을 겁니다. 그런데 뜬금없는 물량 작전을 선택한 게 결과적으로 좋지 못 했습니다.
박진만 감독의 계산을 엇나가게 한 3번의 실수
다만, KIA 타선이 안 좋았던 것도 사실이긴 하죠. 원태인과 이승현의 공이 워낙 좋기도 했지만, 한가운데 들어오는 빠른 공에 계속 스윙이 늦는 걸 보면, 선수들 경기 감각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순 없을 겁니다. 그리고 실제로 임창민이 삼성에서 실수만 아니었으면 7회를 잘 막았을 거에요. 문제는 실수가 나왔다는 점이죠.
무사 1루에서 이범호 감독은 최원준에게 번트가 아닌 강공을 지시했습니다. 무사 2루 상황도 아니고, 무사 1루 상황에 하위 타선으로 연결되니 굳이 번트를 댈 필요가 없기도 하죠. 최원준이 발 빠른 좌타자니까 병살 가능성이 적기도 하고, 그런데 최원준은 타구를 굴린 게 아니라 타구를 띄웠습니다. 타이밍은 좋았는데, 완전히 먹힌 타구였죠.
문제는 윤정빈의 타구 판단 능력이었죠. 어찌보면 이게 원정 경기의 어려움인데(라팍으로 갈 KIA 수비진도 마찬가지) 1년에 고작 8번 뛰는 구장에서 수비하기란 굉장히 어렵습니다. 펜스 맞고 어디로 튈 지 알기도 어렵고, 챔피언스 필드는 관중 친화적으로 지어져서(이게 당연한 거죠) 외야수는 낮경기(?) 때 해를 보고 수비를 해야 하니까 타구를 놓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가끔 KIA 선수들도 이런 실수를 하는데, 원정팀 외야수는 더 하죠. 여기에 수비가 좋다는 평가를 못 받는 윤정빈이었으니 더더욱. 그래서 평범한 플라이가 될 타구가 안타가 되면서 무사 1, 2루가 됩니다. 첫 번째 실수 발생.
하지만 KIA도 여전히 답답한 모습을 보였죠. 특히, 서건창이 문제였는데 베테랑 답지 않게 그라운드에서 완전히 얼어 있습니다. 월요일 경기 완전 평범한 송구를 놓친 것도 그렇고, 오늘 번트 수비에서도 콜 플레이가 안 되어서 하마트면 타자 주자까지 다 살려줄 뻔 했죠. 그래도 타석에서 만회하면 됐는데, 타석에서 좀처럼 좋은 타구를 못 만들어 냈습니다. 이렇게 되면 남은 경기에서도 서건창을 쓸 요인이 사라지는 거죠.
2사 2, 3루. 타석에는 1번이지만, 사실은 9번을 쳐야 할 박찬호라서 점수를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던데다가, 임창민의 포크볼이 오늘 따라 너무 좋더라고요. 그렇게 변화무쌍하게 포크볼을 던지는데, 어떻게 치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포크볼을 지나치게 구사했던 탓이었을까요? 아니면, 더 완벽한 포크볼을 던져야 된다는 압박감 때문이었을까요. 박찬호 상대로 3-1에서 던진 포크볼이 정말 말도 안 되는 궤적으로 떨어졌고, 이게 동점 점수가 됩니다. 그리고 이 점수는 KIA 타선에게는 정말 큰 자신감이 되었을 거에요. '어, 안 쳐도 이길 수 있겠구나'
여기서 끝났으면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는데, 소크라테스 상대로 던진 초구에 또 말도 안 되는 폭투가 나왔죠. 이 공은 심지어 포크볼 그립도 아닌 걸로 봤습니다. 이게 바로 큰 경기가 주는 스트레스나 긴장감이 아닐까 싶은데, 임창민 같은 베테랑이 이런 실수를 하는 것도 참 이례적이었습니다. 서건창도 그렇고, 임창민도 그렇고, 선수 경력이 오래된 게 중요한 게 아니라 큰 경기를 얼마나 많이 뛰었느냐가 더 중요한 것 같아요.
여튼 상대에서 3번의 실수가 나오니까 KIA 타선이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존에 들어오는 스트라이크를 놓치지 않고 소크라테스, 김도영, 김태군까지 차근차근 적시타를 치면서 점수를 뽑아냈습니다. 큰 경기에서 망하는 것 중 하나가, 지나치게 좋은 공을 치려다가 한가운데 공도 놓치는 경우인데, 후반부 KIA 타선은 동점이 만들어지자마자 타석에서 확실히 자신감 있게 배트를 돌렸고, 이게 모두 좋은 결과가 되었죠.
푹 쉰 KIA 불펜 압도적인 구위로 상대 타선을 막아 내다.
월요일 경기 장현식 공 보면서 망했다 싶은게, 구속이 145km/h를 간신히 상회하더군요. 장현식은 불펜에서 150km/h에 육박하는 공을 던지는 투수입니다. 그런데 구속이 뚝 떨어져 있으니, 공도 안 좋고, 볼도 날리고... 전 김영웅 나올 때 바로 곽도규로 바꿨어야 한다고 봤어요. 그런데 그대로 승부를 갔고, 초구 볼 던지고 서스펜디드 선언. 앞서도 이야기했지만, KIA에겐 큰 전환점이 된 결정이었죠.
6회말 무사 1, 2루에서 누가 나올까, 전 곽도규라고 생각했습니다. 삼진 능력을 갖춘 선수이고, 김영웅은 삼진이 많은 좌타자이니까요. 게다가 번트를 댈 거라곤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범호 감독의 선택은 불펜에서 가장 믿을 수 있는 투수인 전상현이었습니다. 아마, 곽도규는 경험이 많지 않아서 이 프레셔를 이겨내기 어렵다고 본 것 같고, 6회말 무사 1, 2루 상황이 1차전에서 가장 중요한 상황이라고 생각한 것 같아요. 그래서 전상현을 투입.
김영웅 번트는, 그냥 타자 미스이고. 박병호가 타석에 들어섰는데, 3구째 슬라이더가 완전히 행잉으로 들어 온 실투였어요. 박병호가 올해 이런 변화구를 걷어 내서 홈런 치는 걸 많이 봐서 궤적만 보고 망했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서스펜디드의 영향 때문인지 방망이가 늦게 나오더군요. 이게 헛스윙이 되면서 전상현이 위기를 넘겼고, 4구째 빠른 공을 존 안에 넣으면서(헛스윙으로 표기됐는데 헛스윙 안했어도 삼진) 고비를 넘겼죠.
윤정빈에게 볼넷을 내주면서 위기가 계속 이어졌지만, 이재현을 상대로 빠른 공만 3개 우겨 넣으면서 유리한 카운트 잡고, 결정구로 던진 슬라이더가 존에서 잘 떨어지면서 평범한 투수 땅볼로 위기를 넘겼습니다. 이 투구부터 KIA에게 이길 흐름이 되었죠.
7회 류지혁의 타구가 실책이 되면서(박찬호 입장에선 억울할 수 있는 게, 이건 투수 글러브 맞아서 역회전이 걸려서 내야 안타라고 봤는데 왜 실책을...) 또 위기가 되었고, 서건창이 콜 플레이 미숙으로 김지찬을 살려줄 뻔 했지만, 역시 전상현이 침착하게 서건창을 밀어내고, 정확한 송구로 아웃 잡아낸 이후에 KIA 전 악마인 김헌곤을 상대로 유리한 카운트 잡은 다음에 4구째 포크볼을 정말 딱 김헌곤이 속기 좋은 위치(바깥쪽 낮게) 정확하게 던지면서 큰 위기를 넘겼습니다.
하지만, 디아즈도 감이 좋아 보였죠. 전상현 투구 수도 누적되고 있는 상황이라 어려운 승부라고 봤는데, 여기서 곽도규를 투입합니다. 곽도규는 올해 왼손타자 상대로 저승사자와 같은 투수입니다. 좌타자 상대로 피안타율이 .182 밖에 안 되고, 구위가 워낙 좋아서 올해 피홈런 3개에 좌타자에게는 1개 밖에 안 맞았어요. 좌타자 상대 31.2이닝 동안 삼진은 무려 37개 잡아냈고요. 딱 봐도 좌타자가 치기 어려운 팔 각도에서 공이 나오죠. 정말 치기 쉽지 않습니다. 그리고 기대대로 감이 좋은 디아즈마저 삼진으로 잡아내면서 위기를 벗어납니다.
전상현 대신 곽도규를 낸 선택은 기록만 보면 당연히 해야 할 선택입니다. 올해 디아즈는 우투 상대로는 .320 타율과 .925의 OPS를 기록하고 있지만, 좌투 상대로는 .200의 타율과 .688의 OPS로 좌투수에게는 약했습니다. 물론, 스몰샘플이긴 하지만, 그래도 100타석 넘게 나온 기록이라서 마냥 무시할 수 있는 기록은 아니죠.
곽도규는 8회 강민호 상대로 볼질을 하며 위기를 맞이했지만, 그냥 구위로 밀어 붙여서 강민호, 박병호 두 명의 힘 있는 우타자를 잡아냈습니다. 라팍이었다면 더 신중하게 던졌겠지만(실제로 박병호 타구는 라팍이었으면 넘어갔을 가능성도 있었죠) 라팍이 아닌 홈런 중립 구장 챔필이니까 더 자신있게 던졌을테고 그게 좋은 결과로 이어졌어요. 다만, 라팍에서 경기할 때는 더 신중하게 던질 필요는 있습니다. (참고로 라팍에서 투수전은 무리라고 보고 우리도 열심히 쳐야 한다고 봐요.)
정해영도 9회 올라와서 그냥 구위로 밀어 붙였죠. 정규시즌에서 홈런 맞은 윤정빈을 포심만 던져서 잡아냈고, 마지막 류지혁도 포심이 좋은 타이밍에 맞아나갔지만, 외야 정면으로 끝납니다. 이게 구위 좋은 투수가 유리한 이유에요. 큰 경기에서는 그냥 구위로 밀어 붙여야 합니다. 임창민이 포크볼에 집착했다가 폭투 2개 나온 것과 반대의 결과라고 할 수 있죠.
선발 투수 매치업에서 원태인과 네일이라는 팽팽한 맞대결이었는데, KIA가 1차전을 잡아내면서 유리한 지점을 쌓긴 했습니다. 여기에 부담스러운 라팍 원정이 두 번 밖에 없다는 점도 KIA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부분일 수 있죠.
2차전도 결국, 타선이 얼마나 해주느냐에 달린 것 같습니다. 양현종이 좋은 피칭을 해주면 좋겠지만, 초반에 좀 안 좋다 싶으면, 김도현, 황동하, 김기훈 등이 빠른 타이밍에 등판할 가능성도 있고요. 이범호 감독이 양현종이 초반 흔들릴 때 어떤 선택을 할 지도 지켜봐야할 부분 같네요. 물론, 양현종이 무실점 피칭을 해주는 게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이지만요.(5회만 무실점으로 막아 주길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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