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요인
오늘 경기 유일하게 불안했던 건 라우어의 1회 제구 난조 뿐이었고, 두 팀 다 백업 멤버 위주로 붙었는데 KIA 백업이 조금 더 강했습니다. 여기에 NC에서 수비 불안이 대량 실점으로 연결됐죠. 이 장면만 봐도 백업 멤버가 1군에서 활약하려면 수비가 기본이 되어야 한다는 걸 느낄 수 있었네요.
라우어의 경우, 1회 출발은 별로였지만, 2회부터는 컨트롤을 잡았고, 그 이후에는 산발적인 안타를 맞긴 했어도 연속 안타나 볼넷 남발은 없었습니다. 다만, 전반적으로 1회보다 제구가 나아졌다지만, 우타자 몸쪽 제구가 잘 안 되면서 고전을 했네요. 라우어가 한국시리즈에서 통하려면 우타자 몸쪽에 공을 넣을 줄 알아야 합니다. 이걸 잘 하는 게 키움 헤이수스에요.
올해 전문가들이 예상한 퇴출 1순위 외국인 투수였던 헤이수스가 리그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선발투수가 된 이유는 별거 없고, 그냥 몸쪽 포심입니다. 아래는 라우어의 올 시즌 포심 탄착지점.
보면, 우타자 몸쪽 포심이 존에 안 들어가고 죄다 땅에 박히는 걸 알 수 있죠. 오늘도 이런 공들이 굉장히 많았습니다. 한국시리즈 때 라우어의 포심이 우타자 몸 쪽 스트라이크존에 들어간다? 그러면 커터도 사는 거고, 이거 안 되면, 고전할 확률이 매우 큽니다. 한국시리즈 활약 여부에 따라 재계약도 갈릴 것 같고(하지만 한국시리즈에서 잘 던지면 메이저리그 복귀할 듯. 잘 던지기만 하면 웃으면서 메이저리그 보내줄 수 있음), 일단은 1차전 네일, 2차전 양현종, 3차전 라우어 순으로 선발 로테이션을 가지고 가지 않을까 싶네요.
라우어에 대한 이야기는 여기까지 하고, 오늘 인상적인 활약을 보여 준 백업 선수들 이야기로 글 마무리 하려고 합니다.
윤도현(21세), 파워를 증명하다.
시즌 마지막 타석에서 전사민의 슬라이더 실투를 놓치지 않고 좌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프로 데뷔 첫 홈런을 때려 냅니다. 빠른 공 타이밍에 스윙을 했는데 변화구가 들어오는 바람에 한 손을 놓아서 타이밍을 맞췄는데 스윗 스팟에 맞으면서 홈런이 되었죠. 컨택과 파워의 재능을 느낄 수 있었던 장면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전에도 언급했지만, 윤도현은 타석에서 단순하게 생각하면 됩니다. 빠른 공 타이밍에 스윙을 준비하고, 변화구 실투가 오면 장타로 연결한다는 생각으로 스윙을 가져가야죠. 변화구를 골라내는 건 그 다음 스텝입니다. 상대 투수가 잘 던진 변화구에 헛스윙 하는 건 당연한거고, 이러면서 성장하는 거에요. 당장에 변우혁을 보세요. 프로 6년차인 올해 들어서 변화구를 조금씩 골라내면서 성장하고 있습니다. 윤도현은 고작 1군 28타석 소화했습니다.
현 시점에서 윤도현의 한국시리즈 엔트리 포함을 논하는 건 무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상 들어갔다고 봐야하고, 아마 한국시리즈에서는 대타 자원으로 활용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주력을 보니, 생각보다 다리가 빠르더라고요. 아마 대주자 요원으로도 활용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물론, 우선순위는 박정우 같은 선수겠지만, 박정우는 현 시점에서 한국시리즈 엔트리 포함 여부를 장담할 수 없으니까요.
윤도현 개인에게 불운한 건, 소속팀이 'KIA 타이거즈'라는 점입니다. 내야수 자원이 부족한 팀이었으면 내년 시즌 시작하자마자 입에서 피 토할 때까지 주전으로 뛰었을 겁니다. 그런데 KIA는 올해 좋은 뎁쓰를 바탕으로 성적을 올린 팀이고, 2루수 김선빈, 3루수 김도영, 유격수 박찬호라는 주전이 확고하죠. 장기적인 커리어는 윤도현이 박찬호, 김선빈을 넘을 수 있다고 생각하지만, 당장 내년 성적이 누가 좋을까 물어보면 김선빈, 박찬호를 제치는 건 프로 통산 30타석도 소화 못 한 윤도현에겐 굉장히 어려운 일이죠.
그래도 이범호 감독이 연습 경기 때부터 밀어줬던 선수라서 부상만 없다면, 1군 무대에서 수비 주루에서 심각한 하자만 없다면, 내년 시즌엔 붙박이 1군 멤버로 뛸 수 있어 보입니다. 일단, 시즌이 거듭될수록 수비 범위가 좁아지고 있는 김선빈의 체력 안배용으로 얼굴을 자주 비칠 것 같고, 김도영에게 휴식을 주고 싶을 때나, 박찬호가 불의의 부상으로 빠질 때(아무리 생각해도 내야 수비의 핵심 박찬호는 부상 아니면 안 빠질 듯) 그 자리에 들어오거나 하는 식으로 기용될 가능성이 크죠.
아니면 현재 KIA는 1루수 주전이 확고하지 않기 때문에 이범호 감독이 윤도현의 방망이 재능을 높이 산다면 1루수 주전으로 밀어줄 가능성도 있어 보이지만, 이건 아무리 생각해도 2루수, 3루수를 소화할 수 있는 윤도현의 재능 낭비고, 1루 자리는 변우혁, 이우성, 황대인 무한 경쟁 체제로 가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정 답답할 때 생각해볼 수 있는 게 윤도현의 1루 기용 같아요. 아니면 고승민처럼 외야수로 뛰다가 나중에 내야수로 오는 방법도 생각해볼 수 있지만, 이것도 가능성은 매우 낮죠.
참고로 이범호 감독이 올 시즌 시범경기 때 밀어줬던 백업 선수가 윤도현, 박정우 두 명이었습니다. 윤도현은 2군 성적도 별 게 없었는데(부상으로 제대로 경기를 못 뛰었으니) 계속 중심타선으로 기용했고, 박정우도 1998년생이고 더 이상 2군에서는 보여줄 게 없는 선수라 적극적으로 기용했죠. 솔직히, KIA에서 선수 생활하고, 타격 코치 하고, 2군 감독 하면서 쭈욱 선수들의 잠재력을 지켜 본 이범호 감독이었기에 윤도현을 이렇게까지 애지중지했다고 생각합니다. 이게 바로 내부 승격의 선순환 같네요.
팬들이야 입버릇처럼 감독은 외부에서 수혈해야 하고, 특히 외국인 감독이 KBO에 더 맞다고 하지만, 윌리엄스를 겪은 저는(아직도 일부에서는 윌리엄스를 고평가하는데 제가 경험한 감독 중 서정환, 유남호 다음으로 무능력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선수가 부족했다고 해도 유민상, 김태진 4번 타자로 기용하는 감독이 무슨 선수 재능을 볼 줄 안다고...) 감독이라면 팀 내부 사정에 밝은 사람이 되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이를 잘 보여준 사례가 올해 이범호 감독이라고 생각합니다.
윤도현이 한국시리즈에서 어떤 활약을 할 지 모르겠습니다. 일단, 주전으로 나오지 않고 대주자/대타 자원으로 주로 기용이 될 것 같은데 한국시리즈 같은 큰 무대에서도 좋은 활약을 해줄 수 있을 지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 같네요. 그리고 내년 드디어 풀 시즌을 치르는 윤도현의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팬들에게는 큰 기쁨이 될 것 같습니다.
변우혁(24세), 무주공산 1루수 주인?
오늘 변우혁은 2타수 2안타 1볼넷의 대활약을 하면서 3할대 타율로 2024시즌을 마무리했습니다. 비록 규정타석은 소화하지 못 했지만, 187타석을 소화하며 타율 .304 / 출루율 .369 / 장타율 .470 / OPS .839 / WRC+ 119.6 을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 시즌을 기록했습니다.
오늘 특히 인상적이었던 부분은 불리한 카운트에서 컨택 스윙으로 상대 투수의 변화구를 우측으로 안타를 만들어내는 장면이었습니다. 타격 기술이 상당히 올라온 느낌이 들었고, 홈런에만 의존한 스윙이 아닌 교타자 스러운 모습을 보여주더라고요. 마지막 타석에서도 몸쪽 잘 붙은 145km/h 투심을 힘으로 안타로 만들어내는 등, 컨택에서 확실히 나아진 모습이었습니다.
시즌 전 KIA 야수 포지션에서 가장 구멍인 포지션은 '1루수'였죠. 황대인이 껍질을 깨지 못 하면서 작년에 사실상 주전이 없었고, 변우혁도 지난해는 226타석을 소화하며 OPS .664에 그쳤습니다. 그래서 이우성이 외야수 글러브를 포기하고 1루수로 전환했는데 공수에서 모두 작년만 못 한 성적을 기록했죠. 이우성은 외야수로 다시 돌아가는 게 맞고, 1루수는 아무리 생각해도 변우혁의 자리라고 생각이 듭니다.
변우혁이 1루 수비를 어마어마하게 잘한다는 느낌은 덜 하고, 역시 경험 부족을 노출할 때가 많지만, 185cm, 95kg의 덩치를 자랑하는 선수라서 내야수들에게 좋은 타깃이 될 수 있죠. 여기에 오늘 김두현의 바운드 송구를 잡아내는 멋진 포구를 보여주기도 했습니다. 수비 경험이 부족할 뿐, 하드웨어 측면에서 변우혁은 1루 다른 경쟁자에 비해서 월등히 나은 면이 있죠. 내년에는 주전 1루수로 올해와 비슷한 성적을 남기면 큰 성공이 될 것 같고, 최형우 은퇴 이후를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이우성도 평생 해보지 않은 1루 수비에 대한 부담이 컸을 텐데 올해 결과만 놓고 보면 그 부담을 극복하지 못한 모양새가 됐죠. 내년에는 이우성은 다시 외야수로 나가서 주전 경쟁을 펼쳐야 하고, 최원준이 좌투수에 대한 약점을 극복하지 못 한다면 이창진과 함께 이우성도 플래툰으로라도 기회가 꾸준히 갈 겁니다. 다만, 이우성은 올해 왼손투수에 더 약한 게 함정(우투 OPS .803 / 좌투 OPS .677)
김두현(21세), 박찬호 백업? 박민? 홍종표? 윤도현? 김도영? 나야 나!
박찬호가 득녀로 경조휴가를 받자, 그 자리를 채워 준 선수는 1라운드 박민도, 올해 박찬호 다음으로 유격수 수비이닝이 가장 많았던 홍종표(81이닝)도 아닌, 그리고 김도영도 아닌, 김두현이었습니다. 전 이 선수가 올라왔다고 할 때 정말 의외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1라운드면, 진짜 팀에서도 큰 기대를 안 거는 선수였으니까요.
김두현이 올라 온 이유는 별 거 없습니다. '퓨처스에서 수비를 가장 잘한다'는 평가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포수와 유격수는 수비가 기본이 되어야 하고, 기본이 되지 않으면 1군 무대에서 쓸 수 없습니다. 이름값으로 선수를 기용했다면, 당연히 유격수 수비를 보고 1라운드로 뽑은 박민이 되었을텐데, 이름값이 아니라 당장 수비 실력만 듣고 올린 선수가 김두현이죠. 위에도 적었지만, 이것도 이범호 감독이 2군 감독을 해봤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현장의 판단을 적극적으로 수용한 결과라고 생각해요.
김두현은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최하위순번인 11라운드 106번째로 지명된 선수입니다. 2군 성적은 솔직히 보잘 것 없습니다. 93타수 23안타 타율 .247에 불과했고, OPS도 .657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수비가 좋아서 수비력에서 절대적인 신임을 받고 있는(실제로 실력도 그만큼 갖췄고) 박찬호가 빠진 자리를 1순위로 채워줬고, 비록 그 경기에서 실책은 저질렀지만 경험 없는 선수가 하기 어려운 글러브 토스로 아웃 카운트를 잡는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죠.
오늘도 실책 하나 저지르긴 했지만 애초에 포구 조차 힘든 타구였고, 불안한 자세에서 나온 적극적인 수비였기 때문에 마냥 탓할 수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가장 좋았던 장면은 7회였나 땅볼 타구 바운드가 갑자기 죽었는데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1루에 비록 약했지만, 정확하게 바운드 송구를 하는 수비 센스였습니다. 그리고 비록 안타가 되긴 했지만, 아래와 같은 멋진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죠.
포수와 유격수는 공격력보다 수비력이 중요합니다. 홍종표나 윤도현 둘 다 프로에서는 송구 문제 때문에 유격수보다는 2루수가 적합하다는 평가를 들었고(물론, 이 둘이 유격수 불가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훈련으로 극복할 수 있죠.) 김도영은 이제 3루수가 자기 자리라고 봐야죠. 박민은 현장에 신뢰를 받지 못 하는 느낌입니다. 실제로 올해 1군 올라왔을 때 1경기 3실책을 저지르기도 했고... 그래서 김두현이 뚝 하고 튀어 나왔는데, 11라운드 지명된 선수 치고는 굉장히 인상 깊은 활약이죠.
타석에서도 맥 없이 물러나지 않습니다. 무엇보다도 1군 6타석에서 삼진이 하나도 없고, 퓨처스에서도 93타수에서 삼진이 16개 밖에 안 됩니다. 김호령이 퓨처스에서 OPS .911을 치고 있지만, 117타수 38삼진이라는 점 때문에 여전히 1군에서 1할 타율을 벗어나지 못 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그래도 컨택은 기대해볼 수 있는 건덕지가 있다고 보이네요.
그리고 위에도 언급했지만, 김두현은 수비만 잘 해도 1군에서 살아남을 수 있습니다. 지금 팀에 박찬호 의존이 너무 큰데, 김두현이 내야 백업에서 박찬호의 체력적인 이슈만 덜어줘도 박찬호도 FA를 앞두고 더 좋은 성적으로 더 좋은 대우를 받을 가능성도 크고, 혹시 모를 박찬호 타팀 유출(냉정하게 박찬호의 로열티가 금전보다 큰 게 아니라면 타팀 이적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판단됩니다. 롯데, 두산, 한화, 키움처럼 주전 유격수가 없는 팀들에서 무조건 KIA보다 더 주겠다고 하면 못 잡는거죠.)에 대비할 카드로도 활용할 수 있겠죠.
여튼, 변우혁은 당장에 내년 주전 1루수를 노려봐도 될 것 같고, 김두현은 1군과 2군을 오가며 박찬호의 체력적인 부담을 덜어 줄 백업 유격수 역할, 윤도현은 내년에 붙박이 백업 역할을 충분히 소화할 수 있어 보입니다. 팀이 2위와 무려 9경기 차이 압도적인 차이로 우승한 것과 함께, 이렇게 내년을 기대할 수 있는 자원까지 발굴해냈다는 점에서 2024년 KIA는 참 얻은 게 많은 한 해가 되지 않았나 싶네요. 그냥 생각대로 다 이루어진 2024 정규시즌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남은 건 이제 딱 하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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