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요인 - 투수들의 호투
오늘 경기는 양 팀 모두 투수들의 피칭이 좋았습니다. KIA 안타 5개에 1볼넷, KT 안타 3개에 6볼넷 등 인플레이 상황 자체가 거의 안 나왔어요. 실점도 실책이 끼어서 발생했죠. 윤영철은 4회 김도영의 실책, 벤자민도 3회 본인과 김상수의 실책으로 점수를 줬습니다.
윤영철은 5이닝 동안 안타를 3개 밖에 안 맞았고, 볼넷 2개, 삼진 5개로 리그에서 좌투 상대로 가장 좋은 타격을 하는 KT 타선을 완벽하게 막았습니다. 5회에 나온 김도영의 야수 선택만 아니었다면, 6회까지 소화할 수 있었는데, 그 점이 아쉽네요.
오늘 윤영철에게 가장 큰 위기는 4회에 찾아왔는데, 강백호의 1-2루간 타구를 서건창이 제대로 포구하지 못 하면서 선두타자 출루를 내줬고, 런 앤 히트가 걸렸다지만 장성우의 타구를 잘 잡았으면 병살도 가능했는데, 김도영이 그 타구를 뒤로 흘리면서 무사 1, 2루가 됐습니다. 이어서 문상철이 불리한 카운트에서 윤영철의 낮은 변화구를 잘 골라내며 무사 만루 상황이 됐죠. 타석에는 김민혁이 들어섰고, 슬라이더 5개를 연거푸 던져서 풀카운트 상황에서 던진 몸쪽 빠른 140km/h 포심이 유격수 박찬호 정면으로 가면서 병살로 1실점만 해 위기를 넘길 수 있었습니다.
윤영철은 빠른 공의 위력이 떨어지긴 하지만, 그래도 안 쓸 수가 없죠. 오늘도 적절할 때마다 던진 빠른 공이 위기를 넘기게 했는데 무사 만루에서 병살로 1실점 이후 황재균을 루킹 삼진으로 돌려 세운 공이 몸쪽 낮게 잘 들어간 포심이었고, 2사 이후 로하스의 내야 안타(이건 서건창의 수비가 좋았는데 아쉽게 됨) 이후 강백호 타석에서 풀카운트 이후에 역시 139km/h 하이 패스트볼로 강백호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 세운 장면이 오늘 경기 가장 멋진 순간이었습니다.
그리고 팬들은 윤영철에게 '커터'를 장착한 게 잘못되었다고 평하는데, 적어도 지난 두산전과 오늘 KT전에서는 커터가 아주 적절하게 잘 들어갔습니다. 5회 신본기와 김상수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 세운 구종이 커터이기도 했고요. 윤영철의 구종별 피OPS를 보면, 커터의 피OPS가 .789를 기록하며 포심(.905)에 비하면 훨씬 낮습니다. 위력이 떨어지는 포심을 뒷받침하는 역할을 해주고 있는 것으로 보여요.
오늘 깔끔한 피칭을 하면서, 윤영철은 2경기 연속 좋은 피칭을 했습니다. 최근 2경기 성적은 10이닝 0자책 8피안타 5볼넷 9탈삼진으로 볼넷 허용이 많은 것 빼면 괜찮은 성적입니다. 그리고 그 중심에는 커터를 자기 것으로 만든 모습이 포함되어 있고요. 포심의 경쟁력이 없는 윤영철이기에 구속을 더 못 올리는 상황에서는 구종 추가 말고 탈출구가 없긴 합니다. 더 정교한 커맨드, 더 다양한 구종 구사야 말로, 윤영철이 KBO 1군에서 버틸 수 있는 무기가 될 수밖에 없죠.
전상현, 이보다 더 좋을 순 없다.
아래는 KIA 불펜투수진의 월별 ERA와 피OPS입니다. (괄호 안은 리그 순위)
3월만 좋았지, 4월부터는 냉정하게 리그 중하위권 수준의 불펜입니다. 승리계투조와 패전조의 차이가 커서라는 말도 있지만, 5월에는 최지민, 장현식, 전상현이 모두 크게 흔들렸죠. 정해영도 세이브 성공률만 높았지, WHIP이나 피안타율을 보면 상위권 성적이라고 하긴 어려웠습니다. 그런데 최근 전상현이 완전히 좋아지면서 승리계투조가 제법 안정화된 모습입니다.
오늘 경기에서도 장현식, 최지민은 아웃 카운트는 잡았어도 볼넷을 3개나 내주면서 불안한 모습이었는데, 전상현은 3명의 타자 중 2명을 삼진으로 잡는 멋진 모습을 보여줬습니다. 볼넷 하나 내준 것도, 1루가 비었기 때문에 장성우와 어려운 승부를 하려다가 나온 납득 가능한 볼넷이었죠. 적어도 무사에 주자 없는 상황에서 볼넷 내 준 장현식, 최지민보다는 훨씬 낫습니다.
아무튼 경기 후반 가장 큰 위기였던 8회 1사 1, 2루 상황에서 문상철과 오윤석을 상대로 던진 공들은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제구력이 좋았습니다. 아래는 네이버 스트라이크존에 찍힌 투구 결과입니다.
문상철 상대로 던진 스트라이크 3개 보세요. 전부 타자가 치기 어려운 위치에서 형성되었습니다. 특히, 마지막 5구째 슬라이더를 바깥쪽 가장 낮은 쪽에 넣는 제구력은 입에서 절로 탄성이 나왔습니다. 문상철이 오늘 낮은 공을 죄다 골라 내면서 선구안 컨디션이 좋아 보였는데, 투수가 이렇게 던지면 다음 경기 선구안이 흔들릴 수도 있습니다.
오윤석을 상대할 때도 4구째와 7구째 슬라이더가 정말 속기 쉬운 위치에서 떨어졌어요. 그리고 문상철과 마찬가지로 평범하게 들어가는 스트라이크가 거의 없죠. 2구째 포심이 조금 중간에 가깝게 들어갔지, 한가운데 생각 없이 들어가는 피칭이 거의 없었습니다. 오윤석이 7구째 슬라이더에 속은 것도 6구째 포심이 그쪽 코스에서 형성되었기 때문입니다. 6구째 포심 저렇게 넣고, 7구째 슬라이더를 그쪽으로 떨어뜨리면 어떤 타자라도 속을 겁니다.
제가 전상현의 약점으로 꼽는 것 중 하나가 변화구 낙폭이 크지 않다는 점이었는데, 최근엔 슬라이더가 상당히 날카롭게 떨어집니다. 실제로 전상현이 6월 들어 좋아진 배경에는 슬라이더의 무브먼트 회복에 있습니다. 아래는 5월 10일부터 경기에서의 전상현 슬라이더 컨택률입니다.
5월 10일부터 5월 28일까지 모든 경기에서 전상현의 슬라이더 컨택률이 100% 였습니다. 슬라이더의 낙폭과 제구력이 안 좋았다는 소리죠. 아래는 5월 29일부터 6월 15일까지의 슬라이더 컨택률입니다.
5월 29일부터 6월 15일까지 경기를 보면 슬라이더 컨택률이 확연히 좋아진 건 알 수 있죠. 슬라이더가 이렇게 좋은 쪽에서 떨어지기 시작하면서 전상현의 성적도 좋아졌습니다. 지난해 전상현의 슬라이더 컨택률은 67%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5월에 슬라이더가 안 좋은 위치에 형성되면서 75%까지 나빠졌죠. 최근 페이스를 유지하면, 작년의 슬라이더 컨택률까지 떨어뜨릴 수도 있어 보입니다.
오늘 경기 잡은 것은 윤영철과 전상현이 정말 잘 던져줬고, 장현식과 최지민도 볼질은 아쉽지만 안타는 허용하지 않았고, 정해영은 완벽하게 KT 타선을 제압한 덕분입니다. 여기에 멋진 수비도 3개 나왔죠. 3회 선두타자 김상수의 중견수 앞 안타성 타구를 완벽하게 낚아 챈 소크라테스의 호수비(얘는 좌익수로 쓰면 안 될 듯), 오늘 경기 가장 멋진 수비였던 7회 김상수의 타구를 글러브 토스로 병살 처리한 2루수 홍종표의 호수비. 그리고 마지막으로 강백호의 1-2루간 안타성 타구를 다이빙 캐치로 막아 낸 이우성의 호수비까지. 김도영의 좋지 못한 수비 때문에 실점 한 것도 사실이지만, 소크라테스, 홍종표, 이우성의 집중력 있는 수비도 오늘 승리의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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