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요인
지난 번 맞대결에서 7이닝 동안 단 2안타를 치며 쿠에바스에게 꽁꽁 막혔던 KIA 타선이고, 알드레드가 상대하는 KT 타선은 리그에서 좌완 투수 상대로 가장 좋은 공격력(좌완 상대 타율 .292 / OPS .812)을 가졌으며, 알드레드는 전형적인 좌상신 우상바라서 어려운 경기가 될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경기 결과는 11:1의 스코어로 KIA의 완승으로 끝났네요.
승리할 수 있었던 원인은 쿠에바스가 제 컨디션이 아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오늘 쿠에바스는 세게 던지려고 하면 공이 전부 존에서 빠지고, 피칭이 아니라 스로워처럼 던져야 존 안으로 공이 들어갔죠. 그 결과, 쿠에바스 답지 않게 2이닝 동안 6피안타 7사사구 8실점이라는 성적표를 받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KIA 타선은 쿠에바스 공략 이후에 나머지 7이닝 동안 3점 뽑은 게 전부였어요. 그마저도 경기 후반에 터진 나성범의 투런 홈런이었고요.
물론, 이건 KIA 타선 문제라고 탓할 건 아닙니다. 피처가 아니라 스로워였더라도, 2이닝 동안 집중력을 발휘하며 8득점한 건 칭찬해야 할 부분이죠. 쓸데없는 도루 아니었다면 8득점이 아니라 10득점도 가능했습니다. 그리고 초반부터 스코어 차이가 크면, 타석에서 집중력이 떨어지는 건 당연한 겁니다.
최형우, 나이를 잊은 활약
최형우는 83년생 12월 16일생으로, 만 40세입니다. KBO 타자들 중 추신수 다음으로 나이가 많은 선수입니다. 지금 당장 은퇴하더라도 이상하지 않을 나이인데 .287 / .360 / .510 / .870의 비율스탯을 보이고 있습니다. OPS는 지난해(.887)와 비슷합니다. 단, 올해 타고투저가 작년보다 훨씬 심해서 WRC+는 127.2를 기록하고 있네요. 이 수치도 대단한 겁니다. 나이 40세니까요. 그리고 아직 이번 주가 다 가지도 않았는데 9개의 안타, 3개의 홈런, 2개의 2루타, 여기에 13타점을 올리고 있습니다.
팀 내에서도 최형우는 김도영과 이우성 다음으로 활약이 뛰어난 타자입니다. 올 시즌 초만 하더라도 드디어 은퇴할 때가 되었나보다라고 생각했는데, 또 다시 성적으로 증명을 해 내고 있습니다. 제가 시즌 초에 최형우가 나이가 들었더니 왼손 투수의 공에 못 따라가고 있다고 평한 바 있는데, 왼손 투수 상대 성적도 OPS .721로 많이 올렸습니다. 물론, 오른손 투수 상대(OPS .936)할 때의 비해 많이 못 치고 있긴 한대, 시즌 초에 비하면 많이 좋아진 성적입니다.
실제로 5월 이후에 최형우는 왼손투수 상대로 .310의 타율과 .927의 OPS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최형우 선수 스스로도 "나는 왼손 상대할 때가 더 편하다"라고 할 정도로 왼손투수 상대로 약점이 없는 선수였죠. 올 시즌 초만 좀 이상했을 뿐입니다. 뭐, 여기에는 왼손타자 상대로 특별히 강한 투수가 나오면 최형우를 라인업에서 제외하는 배려도 있었지만, 나이 40세에 이 정도 배려는 충분히 받을만 하죠.
최형우가 잘 하고 있으니 오히려 걱정이 듭니다. 어찌됐든 KIA는 최형우 다음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니까요. 최형우가 은퇴하면 나성범이 자연스레 지명타자 자리를 차지하겠지만, 매년 리그 평균보다 1.3배 ~ 1.5배 더 치는 선수를 키워내는 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최형우가 은퇴하면 2군에서 더 보여줄 게 없는 김석환이나 변우혁 그리고 황대인에게 기회가 갈 것 같은데, 이들이 아직 1군 투수의 공을 많이 상대하지 않아서 시행착오를 겪을 수밖에 없죠. 그러니 더욱, 올 시즌 성적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올해 우승을 놓치면 최형우가 빠진 타선으로 시즌을 치를 준비를 해야 하니까요.
알드레드, 우려를 씻는 피칭
오늘 알드레드가 90구를 한계 투구수로 하여 등판했는데, 시즌 첫 등판과 달리 KT 타선을 상대로 5이닝 동안 5피안타 1볼넷 7탈삼진 무실점이라는 매우 좋은 투구를 했습니다. 호투의 가장 큰 힘이 된 건, 역시 2회부터 KIA 타선이 쿠에바스를 두들기며 승부를 사실상 끝내 버렸기 때문이지요. 하지만, 알드레드도 공이 많이 날렸던 1회와는 달리 2회부터는 제구력이 괜찮아졌습니다. 1회 투구만 보곤 AAA에서 9이닝 당 볼넷이 5개에 가까웠던 게 이해가 갈 정도로 투구가 엉망이었는데, 2회부터는 확실히 존으로 잘 들어 가더라고요.
그리고 알드레드의 주무기인 슬라이더(스위퍼)가 확실히 KBO에서는 공략이 어려운 구위이긴 합니다. 특히, 왼손타자는 거의 건드리지 못할 궤도로 들어오네요. 우타자 상대로도 몸쪽으로 들어가니 정타를 만들어내기 어려웠고요. 빠른 공의 커맨드만 잘 이루어지면, 앞으로도 슬라이더의 날카로움을 토대로 많은 삼진을 잡아낼 타입 같고, 오늘은 첫 등판과 달리 내려갈 때까지 140km/h 중후반의 구속을 꾸준히 기록해줬습니다.
하지만, 오늘 잘 던졌다고 해도 걱정이 되는 부분이 있는데, '단조로운 구종'입니다. 스탯티즈 기록을 보니 오늘 알드레드는 포심 21%, 투심 47% 등 빠른 공을 68% 비율로 던졌고, 변화구는 슬라이더 24%, 체인지업 8% 비율로 구사했습니다. 역시 사실상 '빠른 공'과 '슬라이더' 투 피치라고 할 수 있죠.
알드레드 슬라이더의 문제점은 좌타 상대로는 매우 위력적이지만, 우타 상대로는 글쎄다라는 점일 겁니다. 우타 상대로도 좋은 성적을 거두려면, 체인지업이 날카롭게 떨어져야 하는데, 오늘 경기에서도 체인지업은 10개도 안 던졌습니다. 선수가 체인지업 구사에 자신감이 없는 건 아닐까 싶습니다.
구종이 단조로우면 발생하는 문제는 '커트'가 잘 된다는 점입니다. KBO 타자들은 카운트가 몰리면 그때부터 극단적인 커트 스윙으로 바꾸면서, 장타를 포기한 대신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려고 합니다. 선택지가 가위바위보면 커트 비율을 낮출 수 있는데, 가위바위만 던져서는 승부를 끝낼 수가 없죠. 이 단조로운 구종은 나중에 '결정구 부재'라는 치명적인 단점으로 작용할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현재 퇴출 위기에 있는 한화의 산체스를 들 수 있죠.
물론, 알드레드는 산체스보다 변화구 위력이 더 좋다고 생각이 들지만, 산체스보다는 공이 느리고, 산체스보다 제구력이 확연히 낫다고 할 수도 없습니다. 제구력이 안 좋고 구종도 단순하기 때문에 상대 타자들이 극단적인 커트 스윙으로 바꾸면, 파울파울 하다가 볼넷으로 걸어 나갈 수 있어요. 제구력이 좋은 파노니가 이게 안 되서, 작년 후반기에 난타당했는데, 제구력도 좋지 않은 알드레드가 KBO 타자들의 이런 공략법을 어떻게 이길 지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오늘 경기 호투가 마냥 안심이 되진 않습니다. 오늘 경기는 2회부터 승부가 갈려서 KT 타자들의 타석에서의 집중력이 엄청 떨어져 있는 상황이었거든요. 심지어 이강철 감독이 강백호를 3회부터 제외하는 등 체력 안배를 꾀하기도 했죠. 초반부터 긴장감이 떨어져 있는 상태라 오늘 알드레드의 피칭에 마냥 좋은 점수를 주긴 힘들 것 같습니다.
결국, 타이트한 상황에서도 알드레드가 오늘과 같은 제구력을 보여줄 지가 남은 시즌의 관건이 될 듯 싶네요. 제구력이 안정되면 계속 KBO에서 뛸 수 있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6주 뒤에는 다른 선수가 그 자리에 뛸 수도 있어 보입니다.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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