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요인
KT가 강했습니다. 일단, 엄상백 상대로 1회에 3득점을 뽑아내며 빅이닝을 가져간 건 좋았는데, 그 이후에 엄상백의 투구에 철저히 막히면서 추가점을 뽑아내지 못한 것이 1차 패인입니다. 그도 그럴게, KIA는 5연승 동안 상대 선발을 전부 일찌감치 마운드에서 내렸습니다. NC의 에이스 하트 정도만 5이닝을 버티게 했죠.(5득점) 오늘 엄상백 상대로도 초반 3득점을 뽑아내며 다시 선발을 공략하는 모습을 보였지만, 결과적으로 엄상백 상대로 6이닝 6안타 2사사구만 뽑아내는 데 그칩니다.
엄상백은 5월 2일, 지난 KIA 전 등판도 그랬어요. 5이닝 동안 3점을 줬는데, 그때도 KIA가 1회에 선취점을 뽑았고, 2회에 이우성과 한준수의 백투백 홈런까지 나왔죠. 그런데 엄상백은 그 이후에 각성해서 3회부터 5회까지 3이닝 동안 삼진 6개를 잡아내는 엄청난 투구를 했습니다. 오늘도 똑같았어요. 3실점 이후에 홈플레이트에서 움직임이 심한 포심과 커터, 체인지업을 섞어 던지며 KIA 강타선을 완벽히 막았습니다. 특히, ABS존의 구석구석으로 들어가는 제구력이 아주 일품이더라고요. 오늘처럼 던지면 그 어떤 타선이라도 쉽게 공략할 수 없습니다. 초반 3득점도 KIA 타선이 잘했다고 칭찬해줘야 할 수준이고요.
야구의 신이 양현종을 외면한 경기
마운드에서 양현종이 6회까지 버텨줬으면, 7회부터는 푹 쉰 필승계투조를 투입할 수 있었는데, 6회 시작하자마자 양현종 킬러 장성우의 홈런이 나왔고(완벽한 실투였죠. 체인지업이 안 떨어지고 한 가운데...) 아웃 카운트 하나를 잡고, 황재균과 배정대의 연속 안타가 나왔습니다. 사실, 엄청 잘 맞은 타구는 아니었는데, 오늘은 야구의 신이 양현종을 외면했습니다. 실제로 1회 실점도 BABIP 운이 안 따랐죠. 로하스의 선두타자 안타는 빗맞은 안타였으니까요.
제가 일전에 구위가 떨어졌음에도 양현종이 잘 던지는 이유는 스트라이크를 잘 던져서이고, 만약 운이 안 따라서 연속 안타가 나온다면 대량실점이 나올 수 있다고 적은 적이 있는데, 오늘 경기가 그런 경기입니다. 운이 조금이라도 안 따르니 연속 안타가 나왔고, 진짜 운이 안 따라서, 신본기 상대로 던진 초구 포심이 신본기의 발 끝에 맞아서 만루 상황에서 로하스가 나왔죠. 별개로, 오늘 양현종이 가장 못 던진 게 2회에 신본기 상대로 볼넷 내준 겁니다. 다음 타자가 로하스인데, 신본기가 요새 아무리 잘 쳐도 적극적으로 승부했어야 합니다.
양현종이 1사 만루를 만들자, 김도현이 올라왔는데 매우 정상적인 교체라고 생각했습니다. 양현종의 구위가 떨어지던 시점이기도 했고, 곽도규가 엔트리에서 제외된 현재, 그나마 곽도규 역할을 해줄 수 있는 건 김도현이었으니까요. 그리고 김도현이 던진 초구 포심이 실투라고 생각하지도 않아요. ABS존으로 봐도 타자가 가장 대응하기 어렵다는 바깥쪽 높은 코너에 제대로 들어갔는데, 로하스가 강한 스윙으로 밀어쳐서 담장을 넘기고 승부를 결정 짓는 만루 홈런이 됐죠. 그 쪽 코스를 밀어 쳐서 넘길 타자는 로하스, 강백호 정도 말고는 딱히 안 떠오릅니다.
KT가 강했던 이유
7회에 김도영의 투런이 터지면서 다시 2점 차이로 쫓아가긴 했는데, 바로 다음 이닝에서 황재균이 김도현의 실투(타자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행잉 슬라이더)를 놓치지 않고 시즌 2호(???) 홈런을 쳤습니다. 이걸로 더 분위기를 끌어 올리지 못 했는데, 2점 차이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승리계투조를 넣기도 애매하죠. 게다가 5연승 중이었는데, 곽도규도 없는데 굳이 장현식, 최지민, 전상현 등을 투입할 상황은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투수가 홈런을 맞은 건 어쩔 수가 없어요. 볼질을 하거나 연속 안타를 허용하면 그때는 투수 교체를 고려해야 하지만, 홈런 나왔다고 투수를 교체하는 건 성급한 결정이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KT는 로하스가 다 한 경기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만루 홈런도 만루 홈런이지만, 2회 적시타를 칠 때도, 양현종의 몸쪽 바짝 붙는 포심을 정확한 타이밍에 받아 쳐서 따라가는 점수를 쳤고, 수비할 때도 몸을 안 사리더라고요. KT 입장에서는 NPB에서 한 번 망한 로하스 같은 선수를 계속 쓸 수 있다는 게 축복입니다. 쿠에바스도 마찬가지죠. MLB 가기엔 애매하고, NPB에는 안 맞을 것 같고, KBO 최정상에는 계속 뛸 수 있는 '한국형 용병'. KIA의 아쉬운 점이라면 팀 역사상 '로하스', '쿠에바스', '벤자민', '알칸타라', '브랜든' 같은 '한국형 용병'이 단 한 명도 없었다는 점인 것 같습니다. 소크라테스에게 그 역할을 기대하기엔 KBO에서도 약점이 많고요.
그리고 오늘 KT 투수들 구위가 정말 좋더라고요. '어떻게 5점이나 뽑았지?'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엄상백, 김민수, 김민, 박영현 모두 구위가 뛰어 났습니다. 특히, 김민은 개인적으로 타팀 투수 중 가장 탐났던 투수라, 좌완 투수 노래를 불렀던 이강철 감독을 상대로 이준영, 김대유 카드로 적당히 사기 쳐서 영입했으면 좋았을텐데 이제는 절대 영입할 수 없는 자원이 되었네요. 김민의 문제가 제구력이었는데, 오늘 이우성 상대로 3볼 1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스트라이크존으로 연속해서 공 3개 넣고, 풀카운트에서 타자가 속을 수밖에 없는 슬라이더 던지는 거 보고, KT가 또 한 명의 필승계투조를 만들어 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김민의 올 시즌 평균자책만 보고 무시하면 안 될 선수에요. 최근 10경기에서는 10이닝 동안 피안타율이 .225에 불과하고, 가장 큰 문제가 볼넷 허용이 많다는 점이었는데, 10이닝 동안 삼진 12개 잡으면서 볼넷은 2개 밖에 안 줬습니다. 이제 제구 잡혔다고 봐야죠. 투심 패스트볼을 152km/h까지 던지고, 존에서 날카롭게 떨어지는 슬라이더가 있는데, 이제는 KIA가 좌완투수 자원으로 사기 쳐서 데리고 올 수 없는 선수가 되었습니다. 흑흑
반면, 김도현은 오늘 해설이었던 김선우 해설 이야기를 귀 담아 들을 필요가 있습니다. 김도현은 불펜투수 치고는 던질 수 있는 구종도 많고 무브먼트도 괜찮습니다. 보통, 불펜투수들은 빠른 공과 함께 결정구로 삼을 변화구 구종 1개 정도만 더 던지고 마는데, 김도현은 올해 불펜으로만 뛰고 있는데 포심 50%, 커브 18%, 슬라이더 23%, 체인지업 8.5%를 던지고 있어요. 그러다보니, 변화구 실투가 종종 눈에 들어 옵니다. 오늘 황재균 상대로 던진 슬라이더가 대표적이고요. 계속 불펜으로 쓰고 싶다면, 팀에서도 손에 가장 맞는 변화구 하나만 던지게 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이 듭니다. 오늘 김민처럼 말이죠. (김민은 투심 43%, 포심 15%, 슬라이더 38%)
오늘 경기는 엄상백, 로하스의 활약 때문에 이기기 어려운 경기였습니다. 다만, 내일은 선발 맞대결에서 완벽히 우세에 있는 상황이라 절대 놓쳐서는 안 될 경기가 되겠네요. 게다가 일요일에는 쿠에바스가 나오니 더욱 부담입니다. 내일 경기 잡는 데 모든 전력을 다 해야 할 것 같고, 빠른 땅볼 타구가 계속 나오는 네일의 등판이기에 수비 집중력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지난 KT 네일 경기에서도 수비가 무너져서 경기를 내줬으니 말이죠.
아 그리고 오늘 이강철 감독이 경기 초반부터 어설픈 수비를 보인 4번 타자 문상철을 빼고, 왜 인지 모르겠지만, 김민혁까지 경기 초에 빼는 모습을 보였는데, 이강철 감독 보면 참 아이러니하네요. 타선 라인업은 MLB를 따라하면서, 경기 운영은 올드 스쿨 그 자체입니다. 지구상 최악의 야알못 사이트인 엠팍에서는 문상철, 김민혁 뺀 걸로 이강철 감독 칭찬하는데, 그 대신 들어온 오재일이 4타수 무안타(2삼진), 조용호가 3타수 무안타 쳤습니다. 그냥 경기를 더 어렵게 만든 거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닌데, 이걸 고평가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해요. 개인적으로 제가 응원하는 팀 감독은 이런 모습 안 보였으면 좋겠습니다.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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