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경기는 올 시즌 KIA 타이거즈가 가진 타선과 불펜에서의 장점을 아주 잘 보여 준 경기였습니다. 타선에서는 '홈런포', 불펜진에서는 '물량'을 키워드로 꼽을 수 있겠네요.
8회에 정해영이 흔들리면서 위기를 맞긴 했고, 황동하도 많은 주자를 내보내면서 마운드가 잘 막아 준 느낌은 아니었는데, 1회 실점하고 1회말에 카스트로의 동점 홈런이 바로 나오고, 한준수가 결정적인 쓰리런을 날리면서 리드를 잡았고, 끝까지 이 리드는 빼앗기지 않았습니다.
1회 한준수의 쓰리런도 컸지만, 경기를 비교적 쉽게 이길 수 있게 한 건, 2회에 나온 박재현의 투런 홈런이었죠. 몸쪽 벨트 라인으로 들어 온 이교훈의 138km/h 포심을 어렵지 않게 받아 넘겼습니다. 이 홈런으로 박재현은 안치홍 이후로 타이거즈 역대 3번째로 20세 미만 나이에 두 자릿 수 홈런을 친 선수가 됐네요. 앞서 10대에 많은 홈런을 친 선배들(홍현후, 안치홍)의 발자취를 잘 따라가길 바랍니다.
박재현은 올해 성장하고 있으니 당장은 출루율이 낮더라도 써야 합니다. 슬럼프 한 번 겪고 나더니 다시 한 번 성장한 느낌이에요. 타석에서 조금 더 침착함을 유지해주면 좋겠지만, 푹 쉬고 나오더니 결정적인 홈런을 치는 모습을 보면, 향후 20홈런 - 20도루를 꾸준히 기대할 수 있는 좋은 외야수로 성장하지 않을까 기대가 큽니다.

KIA가 올 시즌 팀홈런이 어제까지 105개, 오늘 3개 추가하면서 108개를 기록하며 리그 1위를 달리고 있습니다. 4경기 덜 한 한화가 100개를 쳤으니 사실, 경기당 홈런 수로 따지면 한화가 KIA보다 더 많은 홈런을 치고 있는 팀이라고 봐야겠지만, 한화 팀 홈런 생산에 큰 역할을 하던 강백호가 당분간 이탈하면서 KIA는 잘 하면 2004년 이후 무려 22년 만에 팀홈런 1위를 할 수 있어 보이네요.
다만, KIA도 부상자가 발생하면 안 되겠죠. 아무튼, 마지막까지 한화 또는 SSG와 팀홈런 1위를 다툴 것 같은데, 우승은 힘들어 보여도, 팀홈런 1위는 오랜만이라도 차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오늘 라인업을 당분간 계속 가져갔으면 좋겠습니다. 그럴 리는 없지만, 이범호 감독이 제 리뷰를 봤는 지, 제가 지난 일요일에 올린 라인업을 그대로 활용했더군요. 카스트로가 2번 타순에서 잘 해줬기 때문에 대체로 2번은 카스트로 이름을 박고 시즌을 운영할 것 같아요.
굳이 오늘 경기에서 타선의 아쉬움을 짚어 보자면, 2회까지 나온 홈런 3방 이후에는 추가 득점이 8회말까지 나오지 않았다는 점이죠, 추가 득점 뿐만 아니라 찬스 상황도 별로 없었습니다. 한화에서 계속 투수들 물량 작전을 펼치긴 했는데, 타자들이 전부 홈런을 노리는 건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어요. 불펜투수들을 믿고 지나치게 큰 스윙만을 고집하지 않았나 하는 아쉬움이 살짝 듭니다.

오늘 황동하는 변화구 각이 괜찮은 편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위기에 몰렸지만, 결정적인 상황마다 던진 슬라이더와 포크볼이 존에서 잘 떨어지면서 많은 범타를 만들어 냈죠. 황동하가 잘 던지는 지 못 던지는 지는 두 개만 보면 되는데, 포심 구속이 평속 140km/h 이상 나오는 지, 포크볼이 존에서 잘 떨어지는 지. 이 두 개만 보면 됩니다.
황동하의 포심은 여전히 상대 타자들을 압도할 수준은 아니었고, 오늘 포심 구속이 딱히 좋지도 않았지만, 그래도 꾸준히 140km/h 이상은 나왔고, 이 포심을 바탕으로 노시환을 루킹 삼진 잡아내는 멋진 볼배합도 보여줬어요. 하지만, 황동하의 장기라면 역시 슬라이더죠. 어려운 상황마다 슬라이더를 잘 던져서 위기를 숱하게 넘겼습니다. 포크볼도 오늘 좋은 위치에서 잘 떨어졌고요.
하지만 구위로 상대를 압도하지 못 하다보니, 5이닝을 간신히 소화했고 6회부터 KIA는 무려 6명의 투수를 내보냈습니다. 그리고 성영탁, 정해영 두 명은 투구 내용이 안 좋았고, 곽도규도 구속이 좀처럼 안 나오면서 오늘 안 좋은 날인갑다 싶었죠. 하지만, 김범수, 전상현, 조상우 3명이 이 세 선수의 뒤를 잘 받쳐주면서 승리를 지킬 수 있었습니다.
특히, 오늘 경기 불펜에서 가장 좋은 활약을 한 선수를 꼽으라면 김범수네요. 성영탁이 삼진을 잡지 못 하고 계속 인플레이 타구를 허용하니까 1사 1, 3루 위기에 몰린 상황에서 올라 와 실점 없이 아웃 카운트 2개를 잡아준 게 컸습니다.
실점과 아웃 카운트만 바꿔도 성공이라고 생각햇는데 최인호는 바깥쪽 슬라이더로 3루 팝 플라이로 잡고, 문현빈은 포심만 3개 스트라이크존에 우겨 넣어서 역시 평범한 2루 땅볼(김선빈에게 가길래 괜히 긴장함)로 1점도 주지 않고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김범수 오늘 경기 호투의 밑바탕에는 '포심' 위주의 적극적인 승부에 있다고 봐요. 그동안 너무 잘 하려고 한 건지, 맞지 않으려고 한 건지 몰라도 변화구 남발이 너무 많았죠. 그런데 오늘은 마운드에 올라와서 던진 공 6개 중 변화구는 딱 2개(최인호 상대로 2개) 밖에 없었고, 전부 포심으로 상대했습니다.
솔직히, 김범수의 포심이 계속 위험한 위치로 들어가긴 했어요. 그런데 한화 타자들은 김범수가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삼을 것이라고 생각했는 지, 포심 타이밍을 계속 잃었죠. 그게 오늘 경기 좋은 결과로 연결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오늘 운이 좋아서 그렇지, 포심 커맨드를 조금 더 정교하게 가다듬을 필요는 있어 보입니다.

정해영은 2경기 연속 안 좋았는데 2아웃 잘 잡고 허용한 2개의 안타가 운이 좀 없었죠. 그런데 문현빈 상대할 때는 모든 공들이 자기 의도대로 들어가지 않았고, 결정구 조차 포심이 아니라 어정쩡한 높이의 포크볼이었던 게 문제였다고 봅니다. 올해 정해영 변화구 퀄리티가 좋아지긴 했어도 정해영의 장기는 포심을 존에 넣어서 뜬공을 유도하는 피칭인데, 최근에 이런 피칭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리고 곽도규가 올라 왔는데, 구속이 오늘 너무 안 나오더라고요. 시즌 투심 평균 구속이 145km/h인 투수인데, 대부분의 투심이 140km/h 초반대에 놀았습니다. 후반기 시작하고 투심 평균 구속이 143.5km/h, 141.5km/h, 142.8km/h 등으로 안 좋아졌는데, 곽도규도 아직 경험이 많지 않아서 그런지, 체력적으로 조금 부침을 보이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곽도규는 올 시즌만 잘 보내면 내년에는 더 좋은 투수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 워낙 깡다구도 좋고, 구위가 좋다보니, 체력 관리 팁이나 컨디션 유지에 대한 노하우만 더 쌓으면 한 단계 업그레이드가 되지 않을까 싶고, 지금이라도 저에게 권한이 있다면 성영탁이 아닌 곽도규가 아시안게임 엔트리에 들어가는 게 맞아 보이는데, 그렇다고 지금 와서 바꾸는 것도 이상하죠.
오늘도 9회에 올라 온 가장 마지막 투수는 조상우였는데, 오늘 조상우의 피칭은 성영탁이 많이 배웠으면 좋겠습니다. 전성기 구속에서 10km/h 가까이 빠졌음에도 정교한 커맨드와 볼배합으로 상대 타자들을 잡아내는 모습에서 아, 이게 관록이구나, 이게 경험이구나 싶더군요.
조상우의 포심이 144km/h 밖(?)에 안 나오는데 변화구로 타자들의 눈높이를 아래 쪽으로 흐트러뜨린 다음에 포심을 하이 존 경계에 던지는 커맨드 능력은 정말 탄성이 나왔습니다. 안타 하나 허용하긴 했지만, 오늘 나온 불펜투수들 중 전상현 다음으로 안정적인 투구를 보여줬습니다.
문제는 조상우를 계속 올 시즌 내내 마무리 투수로 쓸 수 있을까 하는 점입니다. 오늘 잘 막아주긴 했는데 공을 21개나 던졌죠. 구위가 떨어지다보니까 어쩔 수 없는 한계 같습니다. 불펜의 양은 많은데, 질적으로는 순위 경쟁팀 대비 우위에 있지 않은 거. 이 점이 현재 KIA 불펜의 유일한 약점이 아닐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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