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경기는 순전히 나성범의 활약 덕분에 경기를 잡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1회 무사 만루에서 2타점 2루타. 그리고 SSG에게 역전을 허용하자 3회에 역전 쓰리런을 날리면서 KIA의 승리를 멱살 잡고 끌어 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오늘 한 경기의 수훈 선수는 '나성범'의 이름 외에는 외칠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아직 시즌은 많이 남았죠. KIA 후반기에 좋은 승률을 기대하려면, 국내 선발진의 활약이 필요했는데, 그 실마리를 해결해줄 이의리가 일본에서 돌아와 이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줬던 것이 오늘 경기의 가장 중요한 키포인트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시라카와가 오늘 선발로서 한계를 보였죠. 일본 투수 답지 않게 구린 커맨드와, KBO의 힘 있는 타자들을 이겨낼 수 없는 구위. 그리고 딱히 위력적이지 않은 변화구 구사능력(그나마 포크볼 정도) 계속 주장하는 거지만, 팀이 강해지려면 시라카와를 불펜으로 쓰는 게 맞고, 시라카와 역시 불펜이 맞는 핏이라고 봅니다.
아무튼, 시라카와가 SSG 타선을 압도하지 못 하면서, 4회 2아웃 이후부터 박성한을 상대로 이의리가 올라왔는데, 박성한 상대로 몸쪽 149km/h 포심으로 파울 타구를 만들어 카운트 잡고, 슬라이더 밋밋하게 들어갔지만 존에 들어가며 스트라이크가 됐고, 3구째 슬라이더가 높은 존으로 들어 오면서 박성한의 방망이를 헛돌게 하며 위기를 벗어났습니다.
많이 빠지는 볼 없이 모두 존 근처로 던지니까 나온 좋은 결과였어요. 그리고 더 좋은 피칭이 나왔던 게 5회였죠. 첫 타자 고명준에게 3볼 1스트라이크까지 몰리긴 했는데 5구째 스트라이크를 한가운데 넣었고, 6구 슬라이더에는 파울, 그리고 풀카운트에서 빠른 공만 노리고 있던 고명준을 상대로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삼진을 잡아 냅니다.
전의산을 상대로 초구 볼을 던졌지만, 2구 슬라이더를 낮게 떨어뜨리며 헛스윙을 유도했고, 3구 포심은 살짝 빠진 볼, 그리고 4구와 5구를 잇달아 존 안에 넣으며 전의산을 피치에 몰리게 했고, 6구째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또 다시 헛스윙을 유도하며 두 번째 삼진을 잡습니다.
마지막 타자 김재환을 상대로는 초구 빠른 공을 한가운데 넣으며 파울로 카운트 먼저 잡고, 전의산을 삼진으로 돌려 세운 3구째 슬라이더를 바깥쪽 낮게 떨어뜨리며 유리한 카운트 잡고, 5구째 153km/h 포심을 몸쪽으로 붙이며 매우 평범하기 그지 없는 3루수 플라이로 이닝을 끝마쳤습니다.
여전히 제구가 정교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21개의 공을 던지면서 이의리가 안 좋을 때 자주 나왔던 11시 방향으로 크게 빠지는 포심이 단 1개도 나오지 않았습니다.
우타자 몸쪽으로 포심을 못 던진다고 제가 시즌 초부터 깠는데, 힘 있는 우타자 고명준 상대로 3구, 4구, 5구, 연속 3개의 포심을 잇달아 몸쪽으로 붙이더라고요. 아, 드디어 달라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전반기 두산 전에 잠깐 잘 던질 때도, 11시 포심은 어김없이 많이 나왔어요. 그런데 어제도 그렇고 오늘도 그렇고 11시 방향 포심이 전혀 없더군요. 포심 제구는 이제 어느 정도 잡은 게 아닌가 싶습니다. 물론, 다음 등판에서 또 11시 방향 포심 남발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어제 오늘 투구에서는 그런 장면이 없었어요.

임창용이 유튜브에서 이의리의 문제점을 진단하면서 기술 문제가 아닌 멘탈 문제를 지적했죠. 연습 투구할 때 우타자 몸쪽으로 강력한 포심이 잘 들어가는데, 타자를 세우고 연습 투구를 하니까 포심이 모두 바깥쪽으로 크게 벗어나는 장면을 보면서 한 말이었습니다. 이 진단이 맞는 지 안 맞는 지는 잘 모르겠는데, 제 생각도 같습니다. 이의리의 문제는 멘탈 문제라고 생각해요.
이의리는 포심 제구와 구위만 잡혀도 리그에서 크게 활약할 수 있는 선수입니다. 오늘 이의리의 포심 평균 구속은 151.7km/h 였습니다. 어제는 152.8km/h. 2경기 연속 포심 평속 150km/h 이상을 던졌죠. 지금 리그에 포심 평균 구속 150km/h 이상을 던지는 왼손투수는 배찬승(151.3km/h), 홍민기(150.8km/h) 이렇게 둘 밖에 없습니다.
물론, 이의리가 선발로 던지면 이보다 구속이 낮아지겠죠. 그런데 어제 오늘 불펜으로 던져도 불펜투수 전업인 두 명(배찬승, 홍민기)보다 평균 구속이 높습니다. 그러니 타자들이 히팅 포인트를 극단적으로 앞에 두고 타격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금만 늦어도 못 따라가니까. 그러니까 변화구 던지면 방망이가 헛돌게 되죠.
올해 안 좋을 때 이의리는 구속으로도 타자를 압도하지 못 했습니다. 150km/h을 못 던지기도 했고,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는 타자들의 방망이를 이겨내지 못했죠. 그런데 어제 오늘은 이겨냈습니다. 어제 오늘 이의리가 허용한 타구 중 잘 맞은 타구는 단 1개도 없었습니다. 모두 이의리의 스피드에 밀린 타구들만 나왔어요.
어제 오늘 좋은 피칭을 했기 때문에 한 번 정도 더 불펜으로 던지다가 시라카와 대신 로테이션에 합류할 수도 있어 보입니다. 아니, 당장 다음 시라카와 턴부터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하고요. 그리고 승부수를 던지려면 그렇게 해야 한다고 봅니다. 현재 KIA의 가장 큰 약점이 허접한 국내 선발진이니까요.
이의리가 정말 좋아졌을까요? 아직 장담할 수 없습니다. 다시 선발 나왔다가 11시 포심 남발하고,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둔 타자들의 방망이를 이겨내지 못 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좋은 상상이라도 해보고 싶습니다. 지옥에서라도 데리고 와야 한다는 왼손 파이어볼러 선발이 후반기에 부활하는 순간을요.

오늘 경기 타선에서 가장 좋았던 건 나성범입니다. 위에도 이야기했지만, 부인할 수 없는 오늘의 MVP에요. 첫 타석 만루에서 김민준의 변화구 몰린 걸 놓치지 않고 2루타로 만들었고, 3회에 쓰리런을 칠 때는 김민준의 바깥쪽 포심(141km/h)을 스윗 스팟에 맞혀서 좌측 담장을 훌쩍 넘기는 홈런을 쳤죠.
이전 리뷰에도 언급한 내용이지만, 나성범이 올해 좋아진 부분은 포심 공략에 있습니다. 지난해 포심 상대 OPS가 .799에 불과했는데 올해는 포심 OPS가 무려 1.187이나 됩니다. 포심이 자꾸 늦는 약점을 수정하고자 히팅 포인트를 조금 더 앞에 두고 스윙한 결과 약점을 극복했죠.
반대 급부로 커리어에서 가장 높은 삼진율(오늘도 2삼진 적립)인 26.8%를 기록하고 있지만, 많은 삼진은 홈런 타자의 훈장과도 같습니다. 그리고 삼진이 나오더라도 지금처럼 포심 공략하는 모습을 보이는 게 낫죠. 대부분의 투수들의 던지는 공이 절반은 포심으로 던지는 데, 삼진이 좀 늘더라도 히팅 포인트를 앞에 두는 게 낫습니다. 그리고 이게 나성범의 클래스라고 생각하고요.

나성범도 좋았지만, KIA의 가장 큰 약점인 '출루율이 낮은 테이블세터진'이 오늘 나란히 3타수 1안타 2볼넷으로 3번의 출루를 기록한 부분도 좋았죠. 이렇게 볼넷을 잘 골라낼 줄 알면서 그동안은 왜 그렇게 적극적으로 스윙했는 지 모를 정도입니다만, 박재현이나 김호령이나 풀시즌 경험이 많지 않으니 선구안까지는 기대할 수 없죠.
후반기에 박재현과 김호령이 오늘 처럼 타석에서 침착함을 꾸준히 유지해줄 수 있다면, 라인업의 시너지 효과를 크게 기대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두 명 중 한 명이라도 출루해도 리그에서 가장 위압감이 있는 김도영, 나성범 중심타선이 뒷받침해주니까요. 여기에 카스트로(후반기 시작하고 안 좋지만), 한준수가 뒤를 받쳐주니 테이블세터진만 잘 해줘도 득점력을 크게 향상시킬 수 있습니다.
다만, 카스트로가 푹 쉬고 와서 그런 지 타격감이 완전 엉망이네요. 1회 만루 상황에서 김민준의 한가운데 포심을 헛스윙한 장면도 그렇고, 다음 타석에서도 3구 삼진을 당하질 않나, 맥 없는 팟 플라이를 치질 않나, 정확한 타격이 전혀 안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전반기 때도 그러더니, 예열이 좀 필요한 타입일까요?
카스트로의 경우 수비와 주루에서 플러스가 없는 선수라 오로지 타격만 보고 써야 하는데, 이래서는 재계약은 커녕 더 좋은 타자가 나오면 바꿔야 하지 않나라는 고민까지 만들게 합니다. 1루수 혹은 코너 외야수를 볼 수 있는 우타 거포가 역시 팀에 가장 어울리긴 합니다. 그런 선수가 나올 지 의문이지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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