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경기 6회까지는 어제 경기의 재방송을 보는 느낌이었습니다. 상대 선발 투수에게 막혀서 점수를 못 뽑다가 겨우 한 점 뽑았는데, 6회에 불운(채현우는 빗맞은 안타 때리는 신공이라도 익혔나)과 실책(황동하의 1루 견제 악송구, 나성범의 포구 실패)으로 이틀 연속 같은 연출로 경기를 내주는 건가 싶었는데 SSG 불펜을 상대로 김호령이 결정적인 홈런을 때리면서 역전에 성공했고, KIA가 낼 수 있는 가장 좋은 불펜투수들을 때려 박으며 경기를 잡아낼 수 있었습니다.
6회 잘 던지던 최민준이 김선빈의 2루타로 동점을 허용하자 SSG에서는 전가의 보도 이로운을 마운드에 올립니다. 그리고 김호령은 이로운의 2구와 3구째 슬라이더에 헛스윙을 하면서, 또 삼진으로 물러나나 했는데 5구째 몸쪽으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걷어 올려서 결정적인 2점 홈런으로 팀에 승리를 안겼습니다.
이로운의 실투도 아니었어요. 김호령이 헛스윙을 많이 하는 바깥 쪽 코스가 아니라 몸쪽 코스로 떨어진 게 굳이 따지자면 흠이긴 한대, 몸쪽에서 낮게 떨어진 슬라이더를 걷어 올린 김호령의 파워가 더 놀라웠습니다.
이로써 김호령은 나성범보다 1개 더 많은 8개의 홈런을 날렸고, 최근 맹타를 토대로 망가졌던 스탯도 많이 회복해서 .303의 타율과 .874의 OPS, 127.7의 WRC+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WAR은 1.68을 기록하고 있고요.
스탯티즈에서 규정타석 50% 기준 올 시즌 10개 구단 중견수 성적을 살펴보면 김호령이 압도적입니다. WAR 1.68을 기록하며, 정수빈(0.81)의 두 배 이상의 격차를 보이고 있고, 홈런 8개로 당연 1위(최지훈이 6개로 2위), 타율 1위, 장타율 1위, OPS 1위, WRC+ 1위 등을 마크하고 있습니다.
게다가 김호령은 주력도 준수하고, 수비는 말할 것도 없죠. 현재 김호령의 유일한 약점은 삼진이 많다는 것 하나 뿐이 없습니다. 그리고 김호령의 타순을 생각하면 삼진 많은 게 그렇게 약점도 아니에요. 김호령은 지금처럼 6~7번에서 자기 스윙을 하면서 장타를 날려주면 족합니다. 정교한 컨택과 뛰어난 선구안은 김호령에게 맞지 않는 옷이죠.
타자 능력 중에 가장 개선이 어려운 게 '컨택'이라고 하죠.(이런 걸 생각하면 박찬호는 정말 대단한 겁니다.) 그런데 시즌 초에 테이블 세터로 내세우니까 선수도 적응이 힘들었을 겁니다. '테이블 세터'면 나쁜 공은 골라내면서 '출루에 목적을 둬야 한다'는 압박감을 선수가 느낄 수밖에 없어요. 아래는 김호령의 타순별 성적입니다.

2번으로 성적도 나쁘지 않긴 한대, 그냥 6번 또는 7번으로 쓰는 게 가장 이상적이지 않을까 싶고 최대한 양보하면 5번까지는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김호령은 타격 스타일상 컨택과 선구안과는 어울리지 않은 타자에요. 그냥 가장 잘 하는 걸 시키는 게 가장 좋아 보입니다. 중견수에 발이 빠르다. 이것만 보고 테이블 세터로 쓸 필요는 없어요. 시즌 끝까지 테이블 세터로 쓰는 모습은 자제 시키고, 6-7번으로만 기용하면 선수도 편하고, 팀 밸런스 측면에서도 좋아 보입니다.
다행히, 올 시즌 KIA 타순에서 가장 큰 고민이었던 테이블 세터진 고민이 박재현과 박상준의 등장으로 해결될 기미가 보이고 있죠. 두 선수가 모두 경험이 부족하고 풀타임 경험이 없는 점이 불안 요소이지만, 이 두 선수가 잘 버텨주면, 김호령의 부담도 많이 덜 수 있고, 팀 공격력에서 날카로움이 유지될 수 있어 보입니다.

오늘 타선에서는 김호령이 맹활약했다면(첫 타점을 올린 박상준도 잘 했습니다.) 황동하, 조상우, 김범수, 정해영, 성영탁이 SSG 타선을 2실점으로 잘 막아줬죠. 그 마저도 자책점은 1점 뿐이었고요.
황동하의 경우, 오늘도 여전히 선발투수로 '안정된' 모습을 유지했습니다. 황동하의 가장 큰 장점은 슬라이더와 포크볼을 자신이 원하는대로 커맨드 하는 능력이에요. 포심이 빠르지 않다해도, 우타자를 상대로는 슬라이더를, 좌타자를 상대로는 포크볼을 스트라이크존 근처로 넣는 게 황동하의 호투 비결이죠.
그리고 지금 황동하는 선발로 5경기 나서서 모두 잘 던지고 있습니다. 이 정도면, 올해 황동하는 풀타임 선발투수로 신뢰를 줘도 충분한 것 같아요. 오늘은 비록 6이닝을 채우지 못 하고 마운드에 내려왔는데, 5회까지 피칭은 정말 좋았고, 6회에 무너진 것은 채현우에게 두 타석 연속 빗맞은 안타를 허용하면서 1차적으로 흔들렸고(그 표정 없던 선수가 짜증내는 표정이 바로 나왔죠) 채현우에게 도루를 또 허용하지 않으려고 견제에 신경쓰다가 마운드에서 밸런스를 잃었죠.
황동하도 오늘 경기로 많은 것을 배웠을 겁니다. 빗맞은 안타를 허용하더라도 그럴 수 있다고 잘 추스러야 하고(물론, 저 같아도 오늘 채현우처럼 두 타석 연속 빗맞은 안타 쳤으면 개 열받았을 겁니다. ㅋㅋ) 타자와의 승부에 집중했어야 했죠. 결국, 타격감이 물에 오른 박성한을 상대로 정직하게 가운데에 넣다가 정타 허용했고, 누가보더라도 경기 초반과 달리 커맨드가 엉망이 되는 모습이 보였기에 투수 교체 시기는 적절했다고 봅니다.
다만, 김범수가 많이 불안했죠. 김재환을 상대로 유리한 카운트 잡고도 포심 제구가 흔들리면서 볼넷을 내줬고, 오태곤을 상대로도 유리한 카운트 잡고 포크볼 제구가 흔들리면서 또 볼넷을 내줬습니다. 다행히 최지훈을 상대로 김범수의 가장 큰 무기인 슬라이더를 연달아 존에 넣으며 위기를 벗어나긴 했는데 올 시즌 9이닝 당 볼넷이 7.56개로 너무 안 좋습니다. 작년처럼 4~5개 수준으로 줄여야죠.(2~3개는 바라지도 않음)
그나마 김범수에게 다행인 점은 곽도규가 복귀하면서 김범수의 짐이 덜어졌다는 점입니다. 곽도규와 김범수가 번갈아 가면서 등판하면 김범수 성적도 지금보다 나아지지 않을까 싶어요. 너무 혼자서 완벽하게 던지려는 압박감 때문에 볼이 늘어난 것 같아 보입니다. 오늘만 해도, 유리한 카운트 잡고 '더 완벽하게 던져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승부를 빨리 못 끝냈다고 생각해요. 자신의 공을 믿고 더 적극적으로 존을 공략하길 바랍니다.
조상우도 무실점하긴 했지만, 정해영 도움을 많이 받았죠. 계속 이야기하는건대 조상우는 좌타자 잡는 무기가 없어서, 조금만 잘 치는 좌타자가 나오면 승부가 어렵습니다. 피안타율과 피OPS는 큰 차이가 안 나는데, 우타자를 상대로는 12이닝 동안 삼진 10개를 잡았는데, 좌타자를 상대할 때는 7.1이닝 동안 삼진을 1개 밖에 못 잡았습니다. 그래서 조상우를 내고 싶으면 좌타자보다는 우타자가 강한 타선을 상대할 때 내보내는 게 맞고, 승리계투조로 쓰기엔 여전히 불안한 면이 있습니다.

조상우가 좌타자 2명을 막지 못 하고 흔들리자 정해영이 4아웃을 잡기 위해 마운드에 올랐습니다. 최근 감이 좋은 정준재를 상대했는데 정준재의 스윙이 비교적 정확하게 나왔지만, 정해영의 구위에 밀려서 평범한 중견수 플라이가 됐죠. 정준재처럼 정교하되 파워가 없는 선수를 상대할 때는 이런 투구가 정석입니다. 하이 패스트볼로 적극적으로 존을 공략하는 것.
8회 투구는 완벽했죠. 에레디아를 상대로 유리한 카운트 잡고 슬라이더를 존에서 떨어뜨려 평범한 3루 땅볼을 만들어 냈고, 한 방이 있는 김재환을 상대로 포심으로 스트라이크 잡은 이후에 포크볼만 4개를 연달아 존에서 떨어뜨려서 헛스윙 삼진으로 잡아냈습니다.
그리고 오늘 경기 하이라이트가 오태곤을 상대할 때였죠. 개막전에서 자신에게 치욕을 안긴 기억이 정해영도 분명히 있었을 겁니다. 오태곤의 인터뷰 한 마디도 정해영 귀에 안 들어갔을 리가 없죠. 오태곤은 인터뷰에서 "정해영이 랜더스 필드에서 좋지 않다는 것을 알고 들어섰고, 던지는 모습 보니 역시나 공에 힘도 없고 슬라이더도 날카롭지 않았다"라고 했습니다.
저 같아도 열 받을텐데(게다가 사실이기도 했죠.ㅋㅋ) 정해영 심정은 어땠을까요? 바로 초구 슬라이더를 던집니다. 다만, 존에서 벗어나며 볼. 그리고 정해영은 포심 4개를 연달아 꽂아 버리는데 2구 149km/h, 3구 151km/h, 4구 152km/h, 5구 152km/h를 던지며 오태곤을 평범한 3루 땅볼로 잡아 냅니다. 특히, 4구째 포심 던질 때 기합 소리가 어찌나 크던지... 아마 하이패스트볼로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 세우고 싶었을 겁니다.

오태곤을 아웃으로 잡으며 마운드에서 내려와 설욕은 했지만, 진정한 설욕은 아직 남았죠. 랜더스 필드에서 오태곤을 삼진으로 돌려 세우는 것. 그게 아마 올 시즌 정해영의 목표가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9회에는 푹 쉰 성영탁이 올라와 3개의 아웃 카운트로 경기를 끝냈죠. 안타 하나 허용했지만, 코스가 좋았던 타구였고 정타는 아니었습니다. 이지영을 병살타로 잡은 장면은 그야말로 '성영탁의 투심 위력'을 그대로 보여주는 투구였고요. 그런데 오늘 경기만 놓고 보면, 역시 마무리 투수는 정해영이 가장 어울리지 않을까 싶은데... 지금 이 보직으로 둘 다 시너지 효과를 보여주고 있으니 굳이 건드릴 필요는 없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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