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경기는 전형적으로 수비 때문에 갈린 경기였습니다. 표면적인 기록만 봐도 두산은 실책 2개가 모두 실점으로 연결됐고(5점 중 3점이 실책으로 인한 점수) 반면 KIA는 비록 9회에 박민의 실책이 있었지만(이마저도 바운드가 튀는 바람에...) 호수비가 3개나 나오면서 위기에서 벗어났죠.
여기에 마운드에서는 황동하가 오늘도 호투를 하며 3경기 연속 퀄리티 스타트를 이어갔고, 불펜 승리계투조 3명(정해영, 김범수, 성영탁)은 주자를 1명씩 내보내긴 했지만(성영탁은 실책으로 인한 주자) 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하며 실점 없이 3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야수들은 호수비를 보였고, 투수들은 마운드에서 자기 공을 던지며 최소 실점으로 억제한 반면, 두산에서는 결정적인 상황마다 수비에서 실수가 나오고,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만 아니었으면 살았을 정수빈의 아쉬운 판단까지 겹치면서 KIA에 위닝 시리즈를 내줬습니다.
양팀의 극과 극으로 갈린 수비
2회 오늘 두산 타선에서 홀로 날 뛴(?) 양의지의 투런 홈런으로 두산이 앞서 갔으나 2회말에 KIA에서 먼저 김호령의 2루타(2루까지 적극적인 주루도 좋았죠)가 나오고, 한승연의 볼넷 이후 김태군의 1타점 적시타(이 타구도 2루수 박준순의 글러브 핸들링이 아쉬웠죠)로 2사 2, 3루의 찬스를 이어갑니다.
그리고 박재현이 친 타구는 1루수 오명진의 정면으로 갔는데, 오명진이 이 타구를 뒤로 빠뜨리면서 치명적인 2실점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죠. 타구가 비교적 강하긴 했는데 정면으로 갔기 때문에 몸으로 막는다는 생각으로 수비를 했어야 했는데, 그러지 못했습니다. 오명진은 내야 유틸리티이긴 해도 주포지션이 2루수이다보니 1루수 쪽 강한 타구를 막는 경험은 아무래도 적을 수밖에 없지 않나 그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두산은 바로 3회에 찬스를 잡습니다. 향수병에 빠진 박찬호가 물러난 이후 황동하의 제구가 갑자기 흔들리면서 정수빈에게 안타를 허용하고 손아섭에게 스트레이트 포볼을 내주며 투구 밸런스를 잃은 모습이었고, 타석에는 올 시즌 KIA 킬러로 자리 잡은 박준순이 들어 섭니다.
아니나 다를까 박준순이 친 타구는 중견수 앞에 짧게 떨어지는 안타가 되는 건가 싶었는데 어제 9회 마지막 수비에서 아쉬운 모습을 보인 김호령이 딱 하는 소리가 나자마자 앞으로 스타트를 끊고 몸을 날려 박준순의 타구를 건져냈죠. 이 타구가 안타가 됐다면, 1실점을 했거나 최소 만루 상황에서 카메론의 타석이었는데, 김호령이 멋진 수비를 함으로써 황동하의 호투를 뒷받침해줬습니다.
수비에서 신이 난 김호령은 3회에 아데를린의 2루타로 잡은 기회에서 포심을 정확하게 공략하며 1타점 3루타까지 날렸죠. 오늘 경기 누가 뭐라고 해도 야수 중 가장 뛰어난 활약을 한 선수는 김호령입니다.
KIA의 호수비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죠. 오늘 미친 타격감을 보인 양의지가 두 번째 타석에서도 유리한 카운트에서 황동하의 슬라이더를 공략해 좌측 담장을 때리는 장타를 쳤습니다. 그런데 KIA 입장에선 운 좋게 담장을 때린 타구가 강하게 튀겨 한승연의 글러브에 들어갔고, 한승연은 강한 어깨를 자랑하며, 2루로 송구 양의지를 아주 편안하게 아웃으로 잡았습니다.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의 무용론을 증명한 정수빈의 주루 플레이
이후 양팀은 소강상태로 6회까지 진행됐고, 7회에 또 양의지가 선두타자 홈런을 날리며 KIA를 1점 차이로 추격해 위기 상황이었는데 그러자 바로 KIA 벤치에서는 황동하를 마운드에서 내리고 2군 다녀온 이후 무적의 피칭을 하던 정해영을 마운드에 올립니다. 하지만 정해영은 강승호를 상대로 유리한 카운트 잘 잡고, 밋밋한 슬라이더를 던지는 바람에 안타를 허용해 바로 위기를 맞죠. 만약, 강승호에게 유리한 카운트였다면 동점 홈런이 나와도 이상하지 않았을 행잉 슬라이더였습니다.
이어 두산은 동점을 만들기 위해 박지훈에게 번트를 지시해 주자를 스코어링 포지션에 갖다 놨는데, 박찬호는 또 향수병을 보이며 평범한 1루수 팝플라이로 물러나고, 정수빈이 3볼 이후에 풀카운트 상황에서 정해영의 결정구인 포크볼을 갖다 댔죠. 투수 정해영과 3루수 김도영 사이로 매우 느리게 간 땅볼 타구라 이 타구를 보자마자 전 99% 확률로 내야 안타라고 봤어요. 발 빠른 좌타자 정수빈이었기에 2사 2루가 2사 1, 3루 위기. 그리고 오늘 감이 좋은 손아섭까지 가면 쉽지 않겠다 생각했죠.
그런데 이때 정수빈의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이 KIA를 구했습니다. 그냥 1루를 지나치며 뛰어 갔으면 간발의 차이로 세이프였을텐데 정수빈이 1루에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을 하면서 속도가 확 줄었죠. 맨 눈으로 보기엔 세이프 같아 보였지만, 심판이 정확한 판단으로 아웃 판정을 했고, 느린 화면으로 보니 정수빈이 1루 베이스 터치가 아데를린의 1루 미트가 닫히는 것보다 제법 큰 차이로 늦었습니다.
저는 항상 생각하는게 1루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은 너무나도 효용성이 떨어집니다. 정수빈처럼 발 빠른 좌타자는 그냥 쭉 달려야죠. 아무튼 KIA 입장에서는 너무나도 고마운 판단이었고, 이 헤드 퍼스트 슬라이딩 하나로 정해영은 큰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었어요.

경기 후반의 쐐기점을 가른 두산의 실책, 그리고 박정우의 호수비
위기를 넘긴 KIA 타선은 7회 김선빈의 안타와 아데를린의 11구 승부 끝에 안타(박치국이 사이드암이라 오히려 아데를린에게는 적합했는 지도)로 찬스를 잡았지만, 김호령이 2루수 땅볼로 물러나며 이대로 점수를 못 내는 건가 싶었습니다. 다음 타자가 타석에서 '강한 타구를 만드는 방법을 모르는' 정현창이었기 때문이었죠. (이기고 있었으니 수비가 불안한 윤도현 대신 대수비 투입은 당연한 겁니다.)
정현창은 유리한 2-0이라는 유리한 카운트에서도 고작 2루수 앞 평범한 땅볼을 치는 데 그쳤는데, 이때 박준순이 정현창의 평범한 땅볼을 뒤로 흘리면서 결정적인 실책을 합니다. 이것도 경험 부족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 게 그 타구는 글러브만 갖다 댈 게 아니라 '풋 워크'로 잡아야 하는 타구죠. 빠른 풋 워크로 중심에서 잡는다는 생각으로 포구했으면 나오지 않았을 실책이었고, 이 실책으로 3루 주자 아데를린이 홈을 밟으며 KIA는 쐐기점을 뽑습니다.
그리고 8회 김범수가 손아섭을 상대하기 위해 올라왔는데, 포심과 슬라이더로 유리한 카운트 잡고도 결정구 슬라이더가 존에서 살짝 빠져서 2-2 상황에서 던진 포심이 하필 손아섭이 가장 좋아하는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가는 바람에 좌익수 앞에 날카로운 타구를 허용했죠. 아, 이렇게 선두타자가 나가나 싶었는데 박정우가 몸을 날리며 손아섭의 타구를 잡아내며 김범수를 구했습니다.
박정우의 수비 역시, 3회에 나온 김호령의 호수비 못지 않은 좋은 수비였어요. 그리고 2점 차이였으니까 이렇게 과감한 선택을 했지(그런데 박정우 BQ를 생각하면 1점 차이였어도 몸 날렸을 듯) 1점 차이였다면 아마 안정적으로 잡으려 했을 겁니다. 이전 이닝 박준순의 실책이 박정우의 호수비까지 연결됐다고 생각하면 좀 오바일까요.

하위 라운드의 반란을 보여 준 황동하와 성영탁
오늘 경기는 전형적으로 수비로 갈린 경기지만, 그래도 승리를 뒷받침 해 준 건, 선발 황동하의 QS 피칭과 정해영, 김범수, 성영탁으로 이어지는 철벽 불펜의 역할을 강조하지 않을 수 없죠.
황동하는 왜 잘 던질까요? 스트라이크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기 때문입니다. 황동하의 포심 구속이 좋아지긴 했어도 그래봐야 리그 평균보다 못한 평속 144.1km/h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특출나지 않은 구속에도 불구하고 황동하의 호투를 뒷받침 하는 무기가, 적극적인 스트라이크존 공략, 그리고 슬라이더라는 결정구가 있기 때문입니다.
선발 전환 이후 4경기에서 황동하는 23이닝 동안 볼넷을 3개 밖에 내주지 않았습니다. 반면, 삼진은 18개나 잡았고요. 삼진 대 볼넷 비율이 무려 6대1입니다. 지금 규정이닝을 소화한 투수 중 삼진 대 볼넷 비율이 6대1이 넘어가는 투수는 단 1명도 없습니다. 규정이닝 소화한 투수 중 삼진 볼넷 비율이 가장 높은 선수는 5.86의 류현진이고 3대1이 넘는 선수도 9명 밖에 없어요.
물론, 황동하가 지금의 스탯을 유지할 가능성은 매우매우 낮지만, 어찌됐든 좋은 피칭을 하는 가장 근본적인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볼질을 안 한다' 그리고 커맨드가 좋다. 그리고 주무기 슬라이더의 피OPS가 구원 등판 때는 굉장히 나빴지만, 선발 전환 이후에는 굉장히 좋습니다. (순차적으로 .333 / .666 / .334 / .500)
야구에 만약은 없다지만, 오늘도 양의지만 아니었다면 7회까지 1~2실점 정도로 두산 타선을 막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커맨드가 좋았어요. 오직 양의지를 넘지 못 한 것, 그것 때문에 황동하가 '황금하'가 안 됐습니다.

황동하가 7회까지 소화했다면 이상적이었겠지만, 양의지에게 홈런을 맞고 마운드에 내려와도 든든했죠. 정해영, 김범수, 성영탁이 뒷문을 지키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해영은 위기에 몰리긴 했지만, 실투는 첫 타자 강승호를 상대로 던진 행잉 슬라이더 하나 밖에 없었고, 박찬호를 상대로 슬라이더로 팝플라이, 그리고 정수빈을 상대로 3볼까지 몰렸지만, 침착하게 보더라인에 피칭을 하며 주도권을 잡고 포크볼을 존에서 떨어뜨려 평범한 땅볼 + 정수빈의 잘못된 판단으로 위기를 넘겼죠.
김범수도 박정우의 호수비 도움을 받았다지만, 현재 두산에서 가장 무서운 타자인 박준순을 상대로 포크볼을 연달아 존에서 떨어뜨리며 삼진을 잡은 장면은 돋보였습니다. 이 포크볼만 우타자 상대로 오늘처럼 들어가면, 굳이 좌타에 한정짓지 않더라도 우타 상대도 잘 할 것 같아요.
카메론 상대로도 포크볼로 헛스윙과 파울을 만들어 내며 유리한 승부를 이어갔지만, 하필 7구째 포크볼이 존에서 떨어지지 않고 높게 형성되는 바람에 카메론에게 안타를 맞았죠.
하지만, 우리에겐 성영탁이 있죠. 두산에서 좌타에 강하고 우타에 약한 김범수를 저격하기 위해 김기연을 대타로 내세우자 바로 성영탁을 마운드에 올립니다. 성영탁은 김기연을 상대로 커터 2개 던져서 평범한 투수 땅볼로 쉽게 위기 탈출. 편-안-합니다.
성영탁은 9회에도 예외를 허용하지 않았죠. 오늘 미친 타격감의 양의지에게 위험한 타구를 허용했지만, 다행히 3루수 정면으로 갔고(동하야 고개를 들어라. 너가 잘못한 게 아니다. 양의지가 미친 거지) 강승호를 상대로도 커터 3개 연거푸 던져서 굉장히 빗맞은 땅볼을 만들어 냅니다. 하지만, 막판에 바운드가 튀는 바람에 박민의 에러가 나왔죠.
이때도 별 걱정 안 했습니다. 다만, 두산에서 좌타자 김인태를 대타로 내세울 때 살짝 걱정하긴 했어요. 성영탁은 좌타자를 잡는 확실한 무기가 없어서 올 시즌 좌타 상대로 피안타율이 3할이 넘었거든요.(오늘 경기를 끝으로 .292까지 낮아짐) 다만, 한 가지 말하자면 성영탁은 좌타 상대로 피안타율만 높을 뿐, 올해 좌타 상대로도 피OPS가 .592 밖에 안 됩니다. 우타 상대로 피OPS가 .359일 정도로 우타에 더 강하긴 하지만.
그리고 이때 전 성영탁이 발전을 했다고 느낀 게, 체인지업으로 김인태를 삼진으로 잡은 장면입니다. 올해 성영탁의 체인지업 구사비율은 불과 2%입니다. 그런데 오늘 던진 체인지업 1개는 이보다 더 좋은 위치에서 떨어질 수 있나 싶을 정도로 김인태의 헛스윙을 완벽하게 유도했어요. 좌타 상대로 확실한 무기가 없었는데 이렇게 빨리 체인지업을 습득하나? 싶을 정도로 놀랐습니다.
다만, 성영탁이 오늘 보여 준 체인지업을 앞으로도 꾸준히 잘 던져줄 수 있을 지는 지켜봐야 할 부분이고, 올 시즌 끝까지 체인지업을 잘 던지면 그때는 좌타자 상대로도 결점이 없는 투수가 됩니다. 그리고 좌타 상대로 체인지업까지 잘 던지면 그때는 진짜 마무리 투수가 아니라 선발 전환을 생각해야죠. 성영탁이 처음부터 불펜투수로 육성된 것도 아니고 2군에서 선발 로테이션 돌던 투수이니까 이대로 불펜 마무리로 뛰게 하는 건 재능 낭비가 아닌가 그런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오늘 선발인 황동하는 신인 드래프트에서 2차 7라운드, 성영탁은 2차 10라운드 출신입니다. 둘 다 공통점이 있다면 구속이 낮은 대신 커맨드가 좋은 선수들이었는데 프로 와서 증속을 하며, 1군 자원이 됐다는 점이죠.
개인적으로 무조건 구속 빠른 투수를 상위 라운드에 지명해야 한다는 생각이었는데, 그 생각을 깨뜨린 사례가 황동하와 성영탁이 아닐까 싶습니다. 그래서 최근 KIA에서도 육성 기조를 바꿨다는 이야기가 있더라고요. 커맨드 좋은 투수들을 증속 시키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고...
다만, 황동하와 성영탁이 터졌다고 마냥, 이런 기조로 선수를 육성해선 리스크가 크지 않을까 싶어요. 증속에 성공한 황동하, 성영탁 사례도 있지만(따지자면 최지민, 곽도규, 전상현도 이 범주에 들어감. 최지민은 상위 지명이었지만) 증속에 아직까지는 실패한 윤영철, 이호민 사례도 있어요. 물론, 둘 다 어린 투수들이라 충분히 증속을 기대할 수 있지만요. 그리고 대표적으로 증속에 실패한 케이스가 1라운더 좌투수 김유신이죠.
음, 정답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지금처럼 커맨드가 좋은 투수들을 꾸준히 3라운드 이하 정도에 지명하는 전략은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구속이 낮다고 상위 지명하지 않은 전상현(4라운드), 곽도규(5라운드), 황동하(6라운드), 성영탁(10라운드) 을 발전 가능성을 높게 보고 뽑은 KIA 스카우트진은 보너스를 충분히 많이 받아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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