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근 몇 경기 타선의 구멍이 많다고 안타까움을 표현했는데, 아주 망하라는 법은 없는 지, 그래도 가능성 있는 선수들이 등장하면서 야구를 즐길 요인을 계속 주고 있네요.
오늘 경기가 대표적입니다. 당초 선발 로테이션 계획에 없었던 황동하가 선발 투수로 안착하면서 3경기 연속 호투를 보여주고 있고, 전혀 검증된 바가 없는 1번 박재현과 2번 박상준이 오늘 경기 둘이서 대활약을 하며, 경기를 잡는 데 가장 큰 역할을 해줬네요. 이런 것 때문에 야구를 끊을 수 없습니다. 이런 미래들을 볼 수 있으니까요.
부실한 테이블 세터진, 하지만 가능성을 보인 박재현과 박상준
최근 몇 년 KIA 타선의 가장 큰 고민은 마땅한 1번 타자가 없었다는 점이죠. 작년에 박찬호가 가장 많이 나왔지만, 팬들의 눈높이는 충족시키지 못 했고, 올해도 초반에 김호령, 데일 등이 맡아 줬지만 역시 기대에 미치지 못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박재현이 2개의 홈런 포함 3안타, 박상준이 2개의 2루타 포함 3안타를 치며 대활약을 해줬네요.

박재현 칭찬이야 그동안 많이 했으니 미뤄두고, 박상준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지난 경기 리뷰를 작성하면서 2군에서 가장 잘 하는 박상준을 올려서 쓸 필요가 있다고 했는데, 대타로도 부진한 타격을 보인 고종욱 대신 박상준이 1군에 올라왔고, 올라오자마자 2번 타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올해 이범호 감독의 가장 비난을 받는 포인트 중 하나가 '팀에서 가장 약한 타자를 2번 타자로 기용'하는 모습이었어요. 오늘 박상준 기용도 별로였습니다. 왜 자꾸 경험이 부족한 선수를 2번으로 쓸까 싶었는데, 오늘 박상준은 무려 4번의 출루(3안타, 1볼넷)를 하며 2군을 씹어 먹었던 그 모습을 1군에서도 재현했어요.
타격하는 모습을 보니까 최형우가 연상되는데, 오늘 2개의 2루타가 모두 히팅 포인트 뒤에서 맞았는데 타구에 힘을 싣고 내야를 뛰어 넘는 '발사각'을 만들 줄 아는 스킬이 있더라고요. 근무 중이라 문자 중계만 살짝 살짝 봤을 때는 잡아 당겨서 2루타인 줄 알았는데, 좌중간 2루타라서 더 좋습니다. 이렇게 밀어서도 타구에 힘을 싣는 기술은 쉽게 터득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다만, 첫 번째 2루타는 수비가 좋은 외야수였으면 포구했을 수도 있음) 확실히 기대가 되네요.

박상준의 기록에서 가장 큰 장점은 역시 '삼진'을 잘 당하지 않는다는 점이죠. 2군을 씹어 먹는 타자들이 1군에서 고전하는 이유가 변화구에 대응이 안 되기 때문인데, 박상준은 스몰 샘플이지만, 1군에서 컨택률이 77.1%로 경험 없는 선수 치고는 준수한 편입니다. 그리고 아무리 2군 기록이라지만, 91타석에서 삼진이 8개 밖에 안 되는 건 정말 대단한 기록이죠. 박상준이 컨택에만 신경 쓰는 교타자도 아니고, 나름 중장거리 유형(장거리 타자라고 보기에는 조금 애매함)임에도 삼진이 이렇게 적은 건 놀라운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아직 좋은 모습을 보여 준 게 얼마 안 됐고 수비 포지션의 문제(1루수) 때문에 타석에서 확실한 생산력을 보여주지 못 하면 주전 자리를 차지할 수 없다는 점이 박상준의 불안 요소라고 할 수 있습니다. 게다가 아직 약점 분석이 안 되었을테니 상대 팀에서 박상준의 약점 분석이 이루어지면 그때부터는 성적이 떨어질 가능성이 있죠. 그래도 괜찮은 선구안과 타구에 힘을 싣는 스킬, 다부진 체구에서 중심이 무너지지 않고 확실한 벽을 만들고 팔로우 스윙을 끝까지 해준다는 점에서 쉽게 망할 것 같진 않습니다. 중요한 건 타석에서 평정심이겠죠.

박재현은 정말 놀랍네요. 박재현을 3라운드에 건져 낸 스카우트는 칭찬 많이 받아야 합니다. 전문 외야수도 아니고 고등학교 3학년 때 3루수에서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한데다가 고교 때도 장타자라기보다는 컨택형의 중거리 타자 정도로 봤는데(고교 기록 - 166타수 1홈런, 23도루 .337 / .440 / .488) 프로 와서 파워가 장난 아닙니다. 박재현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역시 '망설임 없는 스윙'에 있네요. 체구가 큰 선수도 아닌데, 스윙을 할 때 방망이가 등에 닿을 정도로 끝까지 잘 돌립니다. 발 빠른 컨택형 좌타자인 줄 알았는데, 이렇게 홈런을 잘 치는 선수였다니 놀라움 그 자체네요.
아직 외야 수비에서 허술한 점도 있고, 타석에서 지나치게 덤비는 지라 톱타자 유형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다리가 빠르고 외야 수비 능력도 전향 3년차라는 점을 감안하면 봐줄만한 수준까지는 올라왔고, 고졸 2년차부터 선구안이 생기는 선수는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지금 박재현은 공 좀 못 골라도 되요. 존에 들어 오면 강하게 후린다는 생각으로 올 시즌 끝까지 완주했으면 좋겠어요. 언젠간 타격 슬럼프가 오는 시기가 올 텐데, 그 시점만 잘 극복해 내면 몇 년간은 톱타자 걱정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습니다. 외야수 뎁쓰가 너무 약했는데 1년 만에 이렇게 선수가 튀어 나오는 게 신기할 정도입니다.
다만, 홈런 5개 중 3개가 나균안 상대로만 친 홈런인데(두 번째 홈런 맞고 나균안이 ㅅㅂ이라고 한 심정이 이해가 감) 나균안의 투구폼이 타이밍에 잘 맞는 것 같습니다. 일단, 많은 투수들과 상대하고 공도 많이 보다 보면, '홈런 편식'도 좀 줄어 들지 않을까 싶어요. 아무튼 비루했던 시즌이 될 수 있었는데 박재현의 발견은 망했다고 생각한 시즌에서 건져낸 보석과도 같습니다.

황동하, 이제는 정말 에이스가 되고 있다
오늘, 황동하도 정말 잘 던져줬죠. 4이닝 연속 선두 타자를 내보내긴 했는데 그럼에도 1실점(그마저도 고승민의 선두타자 홈런)으로 막았다는 점에서 오히려 높은 평가를 해줄 수 있습니다. 주자가 나갔음에도 흔들리지 않고 존 안에 계속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를 던졌다는 뜻이니까요.
황동하 처음 볼 때만 해도 흑마구 계열인 줄 알았는데, 오늘 피칭하는 걸 보니 파워 피처로 봐도 무방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기 상황마다 포심을 보더라인에 꽂아 내며 위기를 넘겼죠. 황동하가 달라진 점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그 전에는 위기 상황마다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존에 집어 넣으며 위기를 벗어나려 했는데, 이게 타자들에게 계속 읽혀서 홈런공장공장장이 됐죠.
황동하의 포심 피OPS는 2024년 .832, 2025년 .853으로 좋지 못 했는데, 올해 .796까지 낮아졌고, 최근 선발로 나온 3경기에서는 차례대로 .334 / .375 / .384를 기록 중에 있습니다. 포심 구속도 올랐지만, 포심의 무브먼트와 커맨드가 잘 이루어지면서 포심 구종 가치를 높이고 있죠.

포심이 위력있게 들어가면서, 자연스럽게 주무기인 슬라이더의 구종 가치도 오르고 있습니다. 지난 KT전처럼 포크볼이 긁히는 날에는 6~7이닝 무실점도 기대할 수 있는 수준까지의 투수가 됐죠.
나이가 너무 많은 양현종, 나이가 너무 어린 김태형, 11시 포심 성애자 이의리 등 국내 선발진이 크게 흔들리는 와중에 황동하라도 선발 마운드에서 성장세를 보여준 게 너무 다행입니다. 이의리 역시 포기하긴 어렵지만 제구 잡는 게 언제인지 기약할 수 없는 상황이라 단 1명이라도 계산이 서는 피칭을 해주면 이보다 좋을 수가 없죠.
오늘 황동하는 수비 도움을 많이 받기도 했지만, 수비 도움을 받기 위해선 '스트라이크'부터 던져야 합니다. 스트라이크를 적극적으로 던진 결과가 지금의 황동하를 만들었다고 봐야죠. 여기서 이의리까지 제구를 잡으면 5강 싸움도 가능해 보이는데, 그게 될 지 안 될 지 참 알 수가 없습니다. 황동하가 이렇게 버텨 주는 와중에 국내 선발이 한 명이라도 계산이 서는 피칭을 하면 좋을텐데 말이죠.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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