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요인 - 주자 29명이나 내보냄
전 오늘 같은 경기를 가장 싫어합니다. 양팀 합쳐서 34개의 안타를 나온 것까지는 이해 해보겠습니다. 그런데 양팀 합쳐서 20개의 사사구(KIA 12개 얻어 내고, 키움 8개 얻어 내고)가 나온 건 정말 수준 미달이라고 생각합니다.
솔직히 말하면 KBO가 국대에서 계속 개발리는 이유는 '투수들 수준이 엉망진창'이라서 라고 생각합니다. 가끔 2군 리그 중계를 보는데, '어떻게 스트라이크도 못 던지는 투수가 프로 야구 선수가 될 수 있지?'라는 생각을 수도 없이 합니다.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알면 구위가 별로입니다. 140km/h 초반의 똥볼도 존에 간신히 넣는 투수들을 보고 있으면, 정말 한숨이 나옵니다.
문제는 이런 투수들이 2군에만 있는 게 아니라 1군에도 있다는 겁니다. 1군에서 투수들이 일정 이상의 활약을 하려면 '스트라이크'만 잘 던져서는 안 됩니다. '스트라이크'를 보더라인에 꽂아야 하고, 변화구를 스트라이크존에서 떨어뜨릴 줄 알아야 합니다. 특히, ABS가 적용되면서 투수들의 수준이 더 처참하게 드러났죠. 기계한테는 '동정심'이 없거든요.
오늘 양팀 투수들 중에서 진짜 1군 투수답게 던진 투수는 이강준, 이준영 단 두 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정현우, 오석주, 박윤성, 김연주, 윤영철, 유승철은 제구력이 엉망이고. 황동하, 임기영은 커맨드가 엉망이었습니다. 이준영도 주무기인 슬라이더가 아직 제대로 구사가 안 되는 등, 오늘 진짜 1군 무대에서 통할 선수는 '이강준' 단 한 명 밖에 안 보이더군요. 아직 제구력이 완벽하진 않은데, 공의 무브먼트가 탈KBO 급입니다. 이런 투수가 커맨드 능력 갖추면 그때부터 리그 씹어 먹는 거죠.
강력한 신인왕 0순위 정현우
앞서 양팀 투수들의 수준이 처참했다고 적긴 했는데 그래도 정현우의 오늘 투구를 보니 왜 신인왕 0순위로 꼽히는 지 알겠습니다. 다양한 구종을 '존 안'에 넣을 줄 알더라고요. 물론, 5이닝 동안 8개의 피안타, 그리고 7개의 사사구를 내준 건 프로 데뷔 첫 경기의 승리 치고는 상처 뿐인 영광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140km/h 초반의 빠른 공을 꾸준히 던질 수 있고, 커브, 슬라이더, 포크볼 등 다양한 변화구를 스트라이크존 '근처'로 던질 줄 알더라고요.
초반에 비해 후반에 구속이 떨어지긴 했는데, 이 선수가 시즌이 끝나면 신인왕이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 순간이, 120개의 공을 넘게 던졌음에도 최형우를 상대로 한가운데 포심 2개를 꽂아 버렸을 때였습니다.
1구 140km/h, 3구 141km/h 포심이 한가운데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최형우의 방망이는 정현우의 투구에 밀렸습니다. 전 이 장면에서 이 선수가 크게 될 수 있겠단 생각이 들더라고요. 120개를 넘게 던졌는데 그 와중에도 볼질을 하지 않고 리그 역사상 최고의 타자 중 하나로 꼽히는 선수를 상대로 한가운데 포심을 2개를 집어 넣습니다. 물론, 점수 차가 커서 이런 대담한 피칭도 가능했을 거에요. 하지만, 그릇이 작은 선수는 아무리 점수 차이가 크더라도 120개를 넘게 던진 상황에서 이런 공을 던질 수가 없죠.
미래는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오늘 정현우의 피칭은 결과든 내용이든 '승리'를 거뒀다는 것 말고는 좋은 평가를 해줄 수 없는 피칭이었지만, 다양한 구종을 존 안에 넣을 수 있고, 120개 넘게 던진 상황에서도 쫄지 않고 한가운데 포심을 박아 버리는 멘탈을 보니, 시즌 마무리 때쯤에는 다른 신인왕 경쟁자들을 제치고 신인왕을 차지할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들었습니다.
윤영철의 구속은 언제쯤 좋아질까
시범경기 때 윤영철의 투구를 보면서 기대가 좀 생겼어요. 구속이 좀 붙었거든요. 140km/h 이상을 꾸준히 찍어 주더군요. 그런데 여전히 구위가 별로입니다. 특히, 선발 투수 답지 않은 '스태미너'를 보여준 것이 가장 큰 문제라고 생각이 듭니다. 아래는 오늘 경기 이닝별 윤영철의 포심 중 140km/h이 넘은 횟수입니다.
1회에는 140km/h을 상회하는 공이 제법 많았는데 2회에는 20%로 떨어졌고, 3회에는 단 1개의 공도 140km/h을 넘지 않았습니다.
물론, 구속이 전부는 아닙니다. 하지만 구속이 안 좋으면 제구라도 좋아야 하는데, 윤영철은 지난해 9이닝 당 볼넷 허용이 4.74개나 됐고, 오늘은 2이닝 동안 볼넷을 3개 내줬습니다. 첫 해에 3.52개 였던 윤영철의 볼넷 허용이 1년 만에 1.2개나 더 늘었어요. 삼진율도 늘긴 했습니다만, 14%에서 16%로 미세하게 나아졌을 뿐입니다.
아마 제가 KIA팬 중에 윤영철을 가장 많이 비판하는 팬일텐데, 구속이 더 붙지 않으면 4-5선발 이상의 활약은 기대하기 어렵고, 솔직히 냉정하게 평가하면 '좌완'이라는 이유로 선발 로테이션에 들어갈 뿐. 김도현과 황동하가 4선발과 5선발을 맡아 주는 게 팀을 위해서 더 좋은 선택이 될 수도 있단 생각이 듭니다.
윤영철의 구속이 더 붙지 않으면 이의리가 복귀하면 선발 로테이션에서 빠져야 하는 선수는 5선발인 김도현이 아니라 윤영철이 될 수도 있습니다.(상상하기 싫지만 양현종이 될 수도 있...) 갈수록 나빠지는 볼넷 허용율, 좀처럼 늘지 않는 구속. 여기에 오늘 경기처럼 스태미너의 문제까지... 이런 선수를 선발로 쓸 이유가 있을까요? 차라리 1이닝을 전력으로 투구하게 하여 불펜으로 키우는 게 나을 수도 있겠단 생각까지 듭니다.
이제 막 시즌이 개막했고, 제 비판과 무색하게 윤영철은 지난 2년간 기대 이상의 피칭을 했기에 제 생각이 틀릴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3년 내내 발전이 없어도 버틸 수 있을 정도로 1군 무대가 만만하지 않습니다. 특이한 디셉션 동작과 커맨드 능력만으로 선발 자리를 차지하기엔 매우 어렵죠. 게다가 공인구 반발력까지 높은 상황에서 윤영철에게 선발 한 자리를 주는 것이 정말 옳은 선택일 지는 고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수비에서는 낙제점, 공격에서는 합격점을 보인 윤도현
오늘 경기 라인업은 미래를 생각하면 참 기대가 되는 라인업이죠. 차기 1루수(또는 지명)로 기대가 되는 변우혁이 드디어 1군에 등록되었고, 윤도현이 박찬호의 부상으로 주전 유격수로 선발 출장했으니까요.
하지만 윤도현은 2회에 대형 실수를 저지르고 맙니다. 2사 이후에 오선진의 평범하디 평범한 타구를 좋지 못한 바운드로 잡으려다가 실책을 저지르고 말았고, 이 실책이 4실점으로 연결이 되어 버렸죠. 이 장면을 보면, 운동 능력을 떠나서 유격수로 자리 잡으려면 적어도 2년은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야 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어요. 이 상황은 앞으로 뛰어가서 공을 잡을 게 아니라 조금 더 기다려서 공을 잡고 던졌어도 늦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KIA 스카우트가 꼽은 윤도현의 수비에서의 문제점은 '송구'입니다. 그래서 KIA 스카우트진은 윤도현을 '2루수' 후보라고 봤죠. 현재의 모습을 보면 스카우트의 시각이 정확합니다. 윤도현이 오늘 그런 수비를 한 이유는 '송구에 자신이 없기 때문'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강하게 정확한 송구를 기민하게 할 자신이 없으니 앞으로 튀어 나와서 굳이 어려운 바운드에서 포구를 시도했다고 생각이 들어요. 송구에 자신이 있는 선수라면 아마 기다렸다가 포구해서 강하고 빠르고 정확한 송구를 1루수에게 했을 겁니다.
그럼에도 이범호 감독은 선수 성장을 위해 유격수로 키우고 싶어 하는 것 같은데, 정말 유격수로 자리 잡으려면 훈련도 엄청 많이 해야 하고, 경험도 많이 쌓아야 합니다. 기본기는 훈련으로 성장시킬 수 있어도 상황에 맞는 수비 능력은 기본적인 수비 센스가 필요하고, 엄청나게 많은 경험이 필요합니다.
박찬호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는데, 박찬호 데뷔 시절에 스스로 수비에 자신이 있다고 했죠. 박찬호가 본격적으로 1군 무대에 모습을 비춘 게 2016년부터인데, 이때 유격수로 165이닝을 소화하면서 수비율이 92.6%에 불과했습니다. 운동 능력은 좋았지만, 수비에서 안정감이 굉장히 부족했죠.
지금도 박찬호는 화려한 수비를 하는 선수이지 안정성에서 아쉬움이 있는 편인데, 이 때는 불안함이 더 컸어요. 그럼에도 현장에서 박찬호에게 유격수 경험을 먹인 건 '운동능력' 때문이었죠. 그리고 박찬호는 현장의 믿음에 부응하여 최근 2년간 유격수 수비왕을 수상했습니다. 박찬호 같은 선수도 시행착오를 세게 겪었는데 윤도현이 바로 유격수 수비를 잘 하면 그건 기적이죠.
그래서 윤도현도 운동능력이 뛰어 나다면, 경험을 쌓다 보면 좋은 유격수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겁니다. (개인적으로 그 가능성을 크게 보진 않습니다.) 하지만, 올해 우승을 노리는 팀에서 '수비의 핵심인 유격수' 자리를 경험도 없는 선수에게 줄 수는 없는 노릇이죠. 게다가 김선빈의 나이도 적지 않으니 윤도현을 굳이 '유격수'로 키울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 2루수나 3루수로 성장해도 충분하다고 생각해요.
수비에서 정말 실망을 많이 준 윤도현이지만, 그래도 오늘 타격에서는 그 어느 때보다 좋았습니다. 개인적으로 오늘 경기 윤도현의 타석에서 가장 칭찬할 부분은 '침착함'이라고 생각했어요. 2회에 그런 대형 실수를 저지르면 마음이 급해서 나쁜 공에 쉽게 방망이가 나올 법한대, 윤도현은 오늘 나쁜 공을 죄다 골라내고 볼넷을 2개나 골라 냈습니다. 놀랍게도 오늘 윤도현이 고른 2개의 볼넷이 1군 통산 첫 볼넷입니다. 지난해 27타석에서 볼넷이 하나도 없었는데 올해는 8타석에서 볼넷 2개를 골랐어요.
중앙 담장을 바로 때리는 2루타와 좌측 담장을 원바운드로 넘긴 2루타도 고무적이었지만, 장타 능력은 이미 지난해 증명(27타석에서 3개의 장타)했기에 새삼스럽지 않은데, 오늘 키움 투수들의 제구력이 엉망이라는 점을 감안해도, 실책까지 한 선수가 타석에서 평정심을 유지하고 볼넷 2개와 장타 2개를 얻어낸 것은 '이범호 감독이 공격 재능을 보는 시각'은 틀리지 않았구나 라는 생각이 들고도 남았습니다. 솔직히 오늘 경기만 보고 왜 윤도현이 변우혁보다 우선적으로 기회를 얻었는 지도 알게 되었고요.
하지만 수비는... 특히, 유격수 수비는 아닙니다. 내일은 쓰더라도 3루수로 쓰는 게 맞고, 유격수는 김규성에게 우선적으로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생각해요.
김규성, 박찬호의 빈 자리를 어느 정도 매워줄까
마침, 김규성 이야기를 안 할 수 없는 데, 오늘 7회 만루 상황에서 위즈덤 대신 대타로 나와서 2타점 안타를 치는 모습 보고 깜짝 놀라긴 했습니다. 만루에서 위즈덤 빼고 김규성 넣는 거 보고 이범호 감독이 아직도 시범경기를 하는구나 싶었는데, 감독의 기대에 완벽하게 부응하는 적시타였습니다. 게다가 마지막 타석에서는 불리한 카운트에서도 달아나는 변화구를 침착하게 골라내며 볼넷까지 얻어 내는 성장하는 모습을 보였고요.
김규성의 가장 큰 단점이, 불리한 카운트에서 타석에서 쫓기듯이 스윙을 하는 건데, 시범경기에서 맹활약을 한 덕분인지 지금 1군 개막해서 6타수 3안타의 맹타를 휘두르고 있고, 타석에서 자신감도 뛰어나고 컨택까지 되고 있습니다.
제가 KIA 선수들 중 타격에 재능이 없다고 생각한 선수가 외야수에 김호령, 내야수에 김규성인데, 그도 그럴 게 김규성은 퓨처스에서도 통산 타율이 .231에 불과하고, 지난해에도 퓨처스에서 161타석 동안 타율이 .225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시범경기와 1군 무대에서 이렇게 정확한 타격을 할 줄은 생각지도 못 했네요.
게다가 작년에 김규성이 퓨처스에서는 타율이 낮긴 했는데 홈런을 8개나 쳤습니다. 김규성의 타격을 신뢰하지 않긴 한대 김호령이랑 다른 부분이 스윙 폼에 있죠. 김규성이 안타를 쳐낼 때의 스윙폼은 정말 이보다 더 아름다울 수 없습니다. 이런 완벽한 스윙폼에서 성적이 나쁜 것도 참 미스터리한 정도입니다. 반대로 김호령은 저 스윙폼이 프로야구 선수의 스윙폼인가 싶은 차이가 있죠.
여튼, 거지 같은 투수들 때문에 거지 같은 경기를 4시간 가까이 봤다는 것에 짜증나는 하루였지만(이런 류의 경기가 진짜 제일 싫습니다. KBO 수준이 왜 떨어지는 지를 아주 잘 요약한 경기) 윤도현과 김규성의 성장세 등은 건졌다 싶네요.
선수 단평
[3/28] KIA : 한화 - 볼질하는 불펜투수들 (0) | 2025.03.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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