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요인
NC의 새 외국인 투수 로건 앨런에게 고전하면서 6회까지 1득점에 그쳤지만, NC의 경험 부족한 불펜진을 공략하면서 8회에 대거 8득점하면서 개막전을 승리했습니다. 로건 앨런의 경우, 구속이 빠르진 않은데 커터, 스위퍼 등 구종이 다양하고 제구가 좋네요. 특히, 왼손타자들은 로건의 투구를 정말 힘들어 할 것 같습니다. 로건이 삼진 5개를 잡았는데 나성범에게 2개, 최형우에게 1개, 최원준에게 1개, 위즈덤에게 1개로. 5개 중 4개가 좌타자. 특히 중심타선이었죠. 다음 번에 로건을 상대할 땐 우타 위주의 라인업으로 들고 와야할 것 같습니다.
NC가 7회 리드를 가져갔음에도 불구하고 올라온 불펜투수들이 완전 생소한 선수들이더군요. 그만큼 NC 불펜진이 좋지 못한 상황이고. 김재열이 비록 작년에 좋은 성적을 거뒀다지만, 작년엔 부담이 덜한 상황에서 올라 온 선수를 바로 마무리로 쓰는 것 자체가 도박 수가 크죠. 여기에 전사민이 좋은 구위를 가졌다지만, 아직 경험이 부족한데 개막전 타이트 상황에서 쓰는 것도 큰 모험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이호준 신임 감독이 초반에 팀을 강하게 키우는 모습이네요.
반면, KIA는 6회에 위기 상황을 2점으로 막은 것이 승리의 결정적인 장면이 됐죠. 곽도규가 올라와서 박민우는 완벽한 투구로 삼진을 잡았지만, 김주원 상대로 1볼 2스트라이크에서 던진 낮게 떨어진 변화구가 안타가 되면서 흔들린 게 문제였습니다. 해설진도 지적하긴 했는데 그 앞 투구에서 김주원이 빠른 공에 타이밍을 못 잡는 모습이었는데 빠른 공을 선택하지 않은 볼배합이 좀 아쉬웠습니다. 곽도규도 볼 선택에 대한 아쉬움이 컸던 지 반드시 잡았어야 할 손아섭을 볼넷으로 내보낸 게 위기의 단초를 제공했죠.
전혀 타자를 압도하지 못 한 조상우
오늘 경기에서 가장 아쉬운 점이라면 김도영의 부상 이탈이겠지만. 이것만큼 좋지 못한 것이 나빴던 조상우의 투구입니다. 10순위이긴 하지만 1라운더라는 비싼 대가를 치뤘는데 그런 기대를 전혀 충족하지 못한 투구였죠. 지난 시범경기 후기 때도 지적한 문제인데 빠른 공으로 타자를 압도하지 못한 게 가장 큰 문제입니다. 구속은 147km/h까지 나왔는데 지나치게 보더라인 피칭에 신경 쓰다보니 계속 불리한 카운트에서 승부구를 던지는 상황이 됐죠.
8회에 나온 전상현의 투구와 너무 대조적이었어요. 전상현은 145km/h 정도의 구속으로 조상우보다 구속이 떨어지지만(물론, 디셉션이 좋기 때문에 구속 이상의 위력이 있긴 합니다) 앞 타석에서 만루 홈런을 칠 뻔한 박건우 상대로 한가운데 높은 코스로 빠른 공을 집어 넣어 파울볼로 카운트를 잡았죠. 반면, 조상우는 빠른 공을 적극적으로 존 안에 넣질 못 했어요. 그러다 보니 볼넷을 남발하며 만루 상황에 몰렸고 박건우 상대로 불리한 카운트(2-1)에서 어쩔 수 없이 빠른 공을 던졌는데, 빠른 공만 잔뜩 노리고 있던 박건우의 방망이가 힘차게 돌았고 펜스 상단에 맞아 역전 2타점이 됐죠. 10센티만 타구가 위로 갔으면 4실점이었는데 운이 따랐습니다.
일단, 이범호 감독이 조상우를 너무 타이트한 상황에서 올린 게 문제였다고 보지만, 오늘 같은 투구면 앞으로도 팽팽한 상황에서는 써먹기 곤란합니다. 전성기 시절 구위가 아니라지만, 어째서 본인의 투구를 믿지 못하고 보더라인 피칭에만 신경 쓰다가 불리한 카운트에서 계속 타자를 상대하는 지 모르겠어요.
장현식이 이탈하면서 조상우를 사 온 모습인데, 사실, 장현식도 구속에 비해 빠른 공의 투구 결과가 좋은 유형은 아닙니다. 좋은 평가를 받은 작년에도 포심 피OPS가 .804였고, 2023년 .857, 2022년 .899, 2021년 .818 등을 기록하며 꾸준히 포심 피OPS가 높았습니다. 반면 조상우는 작년 포심 피OPS .791, 2021년 .778, 2020년 .706으로 장현식보다 좋은 선수죠.
지난해만 놓고 봐도 장현식보다 포심의 피OPS가 괜찮은 투수고요. 그래서 그냥 기대치를 장현식 정도로만 내려놔도 조상우 정도면 그 공백은 채우고도 남는 선수라고 생각해요. 다만, 선수 본인이 FA를 앞두고 더 잘 하고 싶은 생각에 신중한 피칭을 하는 것 같은데 포심을 적극적으로 존 안에 넣지 않으면 오늘 같은 상황이 또 반복이 되죠.
얻어 맞더라도 존 안으로 적극적으로 포심을 넣어서 승부를 하는 게 맞고, 그렇게 유리한 카운트를 잡은 다음에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던져서 좋은 결과를 내야 할 겁니다. 아마 선수 본인도 잘 알거에요. 그리고 조상우가 전성기 시절의 구위를 회복할 거라는 기대는 KIA 팬들도 안 할 겁니다. 그냥 장현식이 나간 자리를 티 나지 않게만 메워주면 그것만 해도 트레이드는 성공이라고 평할 수 있습니다. 장현식 정도의 활약에 그치면 비교적 저렴한 금액으로 잔류도 가능하고요. 전 늘 주장하는 건대 좋은 투수는 다다익선입니다.
오늘 경기 최고 수훈 투수 최지민
조상우 다음에 최지민이 올라왔는데, 1사 만루 상황이라 쉬운 상황이 아니었죠. NC 하위 타선이라지만 이호준 감독이 대타를 기용하면서 압박감을 줬고요. 최지민의 지난해 가장 큰 문제가 볼넷 허용이라서 밀어내기도 각오 했습니다. 그도 그럴 게 지난해 최지민은 삼진보다 볼넷이 더 많았을 정도로 볼넷 허용률이 높은 게 가장 큰 문제였고요.
그런데 지난해 최지민의 볼넷이 늘어난 건 ABS 때문이 크긴 했습니다. 최지민의 가장 큰 장점이라면 스트라이크존을 9등분했을 때 9번 위치, 우타자 몸쪽 낮게 꽂아 버리는 빠른 공을 던질 줄 안다는 점인데, 지난해는 이 쪽 위치의 투구들이 하나 같이 '볼' 선언을 받았습니다. 이러다 보니 낮은 팔 각도로 낮은 존에 140후반대의 포심을 꽂아 버리는 최지민의 장점이 사라졌죠. 즉, ABS 존에 적응하지 못한 게 최지민이 지난 시즌 부진한 가장 큰 원인으로 보면 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올해 ABS존이 아래로 1cm 늘었죠. 큰 변화가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작은 변화가 큰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다는 걸 오늘 최지민이 보여줬습니다. 초구 빠른 공이 볼 선언을 받은 이후 2구째 바깥쪽 낮게 꽂힌 빠른 공이 스트라이크 선언을 받았는데 이 공이 작년이었으면 볼 선언을 받았을 수도 있어 보였어요. 그런데 존을 긁으면서 스트라이크 선언을 받았고 4구째에 똑같은 빠른 공을 그 코스에 던져서 천재환을 루킹 삼진으로 돌려 보냈습니다.
김형준이 최지민의 빠른 공을 노리고 초구부터 스윙을 돌렸지만, KIA 배터리의 선택은 체인지업이었고, 2구째는 과감하게 몸쪽 포심, 그리고 3구째에 하이 패스트볼로 김형준의 방망이를 헛돌게 하면서 위기를 극복했어요. 최지민도 이때 포효하면서 마운드를 내려왔는데 작년과 달라진 결과로 인해 본인도 자신감을 크게 얻었을 것 같습니다. 최지민만 2023년 시즌의 위력을 찾으면 조상우가 부진하고 장현식이 없어도 불펜은 여전히 두텁죠. 어떤 팀에는 1명도 있기 어려운 좌완 파이어볼러를 불펜에 두 명이나 보유하고 있다는 건 KIA 마운드의 가장 큰 장점 중 하나입니다.
KIA가 압도적 1위로 꼽히는 이유는 '두터운 선수층'
오늘 후반 역전을 가져다 준 것은 최원준의 8회 선두타자 안타(왜 몸이 늦게 풀리는 지...) 나성범의 동점 적시타, 그리고 만루 상황에서 최형우의 역전 2타점 2루타, 김선빈의 2타점 쐐기타 등 기존 주전 선수들의 활약 덕분이긴 합니다.(개인적으로 김재열은 왜 최형우에게 포크볼만 3개 연속 던졌는 지 모르겠네요. 신인급 타자면 모를까 최형우 같은 배테랑이 그걸 놓칠 거라고 생각하는 지?) 하지만 9회를 가비지 이닝으로 만들어 버린 건 백업들의 활약 덕분이었죠.
대주자로 나온 박정우가 날카로운 타구를 날리며 다시 득점 세팅을 해줬고, 한준수가 2-1 유리한 카운트에서 빠른 공 하나만 보고 힘차게 돌린 게 가바지 이닝을 만든 3점 홈런이 되면서 경기를 매조지 해버렸습니다. 박정우는 2군에서 더 보여줄 게 없는 선수고, 이창진이 부상으로 개막 엔트리 합류가 안 됐는데 이창진이 곧 합류하면(기술훈련 중이라고 하죠) 외야 선수층은 더 두터워지고, 상대에서 좌투수를 냈을 때 스페셜리스트 역할까지 해줄 수 있습니다. 여기에 서건창도 대기 중이고요.
WRC+ 100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선수들(이창진, 이우성, 변우혁 등)이 붙박이 주전이 아니라는 게 KIA 타선의 진정한 무서움이라고 생각해요. 내야 유망주들도 제법 모아놨고, 지금 KIA에 부족한 건 2군에 투수가 부족하다는 것 정도 외엔 없어 보입니다. 2군에 투수가 부족하다는 게 단점인 것도 사실 웃기는 일이죠. 팬들은 1군 성적만을 위주로 보는데 '아, 우리팀의 약점은 2군에 투수가 부족한 겁니다.' 라고 하면 다른 팀은 '이 색히가 놀리나?' 싶을 겁니다. 그리고 2군에 투수가 부족하기 때문에 지난해 드래프트에서 투수 위주로 뽑았고(박재현 빼곤 싹다 우완) 이런 식으로 팜을 채우면 선순환도 일어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두터운 선수층'이 맞는 지 검증할 수 있는 시간이 생각보다 빨리 왔습니다. 김도영이 개막 첫 경기부터 부상을 당했기 때문이죠. 2루를 노릴 필요가 전혀 없는 상황이었는데 어째서 2루를 노렸는 지 안타깝지만,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으니 정밀 검사 결과가 좋게 나오길 바래야죠. 그래도 최소 한 달 정도의 공백은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래도 3루에 변우혁과 윤도현 같은 자원들을 쓸 수 있을테니 마냥 '망했다'는 생각이 들진 않아요. 작년에도 나성범 없이 시즌을 스타트 했음에도 KIA는 압도적인 공격력으로 시즌을 재패했죠. 작년과 비슷한 상황이고 그때는 나성범이 없었다면 올해는 김도영이 없이 초반을 버텨야 한다는 것 말고는 달라진 게 없다고 생각합니다.
오히려 걱정은 '위즈덤' 같아요. 시범경기든, 오늘 개막 1경기든 연습 경기든 배럴 타구를 보기 어렵습니다. 타석에서 침착함도 좋고, 선구안도 좋은데 존 안에 들어오는 투구를 페어 지역으로 보내야 하는데 자꾸 파울이 나오고 팝업이 나옵니다. 솔직히 시범경기와 오늘 개막전을 보면 '김주형'이 생각날 정도로 존 안에 들어오는 투구에 대한 컨택이 안 좋습니다. 스윙 각도의 문제인지, 아니면 아직 KBO 투구 템포에 적응을 못 하는 건지, 좀 우려스럽긴 하네요. 그래도 적어도 공은 잘 보고, '1루 수비'에서 강점을 보이고 있다는 점 때문에 한 달 정도는 충분히 기다려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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