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요인
오늘 경기 롯데 라인업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이미 5강 진출이 좌절된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베스트 멤버를 풀 가동했더군요. 선발 투수로 박진을 내세운 거면 게임 포기한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박진은 그냥 정상 로테이션을 돈 것 뿐입니다. 삼성에서 김대호 선수를 선발로 낸 것과 달리 박진은 1군에서 38경기나 던진 투수이고 선발도 오늘이 처음이 아닙니다.
그래도 보통 포스트시즌 진출이 좌절되면, 유망주를 라인업에 넣거나, 유망주 풀이 두텁지 않더라도 그동안 많은 공을 던진 불펜투수들은 쉬기 마련인데, 오늘 김태형 감독은 리드를 잡은 이후에 승리계투조인 구승민, 김상수, 김원중을 모두 투입했습니다. 심지어 김원중이 나왔을 때는 세이브 상황도 아니었어요. 정말, 이기려 하는데 진심이구나 싶었습니다.
이기려는 시도 자체가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롯데의 경우, 오랜 기간 가을야구에 진출하지 못 했으니, 선수들에게 '위닝 멘탈리티'를 심어줄 필요는 있죠. 그리고 박진 투수 오늘 공이 정말 좋더라고요. 오늘처럼 슬라이더, 커브, 포크볼 3개 구종이 존에서 그렇게 잘 떨어지면 그 어떤 타자도 쉽게 공략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이범호 감독이 오늘 경기 잡을 생각이었다면 서건창, 나성범, 최형우, 소크라테스를 모두 기용했겠죠. 그 이유는 올해 박진 투수는 우타자 상대로는 피OPS가 .639(29.0이닝)에 불과하지만 좌타자 상대로는 피OPS가 .900에 달합니다. KIA에서 나온 좌타자가 최원준, 고종욱, 한준수, 김규성 이렇게 4명인데 실제로 최원준, 고종욱, 한준수는 모두 안타를 쳤습니다. 1군 경험이 부족한 김규성만 범타로 물러났고요. 슬라이더, 커브가 너무 좋으니 우타자가 치긴 쉽지 않죠.
그리고 우타자가 치기 어려운 변화구를 던졌기 때문인지 김도영이나 윤도현이 고전하는 게 보였습니다. 김도영은 그래도 안타 2개를 쳤지만, 첫 타석 3루타는 운이 따른 타구였고, 윤도현은 거의 대응을 못 했죠. 그래도 박진의 까다로운 변화구에 삼진을 1개 밖(?)에 당하지 않은 건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양현종이 불안하다?
오늘 양현종은 5이닝 7피안타 5자책으로 시즌 5패째를 당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시리즈 등판에 대해서 불안해 하는 팬들도 있을 것 같은데, 3회 실점은 억까가 좀 섞였어요. 8번 박승욱부터 3번 고승민까지 5타자 연속 안타를 허용했는데, 이 중 정보근, 레이예스, 고승민의 안타는 운이 따른 안타였습니다. 황성빈의 안타 역시도 전진수비가 아니라 정상 수비였으면 1루수가 잡을 수도 있었고요. 그냥 오는 길에 쓰레기를 많이 버렸나 보다 해야죠.
정보근의 안타는 타구 속도도 느렸으며, 황성빈의 안타는 비교적 잘 맞긴 했는데 앞서 이야기했듯이 1루수가 너무 앞에 있었고(그래도 박승욱의 안타와 함께 타구 속도는 가장 빨랐음) 레이예스는 코스 좋은 땅볼 중전 안타. 고승민 타구가 좀 많이 억까였는데 타이밍 늦게 밀려 맞은 땅볼 타구였는데 수비 쉬프트 때문에(김규성은 왜 유격수 위치에 있던 것인가) 안타가 됐고, 고종욱의 말도 안 되는 수비가 겹치면서 3루타가 됐죠. 이후에 나온 나승엽의 안타도 고승민의 타구랑 똑같았습니다.
양현종의 장점은 '스트라이크를 잘 던진다'는 것이고, 양현종의 단점도 '스트라이크를 잘 던진다'입니다. 오늘처럼 승부가 중요하지 않은 경기는 더욱 그렇죠. 스트라이크를 자주 던지면 당연히 인플레이 타구가 늘어나고 피안타율도 오릅니다. 대표적인 투수가 KIA 역대 최고의 외국인 투수로 꼽히는 애런 브룩스입니다.
애런 브룩스는 어마무시한 공을 던졌는데 이 선수는 볼을 거의 던지지 않았습니다. 2020시즌에 9이닝 당 볼넷이 1.43개였고, 2021시즌에도 9이닝 당 볼넷이 1.85개였어요. 그런데 브룩스는 피안타율이 첫 해에는 .238로 구위에 비하면 높은 편이었습니다. 시즌 후반부에 이것도 나아진 거지, 시즌 초반부에는 피안타율이 2할 8푼을 상회했습니다. 그리고 두 번째 시즌은 BABIP가 .349까지 치솟으면서 피안타율도 .298까지 치솟았습니다.(여기에 투심러이기 때문에 더욱 피안타율이 높았죠) 그럼에도 마약 사건 아니었다면, 당연히 재계약이 가능한 성적이었어요.(ERA 3.35)
오늘의 양현종도 비슷합니다. 유인구 따윈 없다. 빨리 빨리 스트라이크나 적극적으로 던지자는 생각으로 던졌고, 그게 5연속 안타라는 결과로 나타난 겁니다. 그리고 이 5연속 안타 중에 정말이지 잘 맞은 타구는 박승욱과 황성빈의 타구 뿐이었어요. 홈런이 아니면 된 거죠.
양현종이 볼질을 한다? 그때 걱정해도 됩니다. 양현종이 3연속 배럴 타구를 허용했다? 그때 걱정해도 됩니다. 전 오늘 양현종이 5실점했다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그냥 날이 아닌 겁니다. 5월 1일 경기에서 양현종이 KT 상대로 완투승을 거뒀을 때 저는 아래와 같이 평한 바가 있습니다.
"올 시즌 현재 양현종의 BABIP가 .267에 불과합니다. 통산 BABIP이 .313이고, 좋은 성적 찍었던 2019년에도 BABIP가 .303이었으니, 올해 운이 많이 따르고 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죠. 달리 말하면, 떨어진 평균 구속으로 지금 성적을 유지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아마 시즌 종료 시에는 ERA 3점대 후반에서 4점대 초반 정도로 끝마치지 않을까 싶어요. 잘 풀리는 경기는 오늘처럼 수비 정면으로 가면서 경기를 풀어가지만, 그렇지 않은 경기는 대량 실점할 수도 있고요."
야구에서 운은 돌고 돕니다. 5월 1일 당시 .267에 불과했던 양현종의 BABIP는 시즌 마지막 등판이 확실한 오늘 현재 .290이 되었습니다. 이 수치도 통산 BABIP(.312)에 비하면 낮은 수치고, 양현종의 ERA는 4.10이 되었어요. 결국, BABIP가 평균에 수렴하면서 ERA가 그만큼 나빠졌고, 제 예상대로 4점대 초반까지 ERA가 나빠졌습니다.
이건 당연한 세월의 흐름입니다. 양현종은 36세의 투수이고, 이젠 전성기의 포심을 던지지 못 하니까요. 오늘 5연속 안타를 맞은 건 운이 안 따르기도 했지만, '삼진 능력이 떨어졌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통산 19.5%였던 양현종의 탈삼진율은 올해 17.7%까지 낮아졌고, 작년 대비 0.5%p 떨어졌습니다. 당연한 현상입니다. 양현종은 한 살 더 먹었고, 포심 평균구속은 작년 142km/h에서 올해 140.2km/h로 낮아졌으니까요.
하지만 5월 1일 글에도 적었듯이 전 양현종이 이렇게 성적이 나빠졌어도 여전히 국내 투수풀이 형편없는 KBO에선 경쟁력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3선발로는 부족하지 않은 성적이니까요. 내년까지 3선발 역할을 하고, 선수 생활 막바지에는 5선발로 뛰어줘도 충분히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내년이 문제가 아니라 한국시리즈에서 양현종의 투구가 걱정된다고요? 한국시리즈였어도 양현종이 오늘처럼 던졌을까요? 양현종은 그렇게 미련한 투수가 아닙니다. 괜히 '대투수'겠어요?
그 밖의 선수들에 대한 짧은 평가
오늘 김도영은 박진 상대로 생각보다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위에도 적었지만 우타자에게 박진은 그리 만만한 투수가 아닙니다. 슬라이더의 피OPS가 .672에 불과하고, 커브 피OPS가 .250에 불과합니다. 게다가 이 기록은 전체 상대 기록입니다. 스탯티즈에서 검색하는 방법을 모르겠는데, 우타자에게만 슬라이더를 던졌을 때 기록을 찾아보면 아마 피OPS가 .600 미만일 거라고 장담합니다. 그 정도로 오늘 슬라이더가 예리하게 떨어졌습니다. 심지어 오늘 커브에 포크볼까지 긁혔는데 정말 치기 까다롭겠죠.
윤도현은 우려한대로 변화구에 대한 대응력이 떨어집니다. 상하체 분리 스윙이 나오고 하체가 크게 흔들립니다. 어제도 이야기했지만 당연한 겁니다. 이제 고작 1군 통산 타석이 14타석이니까요. 게다가 우타자에게 까다로운 변화구를 던지는 롯데 투수들이 줄줄이 나오는데 공략 어려운 건 당연하죠. 수비, 주루에서 아직 사고를 안 쳤으니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어갈 가능성은 여전히 있습니다.
이우성은 오늘도 안타는 치지 못 했지만, 그래도 두 번의 좋은 타구를 날리면서 서서히 감이 올라오는 것 같습니다. 변우혁과 이우성 둘 다 한국시리즈 엔트리 포함은 문제 없어 보입니다. 그리고 그동안 해온 게 있는 선수인데 최근 부진하다고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빼는 것도 팀 케미에 좋지 못 합니다.
어제 화제의 중심에 있던 유승철은 오늘 보완점이 바로 나왔죠. 주자가 없을 땐 포심 최저 145km/h ~ 최고 149km/h를 던졌는데 전준우가 좋아하는 코스로 포심이 들어가 2루타를 맞아 주자가 나가니 포심 최저 143km/h ~ 최고 145km/h로 구속이 뚜욱 떨어집니다. 마지막 박승욱 잡았을 때는 포심 구속이 142km/h, 142 km/h, 140 km/h이었어요. 아직 야마모토의 투구폼을 완벽히 익히지 못 했다는 증거죠. 이것도 당연한 겁니다. 유승철이 야마모토 폼 흉내낸 건 고작 한 달입니다.
그래도 포심 힘은 있어서 전준우를 헛스윙으로 돌려 세운 148km/h 포심과 박승욱을 평범한 라인드라이브(제대로 먹힌 타구입니다.)로 잡은 포심 위력을 보면, 확실히 힘은 붙은 모습입니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는 당연히 포함이 안 되지만, 야마모토의 투구폼을 완벽하게 자기 것으로 만들면 진짜 엄청난 활약을 기대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그 기회는 내년에 주어지겠지요.
김대유, 이준영 두 명 역시도 오늘 롯데 우타자들을 상대로 무실점으로 위기를 잘 넘겼습니다. 둘 다 삼진 1개 이상씩을 잡아냈고, 둘 다 한국시리즈 엔트리 승선에 전혀 문제 없어 보입니다. 이 선수들은 별 거 없어요. 그냥 좌타자 딱 한 명만 잡으면 역할을 다한 겁니다. 우리 팀은 다른 팀에는 한 명 있을까 말까한 좌타 스페셜리스트를 2명이나 보유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우타자도 잘 잡는 좌타 저승사자 곽도규까지 있고요. 당연히 데리고 가야죠.
개인적으로 순위 결정 이후 백업 선수들 중 가장 안타까운 선수는 최정용입니다. KIA 2군에서 가장 공격력은 좋은 타자를 꼽으라면 두 말 할 것 없이 최정용입니다. 올해 퓨처스에서 OPS .820(201타수 64안타)를 기록하고 있고, 퓨처스 통산 타율이 무려 .322나 됩니다. 퓨처스 통산 OPS도 .834를 기록하고 있고요. 최정용도 2군 무대는 진작 졸업했죠.
문제는 1군에서 통하지 않는 툴입니다. 최정용은 전형적으로 2군에서 통하는 컨택과 파워를 보유하고 있다고 봐야죠. 가장 치명적인 문제는 수비와 주루 능력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과거 KIA 소속으로 퓨처스 4할 타율을 기록한 '이영수(현재는 두산 타격보조코치이고 이범호 감독 절친)'가 생각나는 선수에요. 파워 없고 수비 안 좋은데 컨택은 뛰어난 선수.
최정용 1996년생으로 이제 서른 살을 앞두고 있습니다. KIA 내야 유망주들이 차곡차곡 쌓여가고 있으니, 롯데로 간 이정훈처럼 KIA에서 다른 팀으로 보내 기회를 줄 것 같아요. 그리고 현재 주는 기회가 최정용에게 주는 마지막 기회로 생각되어 집니다. 오늘도 무사 1, 2루 좋은 찬스에서 병살타를 치면서 기회를 스스로 차버렸죠. 더 안타까운 건 공을 잘 고르고 풀카운트에서 존으로 들어오는 포크볼을 공략해 좋지 못한 결과를 냈다는 점입니다.
2군에서 더 보여줄 게 없는 선수인데 이렇게 1군에서 자리 잡지 못하는 사례를 볼 때마다 참 안타깝습니다.
마지막으로 남은 3경기에서 2홈런은 정말 쉽지 않네요. 아무래도 38개 홈런으로 시즌 마칠 것 같습니다. 뭐, 내년에 다시 도전하면 되죠. So~ C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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