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요인
오늘 경기는 후라도와 양현종 두 투수의 컨디션이 좋았습니다. 양현종은 1회에만 안 좋았고(1실점인 게 다행일 정도) 2회부터는 자기 페이스를 찾아서 공을 던지더군요. 특히, 체인지업이 정말 좋은 위치에서 떨어졌는데 그 결과 삼진을 무려 10개나 잡아냈습니다. 키움에서 젊은 타자들 위주로 라인업을 짰는데 경험이 적은 선수들이 양현종의 체인지업을 골라 내기란 쉽지 않죠.
후라도도 체인지업을 무기로 KIA 타자들을 상대로 무수한 땅볼 타구를 양산해냈죠. 탈삼진이 4개로 적었지만, KIA 타선은 팀타율이 3할인 리그에서 가장 정확한 타격을 하는 타자들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후라도가 던진 공들의 움직임이 너무 좋아서 뜬공이 거의 나오지 않고, 대부분 땅볼이 나왔죠.
후라도는 리그 최고의 체인지업 마스터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오늘 체인지업 정말 좋았습니다. 솔직히 3회말에 고영우의 어이없는 실책 2개 아니었으면 경기 내내 끌려 갔을 것이라고 생각이 들 정도로 오늘 체인지업 커맨드가 너무 좋더라고요.
이렇게 상대 투수가 강할 때 이기는 법은 별 거 없습니다. 우리 팀 투수도 잘 던지면 되고 양현종은 오늘 그 역할을 했습니다. 이렇게 버티다가 경기 후반 상대 팀 투수의 힘이 떨어지고 불펜 투수가 올라왔을 때 공략하면 되죠. 오늘의 KIA는 이걸 잘 해냈습니다.
양현종, 한국시리즈가 기대되는 호투
후라도와 양현종이 완벽한 피칭을 하는 동안, KIA에서 먼저 양현종을 마운드에서 내렸죠. 투구 수가 83개에 그쳤지만, 양현종도 7회까지만 던질 생각이었는 지 7회 투구에서 한 방이 있는 김건희를 상대로 오늘 던진 구속 중 최고 구속인 148km/h 까지 던지더군요.(그 앞에 던진 공도 147km/h) 이걸 보면서, KIA가 한국시리즈에 직행만 하면 '푹 쉰 양현종'이 좋은 피칭을 보여줄 수 있을 것이란 믿음이 생겼습니다. 지금도 맘만 먹으면 140km/h 후반까지 구속을 끌어 올리는 투구를 하고 있으니까요.
올해 양현종 포심 평균 구속은 140.2km/h를 기록하며, 142km/h 였던 작년보다 2km/h 가까이 낮아졌습니다. 포심 피OPS는 작년과 올해 비슷한 수준(OPS .800 내외)이고요. 올해 양현종이 작년과 다른 점은 체인지업입니다. 체인지업의 피OPS가 .580에 불과해요. 그래서 올해 우타자 상대 성적(피OPS .656)이 좌타자 상대 성적(피OPS .769)보다 좋습니다.
양현종을 보면, 왼손 선발 투수의 표본 그 자체입니다. 전성기가 지나서 구속은 많이 내려왔지만,(메이저리그 진출 직전 해 평균 구속은 144.2km/h)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모두 존 근처로 던질 줄 알고, 일단 커맨드가 너무 좋죠.
이의리나 윤영철은 양현종과는 다른 타입이고(이의리는 더 빠른 공을 던지고, 윤영철은 더 느린 공을 던지고) 개인적으론 체인지업이 주무기인 김기훈이 양현종처럼 잘 성장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양현종도 프로에서 통하는 선발투수가 되기 까지 7년이 걸렸어요.(2009년에 잠깐 반짝하긴 함) 김기훈이 올해 입단 6년차이니 내년에는 포텐 터뜨렸으면 좋겠습니다.
양현종은 오늘 7이닝을 투구하면서 162이닝 투구가 되었고, 170이닝 투구까지 8이닝이 남았는데, 6일 푹 쉬고 일요일에 다시 좋은 피칭 보여줬으면 좋겠습니다. 공교롭게도 일요일에도 또 키움을 상대하네요.(후라도도 또 만나고 ㅋㅋ)
곽도규 고졸 신인 2년차가 이 정도면 훌륭하다
양현종 투구 수가 많지 않아 8회에도 올릴 수 있었지만, 오늘 경기 이후에 수요일까지 경기가 없고, 목요일 경기 치르고 금요일에도 경기가 없어서 양현종을 일찍 내리고 불펜을 한 타이밍 일찍 투입했는데 일단 장현식이 첫 타자 원성준 상대로 불리한 카운트에서 던진 포심이 가운데 몰리면서 안타를 허용했죠.
이후 김재현과 장재영은 모두 주무기인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3구 삼진으로 잡아냈는데, 이주형에게 던진 원심(?) 포크볼이 안타가 되면서 위기에 몰렸죠. 이 타구는 사실 좀 아쉽긴 했습니다. 그리 잘 맞은 타구가 아니었는데 코스가 좋아서 나온 안타였으니까요.
키움에서 주축 타자들이 모두 빠지면서 타선이 많이 약해지긴 했어도 송성문-김혜성 라인은 리그 최고 수준이라 위기에 몰렸죠. 그래서 KIA에서는 좌타 킬러 곽도규를 마운드에 올립니다. 일단, 곽도규는 송성문 상대로 처음에 볼 2개를 던졌지만, 이후 스트라이크 2개를 잘 넣고, 5구째에 커브 던진 게 결과가 안 좋았습니다.
송성문이 아무리 좋은 타자라고 해도 좌투 상대로는 OPS가 .715로 우투 상대(1.018)보다 안 좋고, 곽도규는 올해 좌타자 상대 피OPS가 .535에 불과합니다. 비결은 '투심'이죠. 그래서 5구째는 유인구가 아니라 그냥 들어갔어야 했고, 송성문도 5구째 커브가 올 걸 알아서 방망이를 내밀지 않았습니다. 그냥 4구째 스트라이크 넣었던 투심을 똑같이 던졌어야 한다고 봤어요. 곽도규 투심이 낮게 보더라인으로 들어가면 좌타자는 알고 쳐도 땅볼입니다.
결국, 만루 상황이 초래됐고, 김혜성 상대로 11구까지 가는 승부 끝에 밀어내기가 나오긴 했는데, 전 이 장면에서 오히려 곽도규가 성장했다고 느껴지더라고요.
첫 3개의 공을 볼로 던질 때만 해도 밀어내기가 100% 확실하겠구나 싶었는데 4구째부터 10구째까지 던진 공들이 너무 좋았습니다. 7개의 공을 모두 타자가 치기 어려운 코스로 넣었으니까요. 어제 4안타를 친 김혜성의 컨디션이니까 곽도규의 까다로운 공들을 다 커트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11구째 커브를 프론트 도어로 넣으려고 했는데 그것까지 되면 랜디 존슨이죠.
다만, 김건희 상대할 땐 운이 따르긴 했죠. 3볼 1스트라이크에서 5구째 투심은 잘 넣어서 파울을 만들었지만, 6구째 투심은 많이 벗어나는 볼이었습니다. 경험 많은 타자였다면 또 다시 볼을 골라내 밀어내기에 성공했을 거에요.
하지만, 곽도규는 이제 겨우 고졸 2년차에 불과합니다. 아무리 키움 타선이 안 좋아도 상대하는 두 명의 좌타자가 리그 최고의 좌타자들이었고, 팽팽한 승부라서 가운데 몰리는 공을 던지면 안 된다는 생각 때문에 흔들릴 법도 하죠. 그리고 투수는 이러면서 성장하는 겁니다. 전 곽도규와 김혜성의 11구 승부를 보면서, 어떤 결과가 나왔더라도 이 과정은 곽도규가 더 좋은 투수가 되는 큰 경험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8회말 공격 4득점. 강팀이라는 증명
그리고 지금 KIA 타선은 8회에 뒤쳐지는 점수를 내줬더라도 충분히 역전을 시킬 수 있는 타선이라는 걸 8회말 공격에서 보여줬죠. 보통 팀이 약하면 후반부 실점이 패배로 연결되기 마련이고, 상대 투수가 너무 좋은 공을 던져서 더더욱 공략이 어려울 수 있는데 선두타자 최원준이 후라도의 잘 제구된 바깥쪽 투심을 공략해서 안타를 만들어 내며 기회를 창출했죠.
박찬호의 번트로 1사 2루 상황. 어제의 영웅 소크라테스는 1볼 2스트라이크라는 불리한 카운트에서 큰 욕심 부리지 않고 4구째 후라도의 바깥쪽 슬라이더를 결대로 컨택 스윙하여 동점타를 때립니다. 그리고 상대 외야수의 홈송구가 빗나간 틈에 2루까지 주루하는 좋은 주루 플레이까지 보여줬고요.
빠르게 동점이 된 순간, 전 이길 확률이 높아졌다고 봤어요. 키움 불펜이 아무래도 10개 구단 중에 가장 약하고, 오늘 홈경기를 치르기 때문이죠. KIA는 아직 전상현, 정해영을 쓰지 않았고요. 하지만 계속된 1사 2루 찬스에서 김도영이 친 타구가 운 좋게 3루 베이스를 맞고 3루타가 됐고(키움 좌익수 수비가 오늘 참 안 좋던;;) 이게 역전 점수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주자 3루에 있으니 나성범은 큰 욕심 안 부리고 가벼운 스윙으로 희생플라이를 쳤고, 주자 1루 상황에 장타가 필요하니까 천재 타자 김선빈은 정해영 아쉽지 않을 만큼의 타구를 치면서 또 추가 득점을 만들어 냅니다. 마지막까지 변수를 허용하지 않은 타자들의 후반 집중력이 돋보이는 경기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오늘 경기 승리로 정규시즌 우승 매직넘버는 6으로 줄였습니다. 남은 경기는 12경기. 5할 승부만 하면 2위 삼성이 전승 하더라도 우승 확정입니다. 하지만, 기왕이면 추석 연휴 때 정규시즌 우승이 결정되었으면 좋겠네요. 선수들도 다음 주 안에 우승을 확정 짓고 휴식을 취한다는 마음으로 집중력 잘 유지해줬으면 좋겠습니다.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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