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요인 - 올 시즌 최고로 운이 터진 경기
오늘 KIA 경기력은 역대급 똥 그 자체였습니다. 삼성에게 2경기를 다 내주게 되면 정규시즌 1위를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인데, 이 중요한 경기에서 투수들은 9개의 사사구를 주면서 자멸하고, 야수들은 수비에서 무려 4개의 실책을 저질렀죠. 심지어 경기 초반에 3점 차이로 이기고 있던 경기였는데 만루 홈런까지 내주면서 패색이 짙었습니다.
반대로 말하면, KIA는 4개의 에러, 9개의 사사구, 4개의 홈런(심지어 만루 홈런 포함)을 내주고도 경기를 잡아내는 굉장한 모습을 보였고요. 결과적으로 오늘 경기 승리하면서 정규시즌 1위에 대한 걱정은 조금 덜어도 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이러면 내일 경기 놓치더라도 4.5경기 차이. 남은 경기 수 감안하면 지독한 연패에 빠지지 않는 한 자력으로 정규시즌 1위를 확정지을 수 있는 상황이 됐죠.
오늘 경기 운은 초반부터 심상치 않았죠. 2회 최형우의 적시타 이후, 나성범의 타구 완전 빗맞았는데 좌익수 왼편에 뚝 떨어지면서 5점째를 만들었죠. 하지만 나성범의 뽀록 안타는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6회 오승환이 올라오면서 모든 행운이 KIA 쪽으로 넘어 와 버렸습니다. 사실, 8월 9일 경기에서 오승환 지난 KIA 전 블론도 운이 안 따랐었어요. 1/3이닝 동안 안타 4개 맞으면서 패전 투수가 됐는데 잘 맞은 건 첫 타자 김선빈이 친 2루타(공교롭게도 오늘도 잘 맞은 안타는 김선빈의 안타 뿐)였고, 1사 1-3루에서 끝내기 실점도 서건창의 평범한 내야 플라이를 삼성의 수비수 3명이 공을 캐치하지 못 하면서 나왔죠.
그런데 오늘은 그때보다 더 했습니다. 8월 9일 경기와 마찬가지로 김선빈이 오승환 상대로 잘 맞은 타구(이것도 오승환에게 운이 따랐다면 1루수 글러브에 들어갔겠지요.)를 치고 나왔고, 이우성은 오승환이 풀카운트에서 ABS 보더라인에 걸치는 슬라이더로 삼진을 잡고, 한준수마저 몸쪽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위기를 넘기나 했는데 최원준이 친 몸쪽 깊숙한 포심에 방망이가 부러지면서 애매한 타구가 나왔죠.
최원준이 처음 스타트는 느렸지만, 이후 전력 질주하면서 1루에 무사히 세이프, 2사 만루 상황에서 박찬호도 오승환이 잘 던진 몸쪽 깊숙한 포심이었고, 보통 그쪽 코스로 공을 던지면 팝플라이가 나오는데, 박찬호의 타구 역시 팝플라이 성이었죠. 그런데 운이 좋게 그게 유격수와 중견수 사이에 똑 떨어지는 안타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 타구로 12대12 동점.
박찬호 타구보다 더 큰 억까가 소크라테스가 친 타구죠. 오승환이 허용한 게 아니라 최지광이 허용했지만 최원준, 박찬호와 마찬가지로 몸쪽 깊숙하게 슬라이더 잘 던졌고, 소크라테스가 친 타구는 역시 또 팝플라이성. 그런데 2루수, 1루수, 우익수 사이에 떨어지는 절묘한 타구가 됐고, 이 2타점 2루타가 결승점이 되고 말았습니다.
행운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죠. 오늘 희한하게 홈런이 많이 나왔던 라팍(후술하겠습니다.)에서 2점 차이, 플라이볼 투수 정해영의 등판은 그야말로 살얼음판인 상황이었는데 8회 1사 1-3루에서 최형우가 친 타구 역시 팝플라이였는데 아무도 잡을 수 없는 곳에 똑 떨어지며 3점 차이를 만들었습니다. 똥멍청이 같았던 경기력에도 오늘 이겼던 이유는 Babip 이라고 부르는 야구의 신이 KIA를 도와줬기 때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행운이 많이 따랐던 경기였습니다.
심지어 수비에서도 행운의 아웃이 나왔죠. 9회 전병우가 친 타구가 우측 파울 라인을 벗어났다가 시내루(?)를 먹으면서 1루수 베이스 앞에서 절묘하게 페어 지역으로 들어 오며 9회 첫 아웃 카운트가 됐습니다. 정해영이 첫 타자 윤정빈에게 홈런을 허용하면서 불안한 출발을 보였는데, 전병우의 이 타구가 행운의 아웃이 되면서 정해영도 불안한 마음을 덜었을 거에요.
그냥 시작부터 끝까지 KIA 쪽에 야구의 신이 도운 경기였고. 이런 똥덩어리 같은 경기력으로도 이겼던 건, 야구의 신이 '야? 너네팀 올해 컨셉이 2위 팀 상대로 때려 잡는 거라며? 그거 그대로 보여줄게'라고 주문을 외운 게 아니면 설명이 안 되는 경기였습니다.
라팍 하늘에 제트 기류라도 부나?
오늘 양팀 도합 7개의 홈런이 나왔습니다. 이 중에서 납득이 가는 홈런은 박병호의 홈런 말곤 딱히 납득이 안 되더라고요. 가장 납득이 안 간 홈런은 최형우의 홈런이었습니다. 분명히 방망이 끝에 맞았는데 하늘에 부스터가 있는 지, 발사각도 높았음에도 불구하고 라이온스 파크의 좌측 담장을 살짝 넘겼죠.
리그에서 가장 좌중간, 우중간이 작은 구장이라 그 쪽으로 뜨면 넘어가는 것에 대한 기대를 품을 수 있긴 한대, 최형우의 타구는 그냥 빗맞은 타구였습니다. 어째서 넘어갔는 지 미스테리고, 담장 크기 때문이 아니라 오늘은 뜬공이 이상하게 더 멀리 뻗어 가는 느낌이 있었어요.
최원준의 홈런도 그랬어요. 최원준이 저 각도로 타구를 날릴 때마다 뜬공이 되는 걸 자주 봤는데 이상하게 뻗어 가서 담장을 넘기더군요. 윤정빈의 홈런도 비슷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물론, 중심에 맞긴 했지만, 라팍 가장 깊숙한 곳으로 날릴만한 타구였는 지는 잘 모르겠어요. 박찬호도 저렇게 잘 맞은 타구 날리고 낭낭한 플라이 되는 장면을 자주 봤는데, 오늘은 정말 타구가 멀리 갔습니다.
라팍은 구장이 작은 것도 작은 거지만, 바람 방향도 다른 구장에 비해서 홈런 타자에게 유리한 구조가 아닌가 싶을 정도입니다. 그래서 올해 라팍에 홈런이 굉장히 많이 나오고 있고, 삼성 투수들도 라팍에서 뛰면서 어려움을 겪고 있죠. 아래는 올 시즌 삼성 주요 투수들의 피OPS 입니다.
선발 중에 원태인과 레예스(레예스는 의외네요. KBO 오기 전에 많은 피홈런이 약점으로 지적 받던 투수였는데)를 제외하면 홈 구장에서 성적이 더 안 좋고, 백정현과 이승현은 그 편차가 굉장히 큽니다. 불펜 3대장인 임창민, 김재윤, 오승환도 홈 성적이 훨씬 나쁘고요. 특히, 임창민은 원정에서는 S급 불펜이지만, 홈에서는 불안함이 있네요.
아무튼, 삼성 투수들은 정말 홈 경기 할 때마다 진땀이 많이 날 것 같습니다. 라팍에 어울리는 투수는 많은 땅볼을 유도할 수 있는 투수여야 하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드네요. 오늘 홈런 타구들을 보면서, 타구의 꼬리에 추진기라도 달려 있는건가 싶을 정도로 기이한 경기였습니다.
박찬호 1번 타자 자리를 증명하다
오늘 타선에서의 수훈 선수는 당연히 박찬호죠. 2회에 박병호에게 만루 홈런을 허용해 완전히 침울해진 경기 분위기를 좌측 담장을 시원하게 넘기는 동점 쓰리런으로 균형을 맞춘 것부터 굉장히 큰 임팩트를 보여줬습니다. 그에 앞서 2회에는 백정현 상대로 볼넷을 골라 나가며 톱타자 역할을 잘 수행하기도 했고요.
박찬호의 성장은 정말 인간 승리 급이죠. 만약 박찬호 타격이 작년 수준이었다면 KIA는 김도영이 아니라 문동주를 뽑았을 겁니다. 박찬호가 수비는 좋아도 공격이 너무 안 되니, 유격수로 좋은 공격력이 기대되는 김도영을 뽑은 셈이죠. 아이러니하게도 김도영이 뽑힌 이후 박찬호도 좋아졌고, 김도영은 유격수가 아니라 3루수로 뛰며 수비 부담을 덜어내며 공격력을 극대화시킬 수 있었죠.
박찬호에게 부족한 건 플레이에 있어서 침착함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부분만 개선되면 더 좋은 선수가 될 수 있어 보입니다. 그런데 타고 난 천성이라는 게 있어서, 박찬호가 플레이에 침착함을 갖추는 날이 올 가능성은 매우 적어 보이네요. 그냥 지금의 박찬호 플레이 스타일이 팀에 부족한 무언가를 채워줄 수 있는 역할이라도 잘 해주길 바랍니다.
여튼, 어수선했던 경기를 야수들의 타석에서의 집중력과, 선발과 추격조는 털렸지만, 승리계투조는 정해영이 윤정빈에게 맞은 뜬금포 한 개 말고는 호투해준 것이 승리의 결정적인 이유가 되었네요.
장현식과 최지민 같은 구위형 불펜투수 2명(최지민이 올해 볼넷이 많은 게 문제지, 피홈런은 1개 밖에 없습니다.)이 없는 상황이라 곽도규와 전상현이 멀티 이닝을 소화하면서 고생을 많이 했는데 뜨거웠던 삼성 타선을 이 두 명의 투수들이 완벽하게 막아준 것이 이 타격전에서 승리의 밑거름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KIA 입장에서도 최지민과 장현식이 돌아오면 구위형 불펜투수가 2명이나 추가되기 때문에 경기 후반에 큰 힘이 되죠. 지난 글에도 언급했듯이 임기영은 구위가 회복되지 않으면 계속 안 좋을 것 같고. 최지민이나 정신 빨리 차렸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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