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요인
새 외국인 투수 스타우트가 라우어와 마찬가지로 삼성전에서 주사 세게 맞았는데(라우어도 박병호에게 홈런, 2루타 허용) 라우어 다음에 5회부터 올라 온 김기훈이 7회까지 1피안타 무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막았고, '너네도 치냐? 우리도 친다!'는 마음으로 타자들이 적재적소에 장타를 쳐주면서 경기를 뒤집고 승리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오늘 승리로 2위와의 경기 차이는 6.5경기 차이. 남은 경기는 18경기, 우승 매직 넘버는 12. 남은 경기에서 5연패 이상을 하지 않는 한, 정규시즌 1위는 유력한 상황이라고 봐야 할 것 같네요.
지난 주만 하더라도 장현식, 최지민, 네일이 없는 이번 주가 가장 힘든 한 주가 될 거라고 봤는데 다행히 야수 자원들이 다 돌아왔고, 승리계투진들이 좋은 피칭을 보여주면서 SSG-삼성과의 5연전을 4승 1패로 마감했습니다. 끝까지 방심하지 말아야 겠지만, 남은 경기에서 순리대로 운영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것 같네요.
3이닝을 지운 김기훈의 투구, 내가 아는 김기훈이 맞나?
고백하자면, 저는 스타우트의 영입이 굳이 필요했나 싶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김기훈'이 있었기 때문이죠. 올해 김기훈은 확실히 작년과 다릅니다. 그래서 네일의 빈 자리를 김기훈에게 맡기고, 현재와 미래를 다 잡는 선택을 하길 바랬어요. 그도 그럴 게, 올 시즌 김기훈은 첫 경기만 빼면 볼넷 수치도 엄청 줄었고, 피안타율이 굉장히 낮기 때문입니다.
김기훈은 올 시즌 10이닝 동안 피안타율이 .178에 불과합니다. 볼넷? 12이닝 동안 8개로 허용으로 많긴 하죠. 하지만 미국 다녀와서 첫 등판이었고, 30실점의 그 경기에서만 볼넷이 4개로 많았을 뿐, 8월부터 오늘 경기까지 9경기에서 11.1이닝 동안 볼넷이 4개 밖에 안 됩니다. 이닝 수와 비슷한 수의 볼넷을 내줬던 김기훈이었는데 정말 많이 발전한 거죠. 무엇보다도 8월부터 오늘 경기까지 자책점이 하나도 없습니다.
구자욱을 삼진 잡을 때의 로케이션은 뻥 좀 보태서 리그 에이스 부럽지 않았어요. 초구 슬라이더 낮게 스트라이크 넣고, 2구째 슬라이더는 유인구로 던진 이후, 3구째 슬라이더 역시 바깥쪽 보더라인에 붙인 이후에, 이 코스에서 슬라이더 낮게 떨어뜨려서 구자욱의 헛스윙을 유도했습니다.
김기훈의 투구를 더 기대하는 이유가 '체인지업'입니다. 6회 디아즈의 내야 안타 이후, 오늘 무섭게 치던 박병호를 2볼 1스트라이크에서 몸쪽 포심으로 팝플라이 유도하고, 강민호 상대로 투구를 하는데, 5구째 체인지업이 바깥쪽 낮게 잘 떨어졌습니다. 이 공은 우타자가 억지로 잡아 당기면 100% 땅볼입니다. 이 땅볼로 병살을 유도해 위기를 넘겼죠.
7회 첫 타자 전병우를 삼진 잡은 구종도 체인지업입니다. 이 때도 공이 들어간 커맨드가 너무 좋았습니다. 2구 포심을 ABS 가장 바깥쪽으로 집어 넣고, 3구째 포심으로 유리한 카운트 잡은 뒤에, 6구째 체인지업이 높게 들어갔음에도 전병우의 방망이가 빨리 돌았죠. 이 장면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김기훈의 체인지업은 포심과 동일한 폼, 동일한 위치에서 나온다는 점입니다.
김기훈이 우타자 상대 바깥쪽 포심으로 카운트 잡은 이후에, 그 쪽 코스에 체인지업만 꾸준히 잘 떨구면? KIA는 양현종 한 명 더 얻는 겁니다. 먼 훗날, 양현종이 은퇴해도 김기훈의 짠~! 하고 등장하며 그 공백을 채울 수 있고요.
물론, 행복회로를 세게 돌리면서 하는 말이고, 김기훈이 좋은 투구를 보여준 건 이제 겨우 한 달이지만, 지금 한 달의 모습만 보면, 이제야 어떻게 던져야 힘이 있는 공을 존에 넣는 지 깨달은 느낌입니다. 꾸준함과는 거리가 멀었던 김기훈이라 앞으로 더 지켜봐야겠지만, 잘 하면 제2의 양현종을 얻을 수도 있겠다는 기대가 되네요.
완전체 타선의 완성
이범호 감독은 팀이 어려울 때 '8치올'을 언급했죠. 주전급 타자들이 다 돌아오고, 그들이 클래스가 있으니 분명 좋은 성적을 올릴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 때문에 한 말일 겁니다. 8월 초 KIA 타선이 집단 슬럼프를 겪으며 힘든 시기도 있었고, 8치올이 8월 중순 이후에 걸리긴 했지만, 지금 KIA 타선은 그야말로 뜨겁기 그지 없네요.
타선에 딱히 큰 구멍이 없습니다. 굳이 따지자면 유격수와 포수 자리가 약하긴 한대, 유격수와 포수는 모든 팀들이 다 약한 포지션이에요. WRC+를 기준으로 KIA 유격수 자리는 리그 5위로 딱 중간이고 KIA 포수 자리도 리그 5위로 딱 중간입니다. 두 포지션 다 구멍이 아니라는 뜻이죠.
내야수의 WRC+는 118.9를 기록하며, 리그 1위, 외야수의 WRC+는 113.2를 기록하며 KT(113.4)에 이어 리그 2위입니다. 내야수 WRC+는 압도적인 1위(2위 LG .115.9)고, 외야수의 WRC+도 KT와 큰 차이가 없어서, 지금 타격감 그대로 이어 가면 외야수 WRC+도 1위에 오를 수 있는 수치죠.
오늘도 5대0으로 지고 있는 경기, 마운드에는 국내 최고의 에이스가 있으면 주눅 들 법 한대, 4회 원태인 상대로 나성범과 김선빈의 연속 안타 이후 이우성의 희생타(바람이 어제처럼 불었으면 쓰리런이었을 듯)로 추격을 시작했고, 5회에는 2사 이후에 김도영의 볼넷에 최형우의 2루타와 나성범의 적시타로 2득점을 추가로 내면서 저력을 보였죠.
그리고 오늘 경기 상대적으로 라팍 담장 운이 없었는데(박병호의 타구는 둘 다 홈런, 김도영이 친 3루타는 잠실급인 라팍 중앙 담장 쪽으로 가며 3루타, 나성범의 타구도 발사각이 1도 정도 낮아서 담장 맞고 2루타) 7회에 최지광이 던진 슬라이더가 밀려 들어갔고, 김도영이 이걸 놓치지 않고 대형 홈런, 나성범이 오승환 상대로 낮게 떨어지는 변화구를 받아 쳐서 역시 우측 담장 대형 홈런을 날리는 장면에선 KIA가 가진 압도적인 타선의 힘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이범호 감독의 유일하게 아쉬운 점이 라인업 구성이 너무 올드하다는 점인데, 그래도 크게 티가 안 나는 이유가 어느 타선에 어느 타자들이 있던 리그에서 가장 뛰어난 공격력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상대 팀 입장에서 KIA 타선 상대하는 건 정말 죽을 맛이죠. 김도영, 소크라테스, 나성범, 최형우는 언제 담장을 넘길 지 모르고, 김선빈, 박찬호, 최원준은 컨택과 출루 능력으로 투수들을 괴롭히고. 김도영, 박찬호, 최원준, 소크라테스는 한 베이스 더 가는 주루로 루상을 흔들고. 컨택과 파워, 눈야구, 그리고 주루 플레이까지 빠지는 게 없는 게 현재 KIA 타선이죠.
여기에 백업요원도 든든합니다. 눈야구와 컨택이 되는 서건창, 정확한 타격과 빠른 발을 보여주며 김선빈의 수비 부담을 덜어주고 있는 홍종표. 리그 최고의 외야수비를 보이는 김호령, 좌투수 상대로 출루율 4할 이상을 훌쩍 찍고 있는 이창진. 좌투수 상대로 장타를 칠 줄 아는 변우혁까지.
다른 팀이라면 주전의 기회를 충분히 받을 수 있는 타자들을 백업 멤버로 보유하고 있다는 점도 올해 KIA 타선이 강한 이유죠. 실책이 많다지만, 3-유간의 수비 범위는 넓습니다. 사실, 이우성과 서건창이 아니라 전문 1루수가 있었더라면 박찬호와 김도영의 실책도 상당 부분 줄었을 거에요. 바운드 송구를 제대로 잡는 1루수가 없었으니까요.
소크라테스도 중견수 수비는 평균 수준이고, 최원준은 수비 판단이 구리지만 빠른 발과 강한 어깨로 커버하고 있으며, 유일한 구멍이 나성범인데, 나성범도 어깨는 좋으니 추가 진루 억제하는 능력은 갖고 있죠. 수비 실책이 많다고 최악의 수비 팀이라는 오명이 있지만, 김선빈과 나성범을 제외하면 수비 범위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하고, 3-유간 수비 범위는 넓다고 생각합니다.
실망스러웠던 스타우트의 첫 피칭, 그러나...
2위 삼성 상대로 스윕, 김도영의 홈런으로 이제는 정말 기대를 걸어봐도 될 40-40. 여기에 김기훈의 재발견까지 얻은 게 많은 경기이지만, 오늘 경기 유일한 흠이 바로 스타우트의 피칭이죠.
하지만 더 지켜봐도 될 게, 오늘 스타우트가 5실점을 한 데에는 박병호의 지분이 컸습니다. 무려 2개의 투런을 날렸으니까요. 하지만 박병호의 홈런은 적어도 첫 번째 홈런은 다른 구장이었으면 뜬공이었을 가능성이 컸고, 두 번째 홈런 역시 라팍 가장 짧은 곳을 넘겼죠. 박병호의 발사각 자체가 라팍에 딱 맞는다는 느낌입니다. 가장 짧은 좌중간과 우중간을 넘기는 최적의 발사각으로 타구를 띄우는 느낌이 들어요.
결국, 박병호 한 명만 잘 막았으면 5실점이 아니라 1실점일 수도 있었던 투구 내용입니다. 박병호의 경우, 스타우트의 릴리스 포인트가 상성에 잘 맞는 것 같은 느낌이 든 게, 홈런 맞을 때 11구 승부 끝에 홈런을 쳤죠.(그래서 차라리 볼넷으로 내보내길 바랬습니다.) 스타우트가 던진 모든 공들을 다 컨택하는 걸 보니, 확실히 라우어나 스타우트 같은 타입은 박병호에게는 공이 잘 보이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그리고 볼배합도 좀 아쉽죠. 박병호가 최근 치는 홈런을 보면, 대부분 존으로 들어오는 변화구를 공략한 홈런입니다. 롯데 전 김진욱에게 친 만루홈런(슬라이더), 어제 임기영에게 친 만루홈런(체인지업), 오늘 스타우트가 맞은 2개의 홈런(체인지업과 커터) 모두 변화구 였어요.
김기훈이 박병호 잡는 법을 아주 잘 보여줬죠. 몸쪽 포심 붙이니까 타이밍이 늦으면서 평범한 뜬공이 나옵니다. 박병호를 상대할 때는 포심을 결정구로 쓰는 게 좋고, 변화구를 쓸 거면 바깥쪽 낮게 원바운드성으로 던진다고 생각하고 공을 던져야 합니다. 왜 이렇게 박병호 상대할 때 변화구를 존에다 넣는 지 모르겠네요.
암튼, '라팍에 최적화된 박병호'에게만 당한 것이라서 스타우트가 벌써부터 망했다고 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합니다만. 4이닝 동안 투구 수가 100개 가까이 된 것은 확실히 문제가 있죠. 스타우트의 주무기도 애석하게도 '커터'인데, 이 커터가 자꾸 컨택이 되니 풀카운트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리고 작년 파노니부터 올해 라우어까지 커터가 주무기인 왼손 투수가 KBO에선 계속 안 통하고 있는데 또 커터가 주무기인 외국인 투수를 영입했는 지 그것도 참 답답합니다. 그래도 오늘 스타우트 포심을 보니, 쉽게 공략당할 투수는 아닌 것 같고, 이닝 이상의 삼진을 잡아낸 걸 보면, 더 지켜볼 여지는 있어 보입니다. 라우어와 달리 체인지업도 곧잘 던지는 것 같고요.
여튼, 스타우트나 라우어나 둘 다 삼성 상대로 첫 선이었는데 둘 다 삼성 상대로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네요. 스타우트는 몰라도 라우어는 포스트시즌에 써먹어야 하는데 참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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