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요인
윌커슨의 무사사구 완봉 끗.
오늘 경기는 정말 할 말이 없는 경기입니다. 상대 선발에게 완벽하게 틀어 막혔기 때문입니다. 일단, 윌커슨의 공이 너무 좋았어요. 특히, 오늘 체인지업이 정말 아주 좋은 위치에서 떨어지더라고요. 이 때문에 윌커슨의 포심과 커터가 더 살아나는 모습입니다.
어떻게 투구수도 못 늘리고 완봉을 당하느냐는 말도 나올 수 있는데, 올해 윌커슨은 KBO에서 가장 제구력이 뛰어난 투수입니다. 72이닝 투구하면서 볼넷이 단 8개 뿐입니다. 9이닝 당 볼넷 1개 입니다. 상대타자를 볼넷으로 내보낼 확률이 2.7%입니다. 이런 선수를 상대로 득점을 많이 뽑으려면 적극적인 승부 말고는 답이 없습니다. 그러니 윌커슨이야말로 KBO에서 가장 완봉 가능성이 높은 선수라고 봐야죠.
참고로 규정이닝의 50% 이상을 충족한 선수 중 윌커슨보다 9이닝 당 볼넷 비율이 낮은 선수는 단 한 명 뿐입니다. NC의 신민혁(0.76개) 뿐입니다. 하지만 신민혁은 삼진율이 낮지만(15.3%), 윌커슨은 삼진율도 21.4%에 달합니다. 구위가 아무리 외국인 투수 답지 않아 포심 피안타율이 .281에 달하지만, 주무기인 커터(구사율 30.3%), 체인지업(18.4%)의 피안타율이 커터는 .233, 체인지업은 .239에 불과합니다.
오늘 윌커슨은 체인지업(36.1%)을 포심(24.1%), 커터(32.4%)보다 더 많이 던졌습니다. 체인지업이 오늘 정말 아주 잘 긁혔거든요. 체인지업이 이렇게 잘 들어오니, 타자들이 윌커슨의 포심에도 늦습니다. 그래서 포심에 방망이가 늦는 모습도 자주 노출됐죠.
오늘 경기 그나마 분위기를 반전시킬 수 있는 찬스가 5회말이었습니다. 한준수의 2루타, 최원준의 안타로 만든 1사 1, 3루 찬스에서 박찬호가 체인지업에 살짝 타이밍이 빼앗겼지만, 잘 받아쳐서 좌익수 쪽으로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는데 그게 레이예스가 송구하기 좋게 글러브로 들어갔죠. 그래도 3루 주자가 충분히 홈 시도를 해볼만한 상황이었는데 한준수 발이 너무 느렸고, 레이예스의 송구가 너무 정확했습니다. 이후에는 6회부터 9회까지 3자 범퇴로 셧아웃 당했죠.
임기영은 불펜으로 쓰는 게 맞다
윌커슨의 무사사구 완봉이 완패의 가장 큰 원인이지만, 임기영이 게임 시작하자마자 1회에 1실점, 2회에 4실점하면서 경기 분위기도 초전박살이었죠. 일단, 초반에 임기영 체인지업이 도통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평소보다 체인지업이 안 떨어지고 그냥 느린 직구처럼 들어가더군요. 떨어지지 않는 체인지업은 그저 '배팅볼'일 뿐입니다.
하지만, 임기영의 체인지업이 떨어지지 않았더라도, 임기영이 던질 줄 아는 구종이 많았다면, 5실점까지는 없었을 수도 있습니다. 롯데 타자들은 죄다 임기영의 체인지업에 타이밍을 맞춰 타석에 들어섰는데, 임기영의 빠른 공은 평균구속이 134km/h(투심은 132km/h)에 불과하기 때문에 체인지업이 안 떨어지면 상대 타자를 잡아낼 수가 없습니다.
임기영은 전형적인 투 피치에요. 지난해 포심 30%, 체인지업 40%를 던졌습니다. 슬라이더를 18% 던지긴 했는데, 애초에 임기영 슬라이더 위력은 뛰어난 편은 아닙니다. 우타자 기준으로 바깥쪽으로 더 달아나야 하는데, 그러질 못 하죠. 그러니 빠른 공과 체인지업의 조합만으로 타자를 상대합니다. 작년에는 체인지업 피OPS가 .510에 그칠 정도로 위력이 좋았지만, 올해는 4경기 등판에 그쳤지만, 체인지업 피OPS가 .742 입니다. 오늘은 1.053이었고요.(유강남에게 맞은 쓰리런 홈런이 체인지업)
이범호 감독이 2017년 기억 때문인지 임기영을 선발로 써본 것 같은데, 오늘 체인지업이 마음대로 안 떨어지니까 아주 난타당했죠. 그나마 3회쯤에 체인지업이 비로소 잘 떨어지기 시작했지만 이미 게임은 완전히 기울어진 뒤였습니다.
임기영은 선발로테이션을 돌 때도, '봐줄만한 4~5선발'이었지, 그 이상은 아니었습니다. 이의리의 빈 자리를 채워줄 수 있는 커리어를 보인 적은 2017년 한 해 정도였죠. 그래서 전 자주 임기영은 불펜으로 전환하는 게 맞다고 언급했습니다. 그리고 작년에 불펜 전환하면서 커리어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했고요. 선수 본인도 자기 가치를 더 높이려면 불펜으로 뛰어서 작년과 같은 성적을 찍으면 됩니다. 그러면 30억 이상의 계약도 따낼 수 있어요.
그냥 짧게 쓰면서 빠른 공을 전력 피칭으로 던지고, 체인지업을 더 날카롭게 떨어뜨리는 데 주력해야 합니다. 일단, 오늘은 단순히 체인지업 컨디션이 안 좋았기 때문에, 한 번 정도 더 기회를 줄 수도 있어 보입니다만, 그 기회를 또 살릴 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ABS 체제 이후 낮은 쪽 스트라이크존 판정 빈도가 낮아진 탓에 리그에 잘 던지는 사이드암 투수가 모조리 부진한 것도 걱정되는 부분이고요.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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