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요인
황동하의 5이닝 2실점 투구가 팀 승리에 큰 역할을 해줬습니다. 토요일 경기가 황동하의 시즌 네 번째 선발 등판이자, 통산 10번째 선발 등판이었는데 10번의 도전 끝에 드디어 프로 데뷔 첫 승을 올렸습니다.
방금 티빙 다시보기로 황동하의 모든 공을 하나하나 봤는데(티빙 다시보기 기능 개꿀이네요. 배속 재생도 되고, 방향키 누를 때마다 공 던지는 순간만 조절해서 볼 수 있음) 오늘 호투의 배경은 슬라이더의 커맨드가 좋았던 데에 있습니다. 물론, 슬라이더 하나가 가운데 몰리면서, 데이비슨에게 1회에 동점 투런을 허용하긴 했지만요.
황동하의 슬라이더 탄착군인데, 우타자 기준으로 바깥쪽 낮게 잘 떨어지면서 오늘 삼진과 범타를 많이 잡아냈습니다. 황동하의 올해 9이닝 당 삼진은 5.16개로 매우 평범한 수준이지만, 오늘은 5이닝 동안 4개의 삼진을 잡아내면서, 본인 시즌 성적보다 삼진율이 좋았죠. 결정적인 상황마다 우타자 바깥쪽으로 슬라이더를 잘 던져서 위기를 번번히 벗어났습니다.
1회 2사 1루에서 김성욱의 1루수 파울 플라이, 오늘 경기 가장 멋진 순간이었던 3회 1사 1루에서 박건우를 삼진으로 돌려세운 구질도 바깥쪽으로 흘러나가 떨어지는 슬라이더였습니다. 이걸로 런앤히트로 2루를 노렸던 손아섭까지 잡아내면서 쉽게 이닝을 마무리할 수 있었고요. 4회 2사 1, 2루에서 김주원을 삼진으로 잡은 구질도 슬라이더, 5회 2사 1루에서 박건우를 뜬공으로 잡아낸(타구가 제법 멀리 가긴 했죠) 구질도 슬라이더였습니다.
황동하 2경기 연속 호투의 비결은?
그렇다고 황동하가 슬라이더 원툴도 아니죠. 개인적으로 NC 구장의 카메라 각도를 가장 좋아하는데, 우투수의 공 움직임이 정말 잘 보이는 각도라서입니다. 황동하의 빠른 공이 최고 147km/h까지 나오는데, 투심처럼 움직이더라고요. 그래서 존에 들어오는 빠른 공에도 NC의 타자들의 방망이가 밀리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황동하의 포심 위력은 평범한 편이라 가운데 몰리면 큰 타구를 종종 허용하긴 하는데, 오늘은 빠른 공이 낮게낮게 들어갔고, 그 덕분에 슬라이더가 더욱 위력을 떨칠 수 있었죠.
황동하의 또 다른 장점은 스태미너네요. 5회에 한계 투구수에 가까웠음에도 불구하고, 서호철에게 던진 4개의 빠른 공이 145km/h ~ 146km/h에서 형성되었을 정도로, 스태미너에서도 좋은 점수를 줄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KIA 퓨처스 최고 선발 투수이고, 지명 순번이 고작 7라운드에 불과했는데 여기까지 성장하는 데는 선수 개인의 피 나는 노력도 있겠지만, 황동하를 선발 투수로 만든 2군 시스템 칭찬을 안 할 수가 없네요. 곽도규도 그렇고 황동하도 그렇고, KIA는 하위 라운드에서 지명한 투수를 아주 잘 키워내고 있습니다.
황동하가 보완해야 할 점은 좌타자를 잡은 제3구종의 개발이네요. 오늘 NC 타선에서 좌타자가 셋 밖에 나오지 않았는데(스위치 히터 김주원까지 포함하면 4명인데, 김주원은 스위치 히터를 포기해야 할 때가 아닌가 싶을 정도로 지난해 좌우 편차가 컸습니다.(우타석 OPS .819, 좌타석 OPS .608)) 고로 사실상 좌타가 셋이라고 해도 될 정도인데, 5개의 피안타 중 손아섭과 박세혁에게 각각 안타 하나씩을 허용했죠.
기록으로 봐도 황동하의 좌타 약점은 두드러집니다. 올해 우타 상대 피안타율은 .184에 불과하지만(단, 올시즌 피홈런 4개 중 3개가 우타 상대라서 피OPS는 .751), 좌타 상대 피안타율은 .310이나 됩니다. 그래서 황동하 선수 본인도 좌타를 상대할 수 있는 포크볼이 더 나아져야 한다고 인터뷰 때 언급하기도 했죠. 다만, 기록상으로는 포크볼이 잘 들어가는 걸로 보이네요. 포크볼의 피안타율이 .111에 불과합니다. 피OPS도 .311 이고요.
여튼, 황동하가 작년보다 성장하면서, KIA에 부족한 우완 뎁쓰가 조금은 두터워졌습니다. 물론, 포심 구위가 상대 타자를 압도할 정도는 아니라서(피OPS .982), 앞으로도 계속해서 좋은 활약을 보이려면, 포심을 오늘처럼 낮게 낮게 구석구석으로 넣어야 합니다. 실제로 호투했던 SSG와 NC전에서 포심 피안타율이 .091, .143에 불과했습니다. 오늘처럼만 낮게낮게 구사해준다면, 슬라이더, 포크볼과 시너지 효과로 꾸준히 좋은 피칭을 해줄 수 있을 것 같아요.
작년에 황동하의 투구를 보면서 현재 NC에서 뛰고 있는 신민혁을 롤모델로 삼으라고 했는데, 올해 황동하가 성장한 모습을 보면 신민혁과는 확연히 다른 스타일입니다. 당장에 신민혁의 포심 평균 구속은 138.8km/h로 황동하의 포심 평균 구속(143.2km/h)보다 5km/h 정도 느립니다. 신민혁은 리그 상급 구질인 체인지업을 기반으로 상대 타자들과 수싸움을 하는 유형이라면, 황동하는 그보다는 우완 정통파에 더 가깝다고 할 수 있네요. 작년보다 평속을 2km/h 정도 증가시켰기에, 지금의 성장세를 유지하고 포크볼을 더 정확하게 컨트롤 할 수 있다면, 스팟 선발 이상의 역할도 기대할 수 있어 보입니다.
트리플 세터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 준 경기
오늘 KIA는 7득점이나 뽑아냈는데, 중심타선은 최형우 말고는 큰 역할을 해 주지 못 했습니다. 3번 나성범, 5번 소크라테스, 6번 이우성이 단 하나의 안타도 쳐내지 못 했죠. 보통의 팀들은 3, 5, 6번이 무안타면, 그날 경기에서 5득점 이상 뽑기 힘들텐데, KIA는 김도영이 3안타, 박찬호가 3안타를 치면서 두 명이 공격 첨병 역할을 제대로 해줬습니다. 게다가 도루도 박찬호가 2개, 김도영이 1개를 기록하면서 배터리를 흔들었고요.
최원준이 첫 타석에 야구 대신 당구 한 것 말고는 임팩트 있는 모습을 못 보였지만, 50도루 이상을 기대할 수 있는 3명... 아니, 최원준(발을 희생한 대신 타격 능력을 올림) 제외하고 2명이 있다보니, 상대 배터리가 참 부담이 큽니다. 특히, 박찬호 요새 활약이 아주 좋네요. 오늘 첫 타석에 볼넷, 두 번째 타석에서 2타점이 될 수도 있었던 심판 맞은 내야안타(병살 가능성도 있었지만, 타구 자체는 매우 빨랐기에 처리가 쉽지 않았음), 3번째 타석 중전 안타도 총알 같은 타구였죠. 작년보다는 확실히 타구에 힘이 실린 모습입니다.
김도영은 상대적으로 운이 좀 따른 경기였죠. 어제부터 창원NC파크의 그라운드가 유독 딱딱하던대, 오늘 2개의 안타가 모두 큰 땅볼로 만든 안타였습니다. 3안타 치긴 했는데 확실히 감은 별로인게, 미친 듯이 홈런쳤던 4월에는 아웃 되는 타구도 다 뜬공일 정도로 발사각도가 높았는데, 오늘은 죄다 땅볼인게 감이 확실히 별로인가 보다 싶었습니다. 그래도 3개의 안타를 만들어 냈으니, 컨택은 여전히 살아 있어 보이고, 여기서 감만 조금 좋아지면, 타구도 슬슬 뜰 거라고 봅니다. 땅볼이긴 했지만, 그만큼 강하게 맞아서 타구 속도도 나쁘지 않았고요.
그리고 오늘 경기 이범호 감독이 5점 차이로 비교적 큰 점수 차이에도 불구하고 수목 경기에서 많은 공을 던지고 고작 어제 하루 쉰 필승계투조 4명(장현식, 곽도규, 최지민, 정해영)을 모조리 올렸는데, 이건 목요일 경기 연장 승부의 악영향 때문이라고 봐야죠. 3연투를 안 시키려다보니 윤중현, 김도현, 이준영을 쓸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암튼 장현식, 곽도규, 최지민, 정해영 투구 수가 이번 주에 너무 많아서 걱정인데, 그나마 오늘 네 명 다 투구 수 20개 이하로 끊어서 다행이고, 일요일 경기에서는 승패를 떠나서 넷 다 안 나오고 경기를 끝마치는 것이 가장 좋은 시나리오가 될 것 같습니다. 시즌은 기니까요.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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