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원인
어제 운을 다 끌어 썼기 때문이 아닐까 싶을 정도로, 오늘 KT 타자들은 방망이 휘두르는 족족 안타더군요. 심지어 빗맞은 안타도 몇 개 없고(1~2개 나온 듯) 22개 안타 중 20개 정도가 정타가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존에 들어 오는 공 휘두르면 그냥 다 정타더군요. 어제의 불운을 재물로 써서 마법이라도 부렸나 싶은 정도였습니다.
반면, KIA는 어제도 2득점, 오늘도 2득점. 타선이 아주 죽어 버렸습니다. 2주 전부터 득점력이 떨어졌는데, 후반기 시작해서 타선을 이끌 던 소크라테스가 잠잠하고, 최원준이 그나마 버텨주다가 지난 주부터 좀 안 좋아 졌습니다. 나성범은 지난 주 생각보다 스탯이 좋았는데, 역시 도움이 못 되고 있고, 김선빈은 왜 자꾸 쓰는 지 모르겠습니다. 여튼, 나성범과 김선빈 이야기는 뒤에 후술.
네일, 이런 투수가 KBO에 있을 필요가 있을까?
네일의 주무기는 투심과 스위퍼입니다. 시범경기 때 전 네일의 투구를 보고 '하얀 메디나'가 될 수도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전 KBO는 투심이 주무기인 투수는 망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작년 메디나가 그랬고, 올해 가장 먼저 퇴출당한 SSG의 더거가 그랬죠.
더거는 타고투저인 PCL에서 146.1이닝 동안 ERA 4.31로 준수한 편이었습니다. 하지만 KBO에서는 22.2이닝 동안 ERA 13.10으로 장렬하게 산화했죠. 투심 구사율이 26.7%일 정도로 투심이 주무기인 선수인데, 이 투심이 KBO에서는 배팅볼이었습니다. 포심 평균구속도 145.6km/h로 평범했죠. KBO에서는 통하지 않는 유형입니다.
KBO 타자들은 기본적으로 큰 스윙보다는 컨택 스윙을 하기 때문에 일단, 인플레이 타구를 만들어 내는 투심이 정타로 연결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네일 주무기가 투심이라는 말 듣고, 망했다고 생각했어요. 그런 네일이 5월까지만 해도 리그 최고의 투수로 군림한 이유는 '스위퍼'라는 또 다른 무기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올해 네일의 투심 피OPS는 .887을 기록하며, 역시 안 좋습니다. 투심 구사율이 41.8%로 매우 높은데, 던지는 족족 정타를 양산하고 있죠. 반면, 스위퍼의 피OPS는 .456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초반에는 투심-스위퍼 투 피치 조합이 잘 먹혔는데, 이제 상대팀에서 네일이 던지는 스위퍼에 익숙해지면서 컨택이 되고 있죠.
하지만, 네일의 투심은 꽤나 위력이 좋은 편이라 많은 땅볼을 양산하고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리그에서 땅볼 아웃을 가장 많이 잡아내고 있으니까요. 문제는 여기가 수비력이 좋은 선수들이 리그를 뛰는 MLB가 아니라 KBO라는 점입니다. MLB 친구들이야 괴물 같은 운동능력으로 넓은 수비 범위, 강력한 어깨를 자랑하지만, KBO는 야수들의 수준이 한참 부족하죠.
허접한 수비력, 땅볼 아웃이 많은 유형의 투구. 이게 합쳐져서 네일은 '리그에서 비자책 실점'이 가장 많은 투수가 됐습니다. 올해 61실점을 했는데 비자책 실점이 21점이에요. 이게 말이 되나요? 땅볼 나와봐야 실책이 나오니 이 모양 이 꼴이죠.
3루수에는 리그 최다 실책 기록을 쓰고 있는 선수가 있고, 2루수에는 리그에서 가장 수비 범위가 좁고, 순발력이 떨어지는 선수가 있고(하지만, 오늘은 잘 했음), 전문 1루수가 아예 없고, 유격수는 운동 능력은 뛰어나지만, 안정감이 떨어집니다.
KIA 내야 수비 조합이 과거 국대 내야진을 이루었던 두산 베어스(2루 마약왕, 3루 허경민, 유격수 김재호, 1루수 오재일 ㄷㄷㄷ)라면 모를까, 지금 KIA 내야진 수비 능력은 리그 최악 수준인데 네일 같은 유형의 투수는 KBO에 맞지 않고 KIA에 맞지 않는 선수죠. 오늘은 수비 실수보다는 본인 문제가 더 크지만, 시즌 내내 이렇습니다.
이러다보니 네일의 재계약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이 됩니다. 투심을 던지며 땅볼 아웃으로 경기를 운영하는 타입인데, 수비가 뒷받침이 안 되고, KBO 타자들은 컨택 히팅을 하니, 더더욱 버티기 어렵죠. 좌투수면 그나마 참을 만 한데, 우투수이니까 더더욱 통하기 어렵습니다. KBO 좌타자들은 특히, 더 컨택 스윙을 하니까 말이죠. 실제로 네일은 좌타 피안타율(.271)이 우타 피안타율(.259)보다 높습니다. 주무기 스위퍼가 좌타자들에게는 더 잘 보이니까 말이죠.
다음 외국인 투수는 150km/h 하이 패스트볼 잘 던지는 투수로
아무리 생각해도 전 KBO는 SSG 앤더슨, 두산 발라조빅 같은 포심을 높은 존으로 던질 줄 아는 외국인 투수 성공확률이 높다고 생각됩니다. 아래는 대표적인 우완 파워 피처인 앤더슨의 포심 탄착군입니다.
- 앤더슨의 포심 탄착군
딱 봐도, 하이 패스트볼이 집중적으로 들어가고 있음을 알 수 있죠. 그 결과가 67이닝 동안 102개의 탈삼진, .232의 피안타율입니다. 포심 피안타율은 .217에 불과하고요.
전문가들이 뽑은 올 시즌 퇴출 1순위 외국인 투수였는데, NC 하트 다음으로 뛰어난 피칭을 하는 좌완 헤이수스도 비슷합니다.
- 헤이수스의 포심 탄착군
좌타자 기준 바깥쪽 하이 존, 우타자 기준 몸쪽 하이 존으로 붙인 결과가 포심 피안타율 .239 입니다. (반면, 헤이수스의 투심 피안타율은 .394, 투심 투수는 버리는 게 답)
몇 경기 뛰진 않았지만, 최근 대체 외국인 투수로 삼진을 잘 잡아내고 있는 두산 발라조빅도 가져와봤습니다.
- 발라조빅의 포심 탄착군
포심 들어간 위치 보세요. 대부분 하이 존입니다. 그리고 발라조빅은 3경기 선발에서 17.1이닝 던지는 동안 탈삼진을 22개나 잡아냈고, 포심 피안타율이 .152에 불과합니다.
삼성 코너도 비슷해요.
- 코너의 포심 탄착군
역시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에 공이 많이 박혀 있는 걸 알 수 있죠. 코너의 포심 피안타율도 .223에 불과합니다.
공 느리다는 소리 듣는 윌커슨은 안 그럴 것 같죠?
- 윌커슨의 포심 탄착군
구속이 빠르지 않지만, 윌커슨 역시 포심을 하이 존에 잘 넣는 투수입니다.
리그에서 잘 던지는 투수 중 탈삼진 1위 하트 정도만이 예외이고, 탈삼진 많이 잡는 헤이수스(2위), 윌커슨(3위), 코너(4위) 모두 하이 존을 잘 활용하는 투수들입니다. LG 엔스도 마찬가지고요.
이런 현상이 왜 나타나느냐? ABS가 도입됐기 때문입니다. 낮은 존 잘 안 잡아주니까 사이드암, 언더핸드 투수들은 멸망한 반면, 오버핸드로 하이 존에 강속구 꽂는 투수들의 낙원이 됐죠.
그래서 전 KBO에서 성공할 수 있는 유형의 외국인 투수로 150km/h 강속구를 하이 존 경계에 잘 던지고,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를 결정구로 쓰는 투수라고 생각합니다. 딱 앤더슨이 대표적이죠. 평속 151.1km/h의 포심과 종으로 떨어지는 커브 조합으로 탈삼진을 무수히 잡아내고 있습니다.
KIA도 네일과의 재계약은 포기하는 게 맞고, 올 시즌까지만 쓰고 아름다운 이별을 보여줘야죠. 그리고 네일을 포스트시즌에 쓸 거면 적어도 2루수는 김선빈이 아니라 홍종표를 쓰는 게 맞습니다. 지난 두산 전에서 실책 하나 했다지만, 그건 네일의 송구가 투심으로 들어간 탓이고, 홍종표 앞으로 무수히 간 2루 땅볼은 모두 안정적으로 처리해줬죠.
그냥 네일과 Bye~ 하고 크로우가 완전히 회복한다면 크로우를 재영입하는 방향으로 생각해봤으면 좋겠네요.
아직 라우어의 투구를 유심히 보진 않았지만, 빠른 공을 하이 존으로 넣고 커브볼을 던지는 '왼손 투수'라는 점 때문에 일단 기대가 됩니다. 문제는 타국에 대한 적응이죠. 아무리 훌륭한 선수라도 음식이 안 맞고 날씨가 안 맞으면 최상의 실력을 못 보여주는 거니... 그걸 떠나서 KIA는 라우어 마저 망하면, 올 시즌 우승은 매우 힘들다고 생각합니다.
나성범과 김선빈 민폐 듀오
어지간하면 선수 비난은 하고 싶지 않은데, 나성범과 김선빈은 좀 심하네요. 이 선수들의 장점과 단점은 매우 명확합니다. 장점은 타격 클래스는 리그를 뛰어 넘는 선수들이지만, '수비'와 '주루'에서 까 먹는 게 많은 선수들이라는 점입니다.
나성범은 부상 이후로는 그냥 수비할 때 아장아장하는 게 전부입니다. 오늘만 해도 심우준의 빗맞은 타구가 나왔을 때, 젊고 빠른 선수라면 잡을 수도 있었던 타구를 둘 다 아장아장 걷는 바람에 2타점 적시타를 만들어줬죠.
수비와 주루에서 까먹는 게 많아서 타격으로 만회해야 하는데 나성범은 지난 주 표면적인 스탯만 좋았고,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해주지 못 했으며, 김선빈은 후반기 OPS가 .601에 불과합니다. 이 정도면 수비, 주루도 안 되는 선수를 주전으로 쓰고 있는 감독이 문제입니다. 풀 시즌 돌리면야 당연히 김선빈이 홍종표보다 생산력이 뛰어나겠지만, 수비 주루에서 까먹는 게 너무 많으니, 김선빈은 대타 자원으로 쓰고 홍종표를 주전으로 쓰는 게 팀 밸런스 측면에서 낫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오늘 최형우가 내복사근 파열로 최소 3주 아웃이 되었죠. 차라리 잘 됐습니다. 최형우는 이 참에 푹 쉬면서 컨디션 끌어 올리는 게 낫고, 나성범은 절대 수비로 세우면 안 되요. 이우성이 뛸만한 상태라면, 이우성을 외야수로 쓰고 변우혁을 1루, 그리고 나성범은 최형우 복귀할 때까지 지명으로만 써야죠. 어깨 원툴인데, 수비 범위가 너무 좁아 터져서 참을 수가 없네요.
희망을 보여 준 김기훈
김도영이 홈런이라도 쳤으면 오늘 대패했어도 볼 거리라도 있는 건대, 천적 엄상백 상대로 김도영은 역시 아무 것도 못 했고(엄상백 상대로 안타 하나 쳤지만, 이것도 코스 안타) 오늘 볼 거리라곤 김기훈의 호투 뿐이네요.
오늘 9회에 만루 위기를 맞긴 했지만, 8회에는 강백호를 삼진으로 잡는 등 1이닝 퍼펙트한 피칭을 보였고, 9회에도 볼넷 하나 내주긴 했지만, 존에서 살짝 빠지는 공이었고, 오늘 던지는 내내 얼척 없이 빠지는 볼은 거의 없었습니다. 반대 투구는 있었어도 그 마저도 존에서 놀았고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포심 위력은 확실히 살아 있네요. 구속 이상으로 KT 타자들이 대응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고, 한가운데 들어가는 투구에도 밀리는 모습이 나왔습니다. 여기에 타이밍을 뺐는 체인지업을 우타자 바깥쪽으로 꾸준히 던질 줄 알면 금상첨화죠.
마지막으로 김기훈의 대한 희망을 불태울 수 있는 강백호 상대로 던진 투구의 위치를 올리며 글 마무리 합니다. 이렇게만 던지면 양현종 뒤는 걱정 안 해도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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