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요인
양현종이 잘 막았고, 김도영이 결정적인 순간에 역전 홈런을 치면서 경기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경기 초반에는 5연패가 유력하구나 싶었어요. 1회에 안타 4개를 쳤지만, 소크라테스의 도루 아웃, 나성범의 안타 때 최원준이 홈에서 아웃 당하며 득점에 실패하면서 초반부터 분위기가 안 좋았죠. 최원준의 홈 쇄도는 판단 자체는 틀리지 않았다고 봅니다. 김인환이 전문 좌익수가 아니었기 때문에 송구 능력이 얼마나 좋은 지 알 수가 없던 상황이었죠.
1회에 4안타 무득점으로 슬슬 경기 분위기 망치기 시작했는데, 2회에 결정적인 에러가 나왔죠. 1사 이후에 하주석이 친 타구는 유격수 앞으로 아주 이쁘게 굴러가 '제발 병살 시켜주세요'라는 땅볼이었는데, 이 쉬운 타구를 박찬호가 한 번에 포구하지 못 하고, 불안한 자세에서 던진 2루 송구마저 빗나가 이닝이 끝날 상황이 1사 2, 3루가 됩니다. 느린 화면을 보면, 박찬호는 완전 포구하기 전임에도 2루부터 보고 있더군요. 베테랑 답지 않은 초보적인 실수입니다.
1사 2, 3루에서 최재훈에게 던진 초구 포심이 몸쪽 높게 들어갔고, 최재훈은 예측이라도 한 것마냥 방망이를 돌렸으며, 이 타구가 담장을 훌쩍 넘어가 0:0으로 3회초 넘어갈 상황이 0:3이 되었습니다. 아 이렇게 5연패 가는구나 싶었습니다. 그런데 이때 구장에 정전이...! 30분이 지나서야 경기가 재개됐고, 경기 분위기가 이후부터 KIA쪽으로 흘러 가게 됩니다. 이것 때문에 경기 승패가 결정났다고 생각하진 않지만, 전기의 신이 KIA를 불쌍히 여긴 게 아닌가 싶습니다.
3회초 실책을 저지른 박찬호가 안타를 치고 나갔고, 타격 슬럼프에 빠져 있던 김도영이 3구째 몸 쪽으로 형성된 와이스의 슬라이더 실투를 놓치지 않고 페어 지역 안으로 보내는 2루타를 칩니다. 이 타구로 일단, 추격하는 점수는 뽑았지만, 여전히 2점 차이로 뒤지고 있는 상황.
3회에 이어 또 다시 선두타자로 들어선 박찬호가 실책을 50% 정도 만회하는 2루타를 치고 나갔고, 최원준이 와이스의 3구째 존으로 들어오는 체인지업을 놓치지 않고 적시타를 만듭니다. 이걸로 1점 차이. 그리고 김도영이 2-2 카운트에서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에 빠른 스윙을 돌렸고, 이게 방망이에 찍히면서 우측 폴대 안쪽을 간신히 타고 들어가는 역전 투런 홈런이 되었습니다. 김도영이 아니라면, 이런 홈런이 나올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재능을 여실히 보여준 스윙이었습니다.
또 내가 에이스야? 체인지업 마스터 양현종
오늘 팀이 이긴 데에는 양현종의 활약도 대단했습니다. 홈런이야 맞을 수 있는 거고, 박찬호의 실책 때문에 3실점 짜리 투구가 된 거지, 그 이후에는 위기 상황에서도 침착하게 정확한 컨트롤로 체인지업을 떨궈내며 물이 오를 대로 올라 있는 한화 타선을 완벽하게 봉쇄했습니다.
특히, 대단한 투구가 5회말이었죠. 김인환과 김태연의 안타로 무사 1, 2 위기를 맞이했고, 최근 감이 좋은 노시환, 채은성, 안치홍이 줄줄이 등장했는데, 노시환을 상대로 빠른 공 하나 없이 체인지업 4개, 슬라이더 2개로 삼진을 잡았고, 채은성도 마찬가지로 빠른 공 2개는 하이 존에 넣어 보여주기만 하고, 체인지업 3개, 슬라이더 1개로 삼진을 잡았습니다. 안치홍을 1루 땅볼로 잡은 투구도 체인지업이었고요.
올해 양현종은 우타 상대 피OPS .648, 좌타 상대 피OPS .760으로 역 스플릿 기록을 보이고 있습니다. 지난해는 우타 상대 피OPS .802, 좌타 상대 피OPS .579 였는데, 1시즌만에 반대 상황이 됐죠. 그리고 이렇게 된 이유는 '체인지업' 때문입니다. 지난해 양현종이 털릴 때, 그 원인으로 체인지업이 안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었습니다. 체인지업의 피안타율이 .260이었거든요.
올해 양현종이 던지는 체인지업의 피안타율은 .184에 불과합니다. 체인지업의 피OPS도 .514에 불과하고요. 이 덕분에 체인지업의 구종 가치가 리그 1위를 찍고 있죠. 반면 지난해 .507이었던 슬라이더 피OPS가 올해는 .760으로 나빠졌네요. 이것만 봐도 투수가 체인지업과 슬라이더를 동시에 잘 던지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도 알 수 있습니다.
양현종의 포심 평균 구속은 지난해 142km/h에서 올해 140km/h으로 확연히 낮아졌습니다. 세월의 흐름은 비켜 갈 수가 없죠. 포심의 위력이 떨어지니 지난해 53%였던 포심 구사율이 올해는 48%까지 내려왔어요. 대신에 체인지업과 슬라이더 구사율을 높이면서 노련하게 타자들을 상대하고 있죠.
팀 내 젊은 왼손 선발 투수 자원인 이의리, 윤영철이 부상으로 정규시즌 뛰기 어려운 상황인 점까지 고려하면, 30대 중후반에 접어 든 양현종의 피칭은 놀랍기만 합니다. 2014년부터 2023년까지 170이닝 이상을 투구하고 있고, 올해도 170이닝 이상 투구는 문제 없이 할 것 같습니다.(현재 127이닝 투구) 앞으로 8~9차례 선발 등판한다고 보면 평균 5이닝 후반만 던져줘도 170이닝 또 다시 가능할 것 같네요.
아무튼, 마운드에서 양현종이 버티는 동안, 초반 실책으로 잃은 점수를 타자들이 부지런히 따라간 점이 좋았고, 바닥이었던 타격감이 조금씩 좋아지는 것도 긍정적인 부분입니다. 후반부에 박정우가 공수에서 맹활약을 해준 것도 KIA 뎁쓰의 강력함을 보여준 것 같아 보기 좋았고요.
게다가 오늘 졌으면 내일도 질 가능성이 높았죠. 많은 이닝을 던져보지 못 한 알드레드의 주 2회 등판이었고, 한화는 힘 있는 우타자들이 타선의 중심(김태연, 노시환, 채은성, 안치홍)이기에 알드레드가 한화 우타자들을 막을 무기가 없는 상황입니다. 페라자도 스위치히터라서 내일은 우타석에 들어서니, 좌타 잡는 알드레드가 쉬어갈 타선이 없죠.
에릭 라우어 계약 소식이 사실이라면, 알드레드의 피칭은 내일이 마지막이 될텐데 어떤 투구를 해줄 수 있을 지 모르겠습니다. 내일 유종의 미를 거두는 좋은 피칭을 해줬으면 좋겠고, 타자들이 집중력 잃지 않고 내일도 부지런히 치고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내일 상대하는 바리아가 좌타 상대 기록이 훨씬 안 좋기 때문에(우타 상대 피OPS .642 / 좌타 상대 피OPS .757) 내일은 좌타 위주 닥공 타선으로 구성할 것 같네요. 아마 오늘 별로였던 변우혁 대신 서건창이 들어설 것 같고, 아직 타격 컨디션이 좋아 보이지 않은 김선빈 대신 홍종표를 쓸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리고 박정우를 중견수로 내보내고, 최형우 휴식, 나성범 지타로 가는 것도 좋아 보이네요.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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