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요인
KIA는 안타 5개, 볼넷 3개로 9이닝 동안 주자가 8명 나갔고, KT는 안타 9개, 볼넷 4개로 주자가 13명 나갔는데 스코어는 2:0으로 KIA 승리입니다. 심지어 실책도 양팀 모두 사이좋게 하나씩 기록했습니다. 차이가 있다면, KIA에서 나온 실책성 플레이는 실점으로 연결이 안 됐고, KT에서 나온 실책, 실책성 플레이는 모조리 실점으로 연결되었습니다.
오늘 경기는 올 시즌 KIA가 치른 경기 중 가장 '운이 많이 따른 경기'라고 할 수 있네요. 단순히 우리도 못 했는데 상대가 더 못 해서 이긴 경기라고 생각합니다.
김도현, 커맨드 완성 없이는 호투도 없다.
지난 주 30:6 경기의 빌미를 제공했던 김도현이 오늘 선발로 나와서 불안하기 짝이 없었는데, 5이닝 무실점으로 KT 타선을 잘 막았습니다. 하지만 전 좋은 점수를 줄 수가 없네요. 일단, 커맨드가 너무 안 좋습니다. 1회부터 스트라이크존 한 가운데로 몰린 투구들이 무지막지하게 들어갔는데 KT 타자들 감이 안 좋은 지, 아니면 김도현 공의 움직임이 좋았는 지 모조리 범타로 끝나더군요.
오늘 5이닝 동안 사사구 3개 준 것도 문제고, 포수 미트가 요구하는 곳에 들어가는 투구가 거의 없었습니다. 여전히 김도현이 가진 무기는 매력적입니다. 150km/h을 상회하는 포심이 테일링이 걸려 들어가고, 커브, 슬라이더, 체인지업을 모두 존 안에 넣을 줄 압니다.
문제는 이 선수의 커맨드가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죠. 그러니 날리는 공도 많고, 위험한 공도 많고, 가운데 몰리는 공이 많으니 안타도 많이 맞고, 장타도 많이 맞습니다.
올 시즌 안에 김도현의 커맨드가 극적으로 개선될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김도현은 빠른 공과 던질 줄 아는 변화구가 많다는 점에서 매우 가치가 높은 투수 유망주라고 생각합니다. 올시즌 후, 스프링캠프 때부터 차분히 선발투수로 준비를 하면, 상당히 뛰어난 우완 정통파 선발투수를 가질 수도 있어 보입니다. 그때까지 김도현은 많이 던지면서 본인이 원하는 곳에 공을 넣는 능력을 키워야할테고, 그 과정에서 난타도 많이 당하고 볼넷도 많이 줄 것 같습니다. 필요한 건 팬들의 인내심이죠.
KT의 자멸, 승리를 KIA에게 주다.
오늘 경기는 1회부터 KIA 쪽에 운이 따랐죠. 2사 이후에 김도영이 볼넷을 골라 나갔고, 도루 스타트와 함께 최형우가 친 잘 맞은 타구가 중견수 쪽으로 날아갔습니다. 까다로운 타구이긴 했는데 중견수가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어요. 그런데 마지막 포구 순간에 배정대가 공을 흘리면서 KIA 쪽에 선취점이 올라갔죠. 최형우의 3루타로 기록이 되었습니다만, 명백한 실책성 플레이입니다.(그 이후에 나성범의 잘 맞은 타구를 로하스가 호수비하면서 오히려 추가 실점을 막은)
그 이후 KIA 타선은 춤추는 고영표의 체인지업에 속수 무책으로 당하며 땅볼만 양산하다가, 7회말에 선두타자 김선빈이 안타를 치면서 겨우겨우 찬스를 잡았습니다. 이후 서건창이 페이크 번트 앤 슬래시를 걸었고, 투수 정면으로 가면서 병살로 멸망각이었는데, 고영표의 2루 송구가 우측으로 치우치면서 주자가 모두 살았습니다. 이 수비가 결정적이었어요. 이 수비 아니었으면 오늘 경기 잡기 어려웠을 겁니다.
이후에도 박찬호가 번트를 실패했는데, 고영표의 폭투가 나오면서 무사 2, 3루가 됐고, 소크라테스의 느린 땅볼 때 겨우겨우 3루 주자가 들어오면서 간신히 추가점을 뽑았습니다. 2득점 모두, KIA가 잘 해서 나온 점수가 아니라 KT가 실수해서 올린 점수입니다. 뭐, 이런 경기도 있는 거죠.
박찬호의 승부조작급 경기력을 모두 이겨내다.
오늘 경기 졌으면 박찬호 가루가 되도록 까였을텐데, '박찬호의 운수 좋은 날'이었네요. 일단, 김도현이 초반 만루 위기를 구위를 바탕으로 이겨낸 것도 컸지만, 가장 큰 위기는 7회였습니다. 무사에 강백호가 친 매우 평범한 땅볼을 무슨 딴 생각을 했는 지 포구하지 못 하면서 위기를 자초했죠. 뒤이어 장성우가 장현식의 슬라이더를 잘 받아쳐서 무사 1, 3루 위기가 됩니다. 1실점은 당연한 상황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장현식의 피칭이 이때 빛을 발했죠. KT에서 문상철을 빼고 컨택이 좋고 장현식 상대로 14타수 7안타로 강한 조용호를 대타로 내세웠는데, 불리한 카운트에서 포크볼을 잘 떨어뜨려서 1루 땅볼로 3루 주자를 홈에서 잡았고(하지만, 이때도 협살 플레이가 엉망이었던 ㅋㅋ), 김상수를 상대로도 1볼 상황에서 포크볼 잘 떨어뜨려서 또 다시 3루 땅볼로 2아웃을 잡았으며, 역시 컨택이 좋은 김민혁을 상대로도 8구째 슬라이더를 몸쪽에 잘 붙여서 2루 땅볼로 위기에서 벗어납니다. 장현식의 변화구 커맨드가 위기를 벗어나게 한 셈이죠.
8회에도 박찬호가 승부 조작급 플레이를 펼쳤죠. 2사 이후에 잘 던지던 장현식이 심우준 상대로 볼넷을 내줬고(다음 타자가 로하스인데 김도현, 장현식 둘 다 무슨 생각인지...) 그 무시무시한 로하스를 상대로 KIA에서는 이준영을 마운드에 올렸습니다.
여기서 이준영을? 최지민도 아니고 이준영? 지난 주에 먼지나도록 쳐맞은 이준영? 로하스는 좌타가 아니라 스위치 히터인데 이준영을? 무슨 생각이지? 싶었는데 이준영이 기적적으로 로하스를 상대로 슬라이더만 4개 연거푸 던지면서 3-유간으로 평범한 땅볼을 유도했습니다.
아, 이렇게 이닝이 끝나나 싶었는데 박찬호가 1루로 던지는 겁니다? 전, 당연히 1루 주자가 스타트라도 끊은 줄 알았어요. 그런데 1루 주자는 스타트가 빠르지도 않았습니다. 동갑내기 친구 심우준이 아웃 당하는 게 보기 싫었나? 느린 화면으로 보니, 박찬호의 1루 송구가 2루를 지날 때, 심우준은 베이스에 닿지도 않았습니다. 그냥 2루로 던지면 될 걸, 왜 1루로 던져서 화를 자초했는 지 모르겠습니다. 타구가 깊숙했는데 말이죠.
2사 1, 2루에서 강백호라니... 아무리 이준영의 슬라이더가 날카롭다고 해도, 강백호는 올 시즌 좌투수 상대로 .314를 칠 정도로 왼손투수에 약하지 않습니다.(우투수 상대 .294) 단지, 기댈 건 강백호가 후반기 들어서는 부진(후반기 OPS .711)하다는 점이죠. 그리고 KIA 벤치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습니다. 슬라이더 장인 이준영은 1볼 2스트라이크 상황에서 강백호의 등 뒤에서 날아 들어오는 슬라이더를 존에 꽂아 넣으며 위기를 벗어납니다. 올 시즌 이준영의 투구 중 가장 멋진 순간이 아니었나 싶네요.
KT 이기라고 박찬호가 승부 조작급 플레이를 벌였는데 이 모든 억까를 이겨냈습니다. 박찬호는 내일, 커피 살 사람이 많네요. 장현식한테 커피 사고, 이준영한테 사야 하고, 소크라테스(솔직히 잘 한 건 없지만)한테도 사야 하고, 여튼. 지난 키움 전부터 실책 및 실책성 플레이가 너무 많은데, 집중 좀 했으면 좋겠습니다. 로하스의 내야 안타 때 이범호 감독도 빡쳐 하는 것 같은데, 당분간은 주전에서 내리는 방법도 생각해봐야 할 것 같네요.
오늘 경기 잡긴 했는데, 경기력은 별로였습니다. 전형적으로 '상대가 더 못 해서 이긴 경기'라고 할 수 있는데요. 여기에 최형우가 마지막 타석에서 스윙을 하다가 옆구리 쪽에 통증을 느끼고 중간에 빠졌는데, 아무래도 한 타임 쉬어갈 때가 아닌가 싶습니다. 다행히, 이우성이 복귀를 눈 앞에 두고 있으니 최형우와 바통 터치를 하면 될 것 같아요. 최형우도 최근 2주간 타격감이 매우 안 좋기 때문에 2주 정도 쉬는 것도 나쁘지 않아 보입니다. 다행히, 변우혁도 어느 정도 보탬이 되고 있고요.
내일 최형우를 2군 내림과 동시에 이우성을 1군에 복귀시켜서 우익수 수비 세우고, 나성범을 지명타자로 써도 되고, 이우성의 허벅지가 완전한 상태가 아니라면 이우성을 지명타자로 써도 될 것 같습니다. 1루수는 상대에 따라 변우혁과 서건창을 돌려 쓰면 될 것 같고요. 최형우도 이제 나이가 있으니 충분히 휴식을 취해야죠. 그동안 너무 달린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정해영이 오늘 오랜만에 1군에 복귀했는데(무려 한 달 넘게 지났는 지도 몰랐네요.) 가장 우려했던 구속은 생각보다 나쁘지 않았습니다. 145km/h 내외를 기록했는데, 아직 최상일 때보단 못 하지만, 그래도 상대 타자를 압도할 정도의 구위는 끌어 올린 것 같아요. 전상현이 마무리 자리를 잘 지켜주고 있으니 당분간은 오늘처럼 조금 여유있는 상황에서 등판하며 구위를 끌어 올리면 좋을 것 같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디어 에릭 라우어 오피셜이 떴는데, 어떤 피칭을 할 지 기대 반 걱정 반이네요. 메이저리그 커리어만 보면 에릭 페디보다 훨씬 윗급인데(심지어 페디보다 나이도 어림) 기량이 떨어진 것인지, 부상에서 회복해 기량을 끌어 올리는 중인지 지켜보면 될 것 같습니다. 후자라면, KIA는 등에 날개를 단 격이 될 것 같아요. 무엇보다도 네일, 알드레드와 달리, 선발 경험이 풍부하다는 점에서 매우 높은 평가를 해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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