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선발 매치업이 밀려서, 경기 잡으려면 시라카와가 버텨주고 한화의 약점인 불펜을 공략해야 승산이 있다고 봤는데, 의도가 적중한 경기였습니다. 변수라면 우리 불펜도 흔들렸다는 점이지만, 우리에겐 ‘마무의리’가 있었죠.

7회까지는 한화 선발 화이트와 KIA 선발 시라카와의 명투수전이었습니다. 특히, 시라카와는 오늘 이전과 다른 ‘스텝업’한 모습을 보였는데, 커맨드가 예술이었습니다. 파괴력 있는 한화 타선을 상대로 안타를 단 2개밖에 허용하지 않았고, 그중 제대로 맞은 타구는 천적 문현빈에게 내준 안타 하나뿐이었습니다.
KIA 타선은 천적인 화이트를 공략하지 못 했습니다. 하지만 행운이 따랐죠. 2회에 오선우가 첫 타자로 나와 화이트의 149km/h 바깥쪽 높은 포심을 부드러운 스윙으로 좌측 담장을 직격하는 2루타로 연결해 찬스를 잡았고, 화이트의 제구가 흔들리면서 김태군에게 볼넷, 정현창에게는 사구를 내줬죠.
하지만 화이트의 볼이 그렇게 크게 빠진 건 아니어서, 여전히 공략이 쉽지 않아 보였고, 박재현이 친 타구는 평범한 내야 뜬공이었는데 그 공이 높이 떠서 구름 색깔과 동기화가 일어나는 바람에 우익수 페라자가 타구를 놓치고, 2루수 이도윤 마저도 타구를 잡지 못 하면서 3루 주자 오선우가 홈을 밟을 수 있었습니다.
3회에 카스트로의 홈런으로 한 점 더 뽑았지만, 그 이후에는 화이트의 공을 이겨내질 못 했죠. 커맨드가 너무 좋아서 쉽지 않았어요. 오히려 4회 이후에 공이 더 좋아 지더라고요.
시라카와는 7회에도 마운드에 올랐지만 문현빈에게 안타를 허용했습니다. 강백호를 상대로 등판한 김범수는 공 하나로 뜬공을 유도하고 내려갔고, 전상현이 노시환을 상대했습니다. 그러나 포크볼이 떨어지지 않고 존에 남으면서 대형 동점 투런포로 연결됐습니다.
이 투수 교체는 뭐라고 하고 싶진 않습니다. 시라카와의 구속은 떨어지고 있었고(7회 포심 구속이 143km/h에 불과했습니다.) 어제처럼 7회 전상현, 8회 조상우, 9회 이의리로 가져가면서 경기를 잡는다는 구상이었죠. 게다가 전상현이 노시환 상대 통산 성적이 좋기도 했고요. 홈런 맞은 건 어쩔 수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불펜은 이의리만 좋았고 전상현과 조상우가 연투를 해서 그런지 구위가 어제보다 안 좋았는데, 나머지 불펜투수들이 분발해줘야 해요. 정해영이 군대 가기 전 유종의 미를 거두든, 이태양이 분발하든, 최지민이 다시 강력한 공을 던지든 해야죠. 이의리 혼자서는 버틸 수가 없습니다. 그나마 성영탁이 잘 막아줘서 다행이죠.

동점은 됐어도 전, 여전히 KIA 쪽이 유리하다고 봤습니다. 한화 불펜에 올해 안 좋고, KIA 타선은 후반기 리그 최고의 공격력을 자랑하고 있었으니까요. 기대대로 8회 첫 타자 김도영이 장유호 상대로 볼넷을 얻어 나갔고, 카스트로 역시 바뀐 투수 조동욱을 상대로 침착한 선구안을 보이며 볼넷을 얻어 나갔습니다.(김도영의 도루로 1루가 비었던 것도 감안했을 겁니다.)
무사 1, 2루 상황. 타석에는 나성범. 그런데 갑자기 김선빈을 대타로 내는 겁니다. 전 처음에 오늘 나성범이 수비로 뛰어서 대수비로 바뀐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나성범은 지명타자였죠. 그런데 여기서 김선빈을 대타로?
심지어 김선빈을 대타로 내서 한다는 게 ‘번트’였습니다. 김선빈을 대타로 쓸거였으면 ‘번트’ 대타로 쓸 게 아니라, 나성범이 해결 못 했을 때 ‘안타’를 치라고 대타를 썼어야 했고, 나성범은 그대로 밀고 갔어야죠. 어제 오늘 나성범 타격감이 안 좋긴 했어도, 나성범은 ‘선구안’이라도 괜찮고, 위기 상황에서는 컨택 스윙을 할 정도의 정확성도 있는 선수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김선빈을 ‘번트’를 대기 위한 대타로 소모하다니요.
게다가 다음 타자가 ‘김호령’입니다. 김호령은 올 시즌 리그에서 두 번째로 삼진이 많은 선수이고, 컨택도 안 좋은 선수입니다. 우려대로 박상원의 초구와 2구는 가운데로 들어가는 실투였는데 모두 타이밍이 늦더라고요. 특히, 초구 슬라이더가 밋밋하게 들어갔는데, 그 공 파울 만드는 거 보고 탄식이 나왔습니다. 결국 카운트 몰리니까 바깥쪽 많이 빠진 포심 굳이 건드려서 1루 땅볼 치고 3루 주자가 홈에서 아웃됐고요.(그런데 비디오 판독 해볼 법 했는데...)
그러고 나서 이호연 대신(이호연은 왜 자꾸 쓰는 지 모르겠습니다.) 하주석을 대타로 내보냈는데, 하주석이 나름 끈질기게 승부했지만, 풀카운트에서 박상원의 빠른 공을 이겨내지 못 하고 삼진 당하고 절호의 찬스가 무산됐습니다.
그나마 9회초 공격에서 박재현의 안타와 김도영의 쐐기 쓰리런이 나와서 경기를 잡았지만, 막판 경기 운영은 미친 거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해가 안 가는 선택의 연속이었습니다. 제가 감독이었다면 나성범은 그대로 밀고 갔고, 김호령 타석에서 김선빈을 대타로 썼을 것 같습니다.

제가 이전 리뷰에서는 시라카와를 박하게 평가했는데, 오늘 투구하는 모습을 보고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첫 경기 잘 던질 때도 전 운이 따랐다고 봤는데, 오늘은 운이 아닌 실력으로 한화 타선을 막았습니다.
시라카와의 가장 큰 단점은 ‘볼넷 허용’이 너무 많다는 점이었는데, ‘스트라이크를 조금 더 적극적으로 던지라’는 독립리그 시절 동료였던 토다의 조언을 받고, 마운드에서 접근 방법을 달리 했다고 하죠. 이전에는 실투가 들어갈까봐 어떻게든 타자를 낚으려는 투구를 했는데, 요즘엔 실투가 들어가더라도 스트라이크존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고, 이런 변화가 호투의 배경이 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라카와는 2001년생으로 겨우 25살입니다. KIA 팀내에서는 이의리, 황동하보다 불과 1살이 더 많고 정해영과 동갑인 투수에요. 이의리와 황동하도 아직 성장 중이라는 이야기를 듣고 있는데, 시라카와의 포텐셜이 여기까지라고 단정할 이유는 어디에도 없죠. 오히려 ‘아시아 야구의 발전’을 위해 도입한 ‘아시아쿼터’의 취지에 어울리는 선수라고 생각합니다.
기록으로 봐도 시라카와의 발전을 알 수 있습니다. 첫 해 SSG(23이닝)와 두산(34.1이닝)에서 뛰며 SSG에서는 ERA 5.09, 두산에서는 ERA 6.03에 그쳤어요. SSG에서는 피OPS .813, 두산에서는 피OPS는 낮았지만(.690) 삼진보다 볼넷이 더 많았습니다. 관중 많을 때 부진하다는 약점도 있었죠.
그런데 한국야구 2년차인 올해 50.2이닝을 투구하면서 ERA를 4.44까지 내렸습니다. 외국인 투수들에 비하면 부족한 성적이지만, 계약금 2만 달러, 연봉 4만 달러, 옵션 4만 달러를 합쳐 총액 10만 달러, 약 1억 5천만원에 영입한 선수라는 점을 감안하면 가성비가 매우 뛰어난 활약입니다. 아래는 KBO 첫 해와 올해 시라카와의 세부 기록을 비교한 자료입니다.

SSG에서의 세부 스탯이 좋은 편이지만, 스몰 샘플이라 좋은 통계라고 할 순 없고 피홈런이 너무 많았죠. 그리고 두산에서의 모습이 너무 안 좋았습니다. 볼넷이 삼진보다 많았으니까요. 대신 잠실 구장 이점을 살려서인지 장타는 극도로 억제하며, 문학 구장과 잠실 구장 성적이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KIA에서는 여전히 볼넷이 많은 게 문제지만, 삼진이 볼넷보다 많고 피출루율이 나쁠 뿐, 피안타율과 피장타율이 낮습니다. 앞서도 언급했지만, ‘너무 잘 던지려다 보니’ 쓸데없는 볼이 많았는데 최근에는 적극적으로 스트라이크존 넣고 ABS에 어느 정도 적응하면서 더 성장하는 것 같아요.
다만, 전 여전히 시라카와를 ‘좋은 선발투수’로 보진 않습니다. ‘스태미너’에 단점이 보이기 때문이에요. 오늘도 경기 후반에는 구속이 완연히 떨어지는 모습이 나왔고요. 다만, 아이러니한 점은 투구 이닝별 기록을 보면 1~3회가 안 좋고(피OPS .755) 4~6회가 오히려 좋습니다.(피OPS .582)
개인적으론 스태미너에서 개선이 없고, 내년부터 아시아쿼터 선수의 선발 등판을 제한한다면 시라카와를 차라리 셋업맨이나 마무리 투수로 기용하면 어떨까 싶어요. 1이닝만 전력 피칭을 하면 지금보다 포심 구속이 올라올 것 같은데, 이러면 올 시즌 포심 피OPS .734에서 개선이 이루어질 것 같거든요.
아무튼 결론은, 올 시즌 끝나면 올러, 네일, 카스트로, 시라카와. 이 네 명의 외국인 선수를 모두 잔류시키는 게 스토브리그의 첫 번째 목표라는 점입니다. 시라카와는 아직 젊어서 내년 성장이 더 기대가 됩니다. 카스트로도 올해 적응을 끝내고 내일은 리그를 씹어 먹을 기세고요. 올러와 네일은 폰세나 앤더슨처럼 도미넌트한 맛은 떨어져도 KBO에서는 이보다 더 나은 외국인 투수를 데리고 올 수가 없죠.
KIA가 올 시즌 어떤 성적표를 받을지 모르겠지만, 내년 이후 KIA의 시즌 목표는 외국인 투수들을 뒷받침해 줄 국내 투수들의 기량 향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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