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늘 경기는 2경기에서 굉장히 좋은 피칭을 한 메이저리거 페덱을 상대했기에 다득점이 어려울 거라고 봤는데, 라인업을 보면서 도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저렇게 짠건가 라는 생각을 감출 수가 없었죠. 리그에서 땅볼을 가장 잘 유도하는 네일이 등판했는데, 내야 수비를 전부 수비 능력이 떨어지는 선수로 구성을 했으니까요.
그런데 KIA 타선은 페덱에게 6실점을 안기면서 경기를 손 쉽게 잡았습니다. 네일이 역시나 내야 수비의 도움을 받지 못 하며(1회 구자욱의 타구를 포구하지 못 한 하주석, 3회에 윤도현의 2연속 본인 범위의 땅볼 포구 실패) 6이닝 동안 12명의 주자(10피안타 2볼넷)를 내보냈는데, 본인 장기인 땅볼 유도를 두 번 만들어 내며 병살타와 삼진으로 이닝을 넘겼습니다.
2회초 공격에서 페덱을 상대로 무려 5득점을 뽑았습니다. 1회에 페덱의 공을 보면, 어떻게 2회에 이렇게 대량 득점을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의문일 정도로 1회의 페덱 공은 너무나도 완벽했어요. 구속이 엄청 뛰어나진 않았지만, 그래도 150km/h에 육박하는 포심이 보더라인에 정확하게 들어갔고, 김호령을 삼진으로 잡은 체인지업은 거의 마구더군요.
그런데 페덱도 대구의 더위를 이겨내지 못한 걸까요? 2회부터 마구 같았던 체인지업이 안 떨어지고 몰리기 시작하고, 포심 구위도 갑자기 뚝 떨어지더라고요. 일단 정확성의 카스트로가 불리한 카운트에서 페덱의 체인지업을 공략해 중전 안타로 출루하고, 나성범은 포심을 공략해서 운이 따른 코스 안타로 무사 1, 2루.
페덱의 공이 좋으니 김선빈은 희생번트를 시도했지만, 번트에 실패하며 카운트가 몰렸고, 불리한 카운트에서 커트커트하다가 페덱의 잘 떨어진 체인지업을 김선빈이 신과 같은 배트 컨트롤로 안타를 만들어 내며 선취점을 뽑았죠. 이 장면은 그냥 순수하게 김선빈의 컨택이 만들어 낸 득점이었습니다.
그리고 하주석에게 밋밋한 체인지업 던지다가 2루타 허용, 그리고 김태군 상대로 초구 커브를 던졌는데, 김태군이 커브를 기다렸는 지, 주저 없이 방망이가 돌았고, 김태군의 타구가 라팍 가장 좌측 담장을 살짝 넘어 가면서 쓰리런. 이 홈런으로 사실상 승부가 결정이 났습니다.

페덱이 오늘 안 좋기도 했지만, KIA 타선이 강한 것도 맞습니다. 후반기 KIA의 팀 OPS는 .861을 기록하며 10개 구단 중 압도적인 1위입니다. 2위 한화와는 무려 .045 포인트 차이나 날 정도에요. 후반기 팀타율은 .281을 기록하며 5위에 그치고 있지만, 10개 구단 중 가장 많은 25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유일하게 팀 장타율 .500을 넘기고 있어서, KIA 후반기 공격력의 근간은 '파워'에 있습니다.
오늘 경기 수훈 선수는 2회에 쓰리런을 치고, 투수진을 잘 이끈 김태군이라고 생각하지만, 오늘 중심타자들이 테이블세터진에서 단 한 번도 출루하지 못 한 와중에도 10타수 7안타 2홈런 3타점을 올려줘서, 두 자릿 수 득점을 올릴 수 있었죠.(삼성의 수비 도움도 많이 받았고)
특히, 가장 놀라운 선수는 카스트로입니다. 오늘 3타수 3안타 1홈런을 쳤는데, 타구가 모두 잘 맞았을 정도로 타격감이 굉장히 뛰어 납니다. 라팍런이긴 했지만, 박용재 투수의 공이 존에서 많이 벗어나 시야에서 크게 먼 타구였음에도 '힘'이 아닌 '기술'로 가장 짧은 라팍 좌중간 담장을 살짝 넘겼으니까요.
카스트로 후반기 타율이 .415나 됩니다. 54타석에서 홈런 6개를 치면서 장타율 .849에 후반기 OPS가 1.305를 기록하고 있어요. 그리고 이 OPS는 당연히 후반기 모든 타자들 중 가장 높은 OPS 입니다. 아래는 올 시즌 후반기 OPS TOP 10 입니다. KIA 선수들이 TOP 5 안에 3명이나 들어가 있고, 모두 중심타자들이죠.

카스트로를 처음 영입할 때, 롯데 레이예스 같은 활약을 기대했죠. 그런데 뚜껑을 열어 보니 레이예스만큼 컨택이 좋은 선수가 레이예스보다 파워가 뛰어 납니다.
올해 레이예스가 타율 .350으로 작년에 이어 여전히 잘 하고 있는데, 13개의 홈런 .514의 장타율로 항상 장타 능력이 아쉬운 타자죠. 그런데 레이예스를 기대하며 영입한 KIA 카스트로는 레이예스(97경기)보다 훨씬 적은 경기 수(54경기)에도 불구하고 12개의 홈런, 그리고 .590의 장타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타율 .340으로 레이예스와 1푼 밖에 차이가 안 나고요.
쉽게 말해 카스트로는 '힘 좋은 레이예스'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두 선수 모두 볼넷을 골라 나가기보다는 때리는 걸 좋아하는 타입이라는 공통점이 있고, 수비와 주루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다는 점도 공통점인데, 정확한 컨택능력을 기반으로 높은 생산성을 기록하고 있죠. 카스트로는 여기에 작년부터 AAA에서 홈런 20개를 넘기는 이례적인 모습을 보이면서 장타에 눈을 뜬 모습을 KBO에서도 그대로 재현하고 있습니다.
카스트로 여전히 순출루율이 좋지 않아서 부진하면 타격 생산성이 나빠질 타입이긴 한대, 요즘 타석에서의 모습을 보면 이제 ABS존에 적응이 되었는 지 까다로운 공들을 제법 골라 냅니다. 시즌 초 안 좋을 때 바깥쪽 낮은 공을 계속 건드려서 좋지 못한 타구질을 보였는데, 최근에는 바깥쪽 낮은 코스의 공들은 버리고, 본인 존에 오는 투구만 강한 타구로 연결시키고 있습니다.
일각에서는 카스트로가 주루와 수비가 안 되는 지명타자이기 때문에 재계약을 신중히 해야 한다는 의견이 있던대, 말도 안 되는 헛소리죠. 지금 KIA는 카스트로한테 제발 재계약 해달라고 싹싹 빌어야 할 입장입니다. 아무리 수비와 주루가 안 되도, WRC+ 151.3을 찍고 있는 선수입니다. 현재 리그에서 WRC+ 150 이상을 치는 선수는 딱 4명(오스틴, 김도영, 강백호, 페라자) 입니다.(나성범 149.4로 아쉽)
더 고무적인 건 카스트로의 지금 성적이 리그 적응 때문에 날려 먹었던 4월까지의 성적(부상 복귀 전까지 카스트로는 OPS .700에 불과했음)이 포함된 성적이라는 점이죠. 재계약 후에는 올해 4월까지 처럼 리그 적응하는데 시행 착오를 겪진 않을 겁니다. 당연히 재계약을 해야 할 성적이고, 햄스트링 부상 때문에 지금 수비와 주루가 비정상적인 걸로 추측되는데, 몸 상태가 좋아지면 수비 능력도 지금보다 더 나아질 수 있겠죠.
그리고 카스트로가 본인 포지션이 외야수가 아니라 2루수이기 때문에, 정말 2루 수비가 가능하다면 김선빈의 공수에서의 부진으로 사실상 주인이 없는 2루 자리에 큰 힘이 될 것 같습니다. 다만, 실제로 카스트로가 2루 수비를 하는 모습을 못 봤기 때문에 얼마나 잘 할 지는 의문이긴 합니다.

오늘 네일은 서두에도 언급한 것처럼 좁아 터진 내야 수비 때문에 어려운 경기 속에서도 선방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래도 1회와 2회에 많은 공을 던진 것치곤 102개의 공을 던지며 6회까지 던져준 점은 박수를 충분히 받을만 하죠. 적어도 화요일 경기 망친 올러보다는 훨씬 나은 투구였고, 삼성의 테이블세터진들 때문에 고생했는데, 중심타선을 잘 막은 게 오늘 네일이 승리를 거둔 원동력이 됐습니다.
네일에 이어서 정해영, 이태양, 홍민규가 마운드에 올라 던졌는데, 정해영은 오늘처럼 150km/h을 던질 수 있으면서 왜 경기마다 구속 기복이 심한 걸까요. 아래는 7월 10경기에서 정해영의 포심 평균 구속과 실점입니다.

왜 이렇게 경기마다 포심 구속 차이가 심한 지 모르겠습니다. 올해까지만 뛰고 내년에 상무 입대라서 그런가요. 아니면, 뭔가 다른 이유라도 있을까요. 마운드에 올라와서 정해영 포심이 145km/h 내외인 경우, 아, 오늘 조졌구나~ 라는 생각이 들 수 밖에 없습니다. 오늘 비록 안타 2개는 맞았어도 모두 단타에 그쳤죠. 공에 힘이 있으니까 좌우중간이 짧은 라팍에서도 아웃 카운트를 잡을 수 있는 겁니다.
그리고 이태양과 홍민규가 복귀해줬는데, 둘 다 오늘 투구 내용이 좋더라고요. 물론, 점수 차이가 컸기에 삼성 타자들의 집중력이 떨어진 탓도 있겠지만, 둘 다 기본적으로 피해 가는 피칭을 하지 않고 적극적인 피칭을 하는 유형이라, 추격조로는 이보다 더 좋은 투수들이 있을까 싶고, 최지민, 한재승보다는 훨씬 믿음이 갑니다.
홍민규가 시즌 초반에 잦은 등판으로 혹사(?) 당하다가 5월 이후 일본 유학을 다녀와서 오랜만에 마운드에 올랐는데, 확실히 그 전 보다 공에 힘이 있더라고요. 개인적으로 홍민규 평균 구속이 너무 낮은 선수라서 우완 투수가 풍부한 두산 보상선수 픽으로는 아쉬운 선수라고 봤는데, 오늘 최고 148km/h까지 던졌고, 그 까다로운 김성윤을 상대로 몸쪽 포심을 꽂아 방망이를 부러뜨린 걸 보면, 홈플레이트 근처에 움직임도 괜찮은 것 같습니다.
홍민규 구속이 아쉽긴 해도 이제 고졸 2년차죠. 체인지업이라는 결정구도 있기에 근육량 더 붙이고, 투구 밸런스를 다시 잡아 가는 과정을 밟으면 증속도 가능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평속 딱 3km/h만 올라도, 체인지업이 워낙 좋고 커맨드가 뛰어난 투수라서, 불펜에서 정말 쏠쏠히 잘 써먹을 수 있을 것 같아요. 일단, 06년생으로 나이가 어린 게 가장 좋죠.
KIA 유격수 자리가 너무 구멍이 크기 때문에 보상 선수로 온 홍민규가, KIA의 약점 중 하나인 우완 투수 풀을 채워주는 역할을 해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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