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해영, 누구냐 너?
지난 시즌까지 전, 정해영을 신뢰하지 않았습니다. 익스텐션 빨로 마무리 투수치곤 느린 구속으로도 세이브를 올려줬지만, 마무리 투수의 가장 큰 미덕은 삼진을 잡는 능력인데, 정해영의 삼진 잡는 능력은 마무리 투수 치고는 너무 떨어졌습니다. 통산 9이닝 당 삼진이 6.64개에 불과했고, 구속 저하를 겪은 지난해에는 9이닝 당 삼진이 5.47개까지 떨어졌습니다.
마무리 투수에게 삼진 잡는 능력이 중요한 이유는, 인플레이 상황을 최소화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주자가 한 명이라도 나가면 변수가 많이 발생하는 경기 후반부에 인플레이 상황을 만들지 않는 '탈삼진'은 마무리 투수에게 두 번째로 중요한 덕목입니다.(첫 번째는 강심장)
그런데 올해 정해영이 달라졌습니다. 전 이런 선수인 지 몰랐습니다. 통산 빠른 공의 구속이 145km/h가 안 됐던 선수가, 지금 150km/h을 우습게 찍고 있습니다. 그 와중에 정해영의 가장 큰 장점인 높은 코스의 보더라인에 공을 던지는 제구력까지 유지하고 있네요. 우스개 소리로 '기적형 마무리 투수'라고 했는데, 개막전과 오늘 경기의 투구를 꾸준히 보여준다면 '기적형 마무리 투수'가 아니라 '블론하면 상대에게 기적이 되는 마무리 투수'가 됐네요.
정해영이 작년과 달라진 점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드라이브 라인'을 다녀온 거죠. 위 영상에서 정재훈 코치가 말하는 것처럼 드라이브 라인이 만병통치약은 아닙니다. 드라이브 라인에서는 선수의 단점을 지적해주고 조금 더 좋은 공을 뿌리기 위한 팁을 주는 거지, 그걸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오롯이 선수 자신의 노력이죠.
정해영은 지금, 드라이브 라인에서 배운 걸 자기 것으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확실하게 클래스가 올라갔네요. 작년까지만 해도, 올 시즌 끝나면 정해영은 군문제를 해결하고, FA 마무리 투수를 영입해야 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이젠 생각이 달라졌습니다. 지금처럼 던지면 아시안 게임에서 정해영을 안 데리고 가면 국정감사에 소환되어야 합니다.
정해영 뿐만 아니죠. 드라이브 라인에 다녀온 투수가 최지민, 이의리, 윤영철, 황동하 이렇게 총 5명으로 알고 있는데, 최지민도 구속이 좋아졌습니다. 지난해 최지민 빠른 공의 평속은 145.8km/h 였습니다.(다시 검색해보니 최지민이 아니라 곽도규가 다녀왔군요. 최지민은 드라이브 라인 훈련만 받은 듯) 올 시즌 개막전에서 149km/h 평속을 보였습니다. 오늘도 대부분의 빠른 공이 140km/h 후반대를 찍었습니다. 오늘 롯데에서 가장 위협적인 타자였던 레예스가 꼼짝도 못 할 정도로 위력적이었던 바깥쪽 빠른 직구(150km/h)를 꾸준히 던질 수 있으면, KIA는 우 정해영, 좌 최지민이라는 리그 최강의 더블 스토퍼 구축도 가능합니다. 역대 타이거즈에서 이렇게까지 불펜 구성이 좋았던 때가 있었나 싶을 정도로 뒤가 든든하네요.
정해영, 곽도규 둘 말고는 아직 이의리, 윤영철, 황동하는 시범경기에서 딱히 스텝업 하는 모습을 보이진 못 했는데요. 위 영상에서 정재훈 코치가 말했듯이 드라이브 라인에서 깨우친 걸 자기 것으로 만드는 건 오롯이 선수의 역할이고 꾸준히 노력이 필요한 부분입니다. 그리고 올해 KIA가 드라이브 라인의 효과를 봤기 때문에 앞으로 젊은 투수들을 드라이브 라인에 많이 보냈으면 좋겠고, 타팀에서도 적극적으로 보낼 것 같네요.
최형우, 그는 신이야
오늘 경기 양현종의 피칭은 나쁘지 않았습니다. 볼넷이 많았던 게 흠이었고, 후반부에 힘이 떨어지는 게 느껴지긴 했는데 양현종은 올해 170이닝, ERA 3.50만 기록해줘도 제몫을 다 하는 시즌이죠. 스트라이크존을 여전히 적극적으로 공략할 줄 알고, 빠른 공에 롯데 타자들의 방망이가 밀리는 등, 아직 구위가 살아 있습니다. 볼넷이 많았던 건, 이제 나이가 들면서 구위가 떨어진 걸 신중한 피칭으로 보완하려는 과정이라고 봐야할 것 같습니다.
양현종보다 더 좋았던 게 반즈였습니다. 그동안 KIA가 반즈 상대로는 잘 쳤는데, 오늘은 좀처럼 좋은 타구를 만들지 못 했죠. 이우성이 한 차례 좋은 타구를 날렸을 뿐, 좀처럼 실마리를 풀지 못 했습니다. 이 실마리를 풀어 준 게 최형우의 홈런 한 방이었죠. 앞 두 타석에서 반즈의 투구에 전혀 타이밍을 맞추지 못 해서 세 번째 타석도 전혀 기대가 전혀 안 되었는데 뜬금없이 반즈의 날카롭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완벽한 스윙으로 담장을 넘겼습니다.
공인구 반발계수의 도움도 받았는 지, 작년에는 담장 앞에서 잘 맞은 타구가 잡히는 경우가 많았는데 오늘은 쭉쭉 뻗어서 담장을 넘기더군요. 이러면 최형우 제2의 전성기를 기대해봐도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최형우의 타율을 떨어뜨렸던 '쉬프트'까지 금지되었고, 반발계수도 높아졌으니 40대에 OPS .900 이상을 기록할 지도 모르겠습니다.
오늘 타자들이 부진하긴 했지만, 개막전에서는 18명이나 출루해줬고, 오늘 반즈 공이 너무 좋았습니다. 변화구를 그렇게 존 근처에서 잘 떨어뜨리면 어떤 타자도 쉽게 공략이 어렵죠. 그리고 일단, 기본적으로 불펜이 단단하다보니, 오늘 양현종이 승부를 끌어주고 불펜 싸움으로 갈 때 승산이 있다고 봤고, 실제로 8회 집중타로 승기를 잡을 수 있었습니다. 이게 강한 불펜의 힘이고, 빠른 발을 가진 야수를 여럿 가지고 있는 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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