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우어, 드디어 클래스 증명하나?
드디어 라우어가 올 시즌 들어 가장 좋은 공을 던졌습니다. 3실점 많은 거 아니냐고 생각할 수 있는데, 첫 실점이 된 노시환의 2루타는 좌익수가 최형우가 아니라 소크라테스나 최원준, 박정우였으면 코 파면서 달려와도 잡을 수 있는 타구였고. 7회 2실점도 라우어의 잘못은 없고, 채은성의 정면 타구 놓친 김도영(이게 왜 실책이 아니죠?)과 광주의 아들임을 증명한 장진혁 타석에서 ABS 억까 탓이 컸죠. 정작 적시타도 라우어가 아니라 곽도규가 맞았고요.
오늘 경기 들어가기 전, 가장 먼저 들린 소식은 이범호 감독의 인터뷰였습니다. '오늘은 포수 리드가 아닌 라우어가 원하는대로 던지기로 했다. 머리를 비우고 본인 스타일대로 던질 예정'이라고 인터뷰를 했죠. 실제로 오늘 경기 피치컴을 착용한 선수는 포수 김태군이 아니라 투수 라우어였습니다. 직접 볼배합을 했고, 그 결과가 좋았죠.
여기에 투구 판 위치도 바꿨습니다. 밟는 위치를 중앙으로 조금 변화를 줬는데 그 결과 변화구 각이 조금 더 나아졌다고 하죠. 볼배합 문제는 그냥 심리적인 문제라고 생각하고. 진짜 중요한 변화는 밟은 위치를 바꾼 것 같습니다. 제가 주구장창 라우어의 단점으로 지적한 게, 변화구 커맨드와 무브먼트가 떨어진다는 점이었는데 오늘의 라우어는 변화구 떨어지는 각도와 무브먼트가 괜찮았어요. 오히려 포심은 몸쪽 제구가 안 되면서 고생을 한 느낌이고요.
오늘 라우어의 달라진 투구를 보여주는 타석이 KIA 킬러인 김태연 선수입니다. 오늘 특이하게 김태연 타석에서만 공이 아주 잘 들어가더라고요. 네이버 문자중계 결과를 가져오면, 아래와 같습니다.
초구 포심이 날리며 들어갔지만, 2구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 3구째 몸쪽 높은 쪽으로 잘 들어간 커터, 그리고 마지막으로 4구째에 존에서 날카롭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이끌어 첫 삼진을 잡았습니다.
두 번째 타석에서 초구를 보면, 라우어의 포심이 우타자 기준으로 살짝 바깥쪽으로 벗어나는 느낌이 드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여기에 김태연의 방망이가 나와서 파울이 됐고, 2구째 커브가 정말 기가 막히게 떨어졌죠.
전 라우어가 처음에 올 때, 커터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고, 하이 패스트볼과 커브 조합을 기대했습니다. 이 조합으로 리그 쌈싸먹는 투수가 두산의 곽빈이죠. (올해는 좀 부진하지만) 그런데 지난 경기까지 라우어의 커브는 너무나도 쉽게 컨택이 됐어요. 오늘처럼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거나 헛스윙을 유도하지 못했죠. 그런데 이런 공이 김태연의 두 번째 타석에서 들어갑니다. 그리고 4구째 커브를 더 낮게 떨어뜨린 다음에 슬라이더로 타이밍을 뺏어서 김태연을 또 다시 삼진으로 잡았죠.
김태연의 세 번째 타석을 보면, 역시 몸쪽 낮게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헛스윙을 유도하고, 그 코스로 7구째 150km/h에 육박하는 포심을 낮게 집어 넣어서 루킹 삼진을 잡아냈죠. 정리하면 김태연을 상대로 첫 타석에는 슬라이더를 낮게 떨어뜨려서 삼진을 잡았고, 두 번째 타석은 커브를 활용해 삼진을 잡아냈고(결정구는 슬라이더), 세 번째 타석에서는 몸쪽 강속구로 삼진을 잡았습니다.
이전 경기까지 라우어의 가장 큰 문제가 우타 상대로 결정구가 없다는 점인데, 오늘 김태연 상대했을 때처럼 (1) 슬라이더를 존에서 낮고 날카롭게 떨어뜨리거나 (2) 강속구 위주로 가다가 커브를 낮게 떨어뜨려서 헛스윙 또는 땅볼을 유도하거나 (3) 떨어지는 슬라이더와 커브를 의식한 타자에게 몸쪽 낮게 포심 꽂아 버리면 그게 바로 '결정구'입니다.
그동안 라우어가 안 됐던 게, 커터가 자꾸 컨택이 되고. 슬라이더는 존에서 안 떨어지고. 커브 각도 날카롭지 못 했죠. 그런데 오늘 피칭 디자인을 자기가 하면서 멘탈적인 문제를 극복했고(어라? KBO 포수들이 던지는 대로 던지는 데 왜 쳐맞지?) 투구판 밟는 위치를 바꾸면서 변화구 커맨드가 나아졌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얼마나 좋아졌는 지는 더 지켜봐야겠지만요.
그리고 오늘 투구판 이동하면서 변화구 각은 좋아졌을 지 몰라도 포심은 우타자 바깥쪽 높게 빠지는 공이 많았죠. 얻는 게 있으면 잃는 것도 있는 법인데 오늘 포심 날린 게, 투구판을 옮겨서 그런 건지, 아니면 그냥 오늘 포심 커맨드가 안 되는 날이었는 지도 더 지켜봐야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4~5번 더 등판할 것 같은데, 남은 등판에서 지속적으로 QS를 한다면 포스트시즌 무대에서 호투도 기대할 수 있고 재계약도 할 수 있는 거죠. 여전히 우타자 바깥쪽 떨어뜨리는 구종이 없는 게 치명적인 약점이긴 한대, 이 선수가 화투 쳐서 메이저리그에서 두 시즌 동안 선발 로테이션을 우수한 성적으로 돌았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지금이 라우어가 메이저리그 때의 폼을 회복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하면 계속 희망적인 전망을 할 수 있는 거고, 그게 아니라면 포스트시즌도 위험해지는 거죠.
여튼, 그렇게 던질 때마다 쳐맞던 커터의 피OPS가 .250에 불과했다는 데에 긍정적인 신호를 읽고 싶습니다. 커터의 커맨드가 오늘은 좋았다고 해석할 수 있는게, 커터의 컨택률은 75%로 시즌 평균(70%)보다 높았는데 커터의 피안타율이 오늘 .125에 불과했습니다. 커터가 한화 타자들의 방망이를 빗겨 맞췄다고 해석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이게 볼배합을 자기가 하면서 멘탈이 안정되어서 그런 건지, 투구판 밟는 위치를 조정해서 좋아진 건지는 다음 경기, 그 다음 경기. 그리고 포스트시즌까지 계속 지켜봐야할 듯 싶습니다.
왜 영입했는 지 몰랐던 서건창. 연봉 값 하고도 남은 시즌
2위 삼성과의 경기 차이가 5.5경기 차이라서 그런지 오늘도 이범호 감독은 '느슨한' 라인업을 짰죠. 최근 엄청난 타격감을 보이고 있는 김선빈을 라인업에서 제외하고 서건창을 2루수로 선발 출장시켰습니다. 오늘 2루 쪽에서 사고 많이 나겠구나 했는데 오늘 서건창은 2루 수비를 아주 건실하게 해줬죠.
게다가 오늘 타석에서의 활약이 김선빈 못지 않았습니다. 아니, 김선빈이 오늘 정상적으로 출장했어도 서건창만큼 활약해줬을 지 의문일 정도였어요. 최형우를 좌익수 선발로 내보낸 죄로 선취점이 나왔고, 좌타 상대 떨어지는 체인지업의 위력이 떨어져서 성적이 안 좋던 한화 바리아가 오늘은 좌타자 바깥쪽으로 체인지업을 아주 잘 떨어뜨리더군요. 와이스만큼은 아니지만 공략이 쉽지 않아 보였습니다. 1회 박찬호가 2루타를 치고 나갔음에도 소크라테스, 김도영, 최형우가 전혀 해결해주지 못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우성이 바리아의 몸쪽 포심을 아주 제대로 받아 쳐서 좌중간을 깔끔하게 가르는 2루타로 선취점을 뽑아줬고, 이어서 서건창이 몸쪽 깔끔하게 붙은 바리아의 포심을 공략해서 1-2루간을 빠르게 빠져 나가는 역전 적시타를 쳤습니다. 서건창이 홈플레이트에 많이 붙는 데도 불구하고 몸쪽 포심을 정말 잘 공략했어요. 상대 배터리가 서건창 몸쪽 높은 코스가 약한 걸 알고 집요하게 파고 들었는데 말이죠.
6회에도 이민우가 존 근처로 굉장히 좋은 공들을 던졌는데(내가 아는 이민우가 아닌데?) 그걸 다 골라내며 볼넷으로 나가 만루 찬스를 이어줬죠. 솔직히 골랐다기보다는 방망이가 나가지 못한 거에 가깝지만, 어찌됐든 나쁜 공들을 다 골라내는 것이 올 시즌 서건창이 가진 가장 큰 장점입니다.
실제로 올해 서건창의 타율은 .283에 그쳐 전성기에 비하면 3~4푼이 낮아져 있지만, 출루율 .404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KIA 팀내에서는 김도영(.420), 이창진(.411) 다음으로 좋은 출루율입니다.
오늘 경기에 마침표를 찍은 것도 서건창이죠. 한승주가 서건창 상대로 몸쪽으로 떨어지는 커브만 주구장창 떨어졌는데, 4구째 커브를 기다렸다는 듯이 정확한 타이밍으로 어퍼 스윙으로 좋은 타구를 만들어, 외야 전진 수비에도 불구하고 2루 주자를 홈으로 불러 들이는 끝내기 안타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처음 서건창을 KIA가 영입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만 해도 제 반응은 '도대체 왜?' 였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로컬 선수를 좋아하는 편이라서 '허경민 빼고' 호남 출신 선수들을 수집하는 것에 거부 반응이 없고 오히려 좋아합니다. 그래서 팀에 맞지 않는 핏이라고 생각은 하지만, FA로 풀리는 광주 사나이 김원중이 탐나기도 하고요.(정해영의 군문제도 걸려 있고)
그럼에도 서건창은 영입 소식이 달갑지 않았던 게 써먹을 포지션이 없기 때문입니다. 서건창이 마지막으로 3할 타율을 기록한 건 5년 전인 2019년입니다. 2021년부터 2023년까지 서건창이 기록한 최고 타율은 .253에 불과했어요. 게다가 원래도 수비가 그렇게 뛰어나지 않은 선수(서건창이 수비가 좋은 선수였다면 프로 지명을 받았겠죠.)인데 부상 이후에 수비가 더 망가졌죠. 수비 범위도 문제고, 마지막으로 두 자릿수 도루를 한 게 2021년입니다. 지난해는 3도루 3실패에 불과했고요.
운동 능력을 완전히 상실한 30대 중후반의 내야수를 굳이 영입한다? 주루와 수비에 도움이 안 되는데? 게다가 KIA에는 고종욱이라는 비슷한 타입의 왼손 대타요원도 있는데? 굳이 왜 서건창을? 로컬 보이라는 장점 말곤 있는 게 하나도 없는데?
그런 서건창이 올 시즌 고향 팀에 복귀해 여전히 주루와 수비에는 도움이 안 되고 있지만, .283의 타율과 .404의 출루율(2016년 이후 가장 높은 출루율입니다.)을 기록하며, 팀에 큰 보탬이 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서건창의 한계는 대타라고 생각해요. 그런데 대타가 2할 후반의 타율과 4할대의 출루율을 기록한다? 당연히 팀에 도움이 되고도 남죠. 게다가 서건창 올해 연봉은 5,000만원에 불과합니다.
처음에 반대했던 서건창이 이렇게 팀에 도움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그리고 서건창 개인으로서도 올해가 길었던 선수 커리어에서 첫 우승 반지를 노릴 수 있는 시즌이죠. 히어로즈 유니폼을 입고 한국시리즈 우승을 눈앞에서 놓쳤던 서건창이 올해 꼭 우승이라는 한을 고향에서 풀어냈으면 좋겠습니다.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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