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요인
오늘 경기는 바빕신의 버림을 받았다가 다시 바빕신의 가호를 받은 경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8회 위즈덤의 1점 차이로 추격하는 투런 홈런 이후에 나온 4개의 안타와 3득점은 모두 빗맞은 타구였어요. 그런데 롯데 수비수들의 좁은 수비 범위(레이예스, 전민재)와 조화를 이루면서 역전타에 2점 차이로 벌리는 득점까지 연결이 됐죠.
처음에는 바빕신이 우릴 보고 화 내는 줄 알았습니다. 이순철 위원이 롯데 경기를 중계하면 승률이 높은 징크스가 통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8회초 실점 과정에서는 운이 없었죠.
조상우의 사구 이후에 박찬형의 타구가 중견수 앞에 뚝 떨어지면서 안타가 됐고, 레이예스의 방망이 안 쪽에 조상우의 투구가 맞았는데 방망이가 부러지면서 1-2루 간으로 타구가 절묘하게 흘러 갔습니다. 이렇게 역전타가 됐고, 최지민의 실투를 놓치지 않은 전준우의 2타점 2루타가 쐐기점이 될 거라고 봤어요.
마법 같은 8회말 상황
8회말 첫 타자 한준수의 타구는 빗맞아서 투수 땅볼이 됐는데, 최준용의 멋진 수비로 1루에서 아웃 당합니다. 아마, 다리가 빠른 주자였다면 살 수도 있었겠죠. 그리고 이창진이 오랜만에 최준용의 잘 떨어진 변화구를 방망이를 던져가며 뱃 컨트롤로 안타를 만들었고, 박찬호의 타구는 빗맞으면서 2루수 정면. 2사 1루 상황이 됩니다.
그리고 위즈덤의 타석, 득점권 상황이 아니니까 혹시? 싶었는데 최준용의 빠른 공을 공략해서 좌측 담장을 훌쩍 넘겼죠. 위즈덤의 홈런은 살짝 넘어가는 게 없습니다. 맞는 순간 그냥 홈런이에요.
위즈덤은 하이 패스트볼에 약한 경향이 있습니다. 오히려 몸쪽 떨어지는 변화구를 받아 쳐서 좋은 타구를 만들어 내죠. 수요일 경기에서 김광현 상대로 쳤던 홈런이 대표적입니다. 실제로 위즈덤의 포심 컨택률은 75.3%에 불과합니다. 하이 패스트볼에 결과가 전체적으로 안 좋기도 하고요.
그래서 롯데 배터리에서는 하이 패스트볼로 승부를 보려고 한 것 같습니다. 그런데 똑같은 하이 패스트볼을 4개 연속 던지면, 아무리 위즈덤이 하이 패스트볼에 약하다고 해도 타이밍을 맞춰 내죠. 게다가 최준용이 홈런 맞은 포심의 위치는 위즈덤이 약한 코스의 높은 존도 아니었고, 어중간한 높이로 들어갔습니다.
위즈덤의 홈런 이후 타구들은 정말 마법과 같았죠. 최형우가 친 타구는 그냥 평범한 좌익수 플라이입니다. 그런데 레이예스의 느린 발 덕분에 안타가 됐다고 생각해요. 전, 이 타구를 왜 못 잡았을까 이해가 안 갑니다. 타구가 느렸고, 높이 떴어요. 못 잡을 공이 아니었죠.
이어서 오선우의 투수 스치는 내야안타가 나왔는데, 이 타구는 코스가 까다롭긴 했어도, 역시 유격수의 수비 범위 문제와 정확한 포구와 송구로 이어지는 과정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요. 애초에 2루수가 잡았어야 할 타구에 가깝기도 했고요.(다만, 2루수가 잡았으면 내야 안타 가능성이 높아짐)
이어서 최원준의 2루수 키를 살짝 넘기는 안타가 나왔는데 타이밍 자체는 좋았지만, 배트 안 쪽에 맞았습니다. 진정한 운빨. 여기에 김호령이 타석에 들어섰는데, 김강현의 투구가 ABS존을 정말 살짝살짝 벗어났죠. 이걸 골라 낸 김호령의 집중력도 좋았고요.
진정한 바빕신은 김태군 때 강림하죠. 2볼 1스트라이크 상황에서 완전히 빠지는 변화구였는데, 빠른 공 타이밍만 보고 방망이를 휘둘렀다가 카운트에 몰려 불리한 상황에 몰렸는데, 김강현의 슬라이더가 존에서 떨어지지 않고 존으로 들어오면서 김태군의 방망이에 컨택이 됩니다.
컨택 되는 순간, 아 땅볼 아웃으로 공수교대구나 싶었는데 3루수와 유격수 사이를 정말 절묘하게 빠져 나가는 2타점 적시타가 됐습니다. 앞선 타석에서 김태군의 정말 잘 맞은 타구가 3루수 박승욱의 점프 캐치에 빨려 들어갔는데, 정작 빗맞은 타구가 안타가 되는 걸 보면, 야구는 확실히 변수가 많습니다.
상대팀의 아쉬운 수비 범위와 운이 따랐다고 하나 타자들의 노력을 폄하할 필요는 없죠. 어찌됐든 최준용의 공들을 '인플레이'시켰으니까요. 삼진을 당하지 않고 인플레이 시키니까 변수가 발생하는 겁니다.
게다가 최준용은 성영탁처럼 맞춰 잡는 투수도 아니고, 삼진을 잡는 투수에요. 최준용의 올 시즌 9이닝 당 탈삼진은 10.8개나 됩니다. 삼진율은 29.1%에 달하고요. 하지만 오늘 경기에서 KIA 타자들은 최준용을 상대로 단 1개의 삼진도 당하지 않았습니다. 3연투의 영향도 있었겠지만, 타자들의 집중력 칭찬을 하지 않을 수 없어요.
충분히 쉰 네일은 마구를 던진다.
오늘 경기를 놓쳤으면 정말 치명적인 패배였을 겁니다. 선발 매치업에서 우위가 확실한 경기였고, 승리계투조들이 2연투를 하면서 내일 경기는 나오지 못하는 상황이니까요. 그런데 전상현과 조상우가 흔들리면서 많은 실점을 했음에도 불구하고(다만, 조상우는 운이 없었음) 기어코 1이닝에 5득점을 뽑아내며 경기를 뒤집으면서 팀 분위기를 끌어 올렸습니다.
6회까지는 네일의 원맨쇼였죠. 10일을 쉬고 마운드에 등판해서 그런가 올 시즌 들어 스위퍼가 가장 잘 휘는 경기였습니다. 롯데 타선의 정확성 때문에 투구수가 비교적 많았지, 컨택 능력이 떨어지는 팀이 상대였으면, 오늘 완봉승도 가능했을 겁니다.
네일의 가장 큰 단점이 선발 경험이 많지 않다는 점이죠. 지난해 메이저리그 오퍼를 못 받은 이유도 '부족한 선발 경험' '부족한 스태미너' '단조로운 구종' 이렇게 3가지가 크게 작용했을 거라고 봅니다. 폰세와는 상황이 달라요. 네일 등판 경기에는 스카우트가 오지도 않습니다. 전, 올 시즌 끝나고도 네일은 메이저리그 오퍼는 못 받을 거라고 봐요. NPB는 몰라도.
하지만 KBO에서는 통하고도 남죠. 오늘 푹 쉬고 등판하니까 스위퍼가 미친 각을 보여줬는데, 부진했던 6월의 모습에서 벗어나 휴식을 취하면서 공이 더 날카로워진 느낌입니다.
전상현과 조상우가 많은 실점을 했는데, 그동안 실점을 안 했으니까 실점 할 수도 있죠. 전상현만 오늘 하이 존의 커맨드가 좋지 못 했고, 조상우는 그냥 운이 없었으니, 실제로 부진한 건 전상현 뿐입니다. 최지민도 포수는 몸쪽에 앉았는데 빠른 공이 바깥쪽으로 가면서 전준우가 좋아하는 코스로 공이 들어갔죠. 실투를 줄여야 합니다.
전상현과 조상우가 흔들리고 최지민이 결정타를 맞은 상황. 추가 실점도 할 수 있었는데 기대하지 않았던 성영탁이 남은 2개의 아웃 카운트를 정말 깔끔하게 잡았죠. 홈플레이트에서 지저분한 무브먼트와 커맨드 능력으로 상대 타선을 아주 잘 요리했습니다. 여기서 구위만 더 끌어 올려서 삼진 능력을 향상시키면 승리계투조 역할도 충분히 하고도 남습니다.
그리고 임기영이 오랜만에 올라 와서 행운의 승리를 거뒀죠. 다만, 투구 내용은 크게 달라진 점을 찾지 못 했습니다. 체인지업이 날카롭게 떨어져야 하는데, 여전히 밋밋하네요. 임기영만 2023년 모습으로 돌아오면 불펜 걱정은 덜할텐데, 참 아쉽습니다.
김태군, 아직도 25억원이 아깝습니까?
소신발언하자면, 전 김태군 25억 원이 왜 문제인지 모르겠습니다. 리그에 공격과 수비를 모두 갖춘 포수는 굉장히 얻기 힘듭니다. KIA 역사를 따져보면, 공수 균형을 갖춘 포수는 2022년 체험판으로 맛본 박동원이 유일했습니다. 김상훈, 차일목, 이홍구, 백용환, 한승택, 김민식 등 공수 모두 불균형한 선수들 뿐이었고 수비라도 멀쩡하게 하는 포수가 드물었죠.
박동원의 충격적인 이적(장정석 이...)으로 KIA는 포수에 또 구멍이 생겼고, 그래서 김도영의 성장으로 자리가 없어진 류지혁을 삼성에 보내고 경험 많은 김태군을 트레이드로 영입했습니다. 전, 아주 좋은 트레이드였고, KIA의 가려운 곳을 제대로 긁은 트레이드라고 생각해요. 류지혁이 있었으면 지금 2루수로 뛰면서 도움이 됐겠지만, 포수는 수비력이 부족한 한준수가 계속 하면서 불만이 많았을 겁니다.
김태군도 사실 냉정하게 따져보면 공수균형이 좋은 포수는 아닙니다. 공격력은 문제가 많죠. 제가 어제 리뷰에서 언급한 고종욱과 김태군은 비슷한 면이 있는데, 김태군은 타율 낮은 고종욱 입니다. 컨택은 좋은데, 파워가 부족해서 잘 맞은 타구도 외야수 정면으로 가거나, 느린 발과 조합되면서 병살타를 많이 치죠.
놀라운 점은 김태군의 컨택능력이죠. 올해 김태군의 컨택률은 무려 90% 입니다. 올해만 그런 게 아니에요. 작년에도 85.3%였고, 그 전 해에도 90.3%였습니다. 김태군 커리어 하이였던 2022년에는 .298의 타율과 105.7의 WRC+를 기록했는데 이해에 컨택률이 87.6%였습니다.
KIA 팀내에 김태군보다 컨택률이 높은 선수는 올해 단 1명도 없습니다.(50% 타석 소화 기준) 2위가 박찬호로 김태군보다 4.4%p나 낮습니다. 물론, 전체 타석으로 변환하면 딱 1명 있습니다. 모두가 예상하시는 그 이름. 김선빈입니다. 컨택률 무려 93.5%.
김태군의 이 높은 컨택률이 바빕신의 가호를 받으면 그때 커리어 하이를 쓰는 거죠. 실제로 2022년 김태군의 BABIP는 무려 .343이었습니다. 올해는 .246으로 운이 안 따르고 있는 시즌이고요.
김태군도 30대 중반의 선수인데 갑자기 타격에서 스텝업 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특히, 파워는 떨어지면 떨어졌지, 더 늘진 않죠. 하지만 '선구안' 만큼은 성장시킬 수 있죠. 실제로 올 시즌 현재 김태군의 순출루율은 .090으로 커리어 평균(.061)보다 3푼 가까이 높습니다. 2019년에 .175를 찍긴 했는데 이 때는 18경기 출장에 그쳤으니 스몰 샘플이죠.
여전히 낮은 타율(.239)에 불과하지만 김태군은 올해 개안(?)하면서 현재까지 1할에 가까운 순출루율을 기록하고 있죠. 스텝업이라고 한다면 전 이 부분이 스텝업이라고 생각합니다. 나쁜 공을 골라 내기 시작한 게 김태군의 올 시즌 발전이라고 생각해요. 운만 조금 따라서 타율 .250만 되어도 타격 생산성이 확 뛰어 오를 겁니다.
번트도 리그에서 가장 잘 대고, 블로킹도 좋고, 주자 저지 능력이 조금 아쉽지만, 마운드에 있는 투수들과 호흡도 좋고, 수비력이 조금 아쉬운 한준수와 함께 이닝 분배를 정말 잘 해주고 있죠. 오늘도 결정적인 2타점 결승타도 있지만, 앞선 두 타석에서도 좋은 타구질을 보이고 있습니다. 고참으로 팀 기강을 잡는 모습도 마냥 부정적으로 볼 필요도 없고요.
그래서 소신발언 합니다. 김태군 4년 25억원은 절대 비싼 금액이 아닙니다.
내일은 김도현과 박세웅의 맞대결인데, 박세웅이 최근 안 좋다고 해도 슬라이더가 긁히면 KIA 타자들은 못 칩니다. 결국, 박세웅의 슬라이더가 얼마나 좋은 쪽에서 떨어지느냐가 KIA 타선이 공략할 수 있을 지 판가름하는 기준이 될 것 같아요.
김도현도 최근 투구 내용이 안 좋았는데, 정확성이 뛰어난 롯데 타선을 상대로 좋은 피칭을 해줄 수 있을 지 걱정이에요. 김도현이 구위로 상대를 윽박지르는 유형이 아니고, 다양한 구종과 커맨드 능력으로 범타를 유도하는 투구를 하는 선수이기 때문에 내일도 바빕신이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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