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영철, 무엇이 달라졌나
선발 매치업으로는 불리하기 짝이 없었던 주말 3연전, 게다가 지난 시즌 4승 12패의 열세였던 두산과의 상대라 어려운 시리즈가 예상됐는데, 어제 윌 크로우 털린 경기만 내주고(가장 해볼만한 매치업이었는데;) 오늘 윤영철이 두산 타선을 5이닝 동안 무실점으로 막으면서 승리할 수 있었습니다.
곽빈은 예상대로 무시무시한 공을 던지면서 KIA 타선을 압도하고 있었는데, 두산 입장에서는 좌익수 김재환의 미숙한 수비로 인해서 승리를 내줬다고 할 수밖에 없네요. 5회에 3득점을 냈는데, 서건창의 좌익수 앞 뽀록 안타야, 좌익수가 처리하기 어려웠지만, 최원준의 적시타 이후 1사 1, 2루 상황에서 나온 박찬호의 2루타는 100% 김재환의 미스입니다. 박찬호조차 때리자마자 고개를 숙이고 방망이를 집어 던졌는데 김재환이 타구 판단을 못 해서 뒤로 스타트를 끊었고 이게 2타점이 됐죠. 이 장면이, 오늘 경기 승부를 가른 결정적 한 장면이 되었습니다.
두산 입장에서도 시즌 초반 부활한 김재환을 안 쓸 수도 없는 노릇인데, 제가 두산 감독이면 김재환은 지명타자로 쓸 것 같네요. 오늘 라인업을 보니 지명타자를 김민혁이 치고 있던대, 어째서 김재환을 수비로 내세우는 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드넓은 잠실 외야 생각하면 좌익수로 김재환을 쓰는 건 수비에서 잃는 게 너무 많죠. 오늘 두산에서 좌익수에 평범한 수비력을 갖춘 선수를 세웠으면(누가 있을 지 모르겠지만) KIA는 경기 잡기 어려웠을 겁니다. 곽빈 공이 너무 좋았거든요.
KIA 득점이야 운이 따라줘서 나왔지만, 오늘처럼 상대 투수의 공이 타선을 압도할 정도로 좋으면 이기는 방법은 우리팀 투수도 그만큼의 공을 던져주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오늘 윤영철이 이런 모습을 보여줬고요. 가장, 고무적인 부분은 올해 새로 장착한 '커터'를 벌써 자기 무기로 만든 겁니다. 물론, 완벽히 커터를 익혔는 지는 경기를 거듭하면서 더 지켜봐야겠지만, 작년까지 직접 윤영철을 지도한 서재응 해설이 '한 구종을 익히는 데 몇 년이 걸리는 데 커터를 저렇게 자기 것으로 만드는 것은 보통 재능이 아니다'라고 할 정도면, 확실히 재능은 재능입니다.
윤영철은, 구위가 약하기 때문에 삼진을 많이 잡는 투수가 아닙니다. 지난 시즌 윤영철의 9이닝 당 탈삼진 숫자는 5.43개에 불과했습니다. 구석구석 찌르는 제구력과 타자들에게 낯선 투구 동작으로 인해서 실점을 최소화하는 유형이죠. 그런데 오늘 윤영철은 지난 2경기에서 무려 19개의 사사구(KIA 투수들도 문제지만)를 골라 낼 정도로 타격감이 좋은 두산 타선을 상대로 이닝 당 1개 꼴인 5개의 탈삼진을 잡아냈습니다. 정타도 거의 없었고요.
투구를 보면 그냥 버리는 공이 없어요. 가운데로 몰리는 공은 더욱 없고, 포심,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터, 커브 등을 던지면서 홈플레이트에서 많은 변화를 줍니다. 이러니 상대 타자들은 쉽게 공략이 어렵죠. 특히, 인상적인 삼진 장면이 여러 개의 공을 던지게 하면서 괴롭히던 박계범을 바깥쪽 체인지업으로 헛스윙 삼진 잡은 장면입니다. 실전에서 쓸 수 있는 구종이 많으니까 이렇게 결정적인 상황에서 삼진을 잡을 수 있는 무기가 있는 겁니다.
한 가지 불안한 점이 있다면, ABS가 윤영철에게는 '손해'가 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이네요. ABS는 하이존을 잘 공략하는 파워 피처에서 유리해 보입니다.(의리야 너 말야 너) 윤영철은 낮은 존에 포심을 박아 넣고 체인지업, 슬라이더를 낮은 존에서 살짝 떨구는 형식으로 피치 디자인을 짜고 있는데, 오늘 ABS 낮은 존에 들어 온 2개의 공을 볼로 판정하더군요. 심판 존이었으면 손이 올라갔을 확률이 매우 컸습니다.
ABS, 큰 불안은 없지만 공 한 개 정도는 높낮이 조절을 해야 할 것 같아요. 높은 존에 너무 후하고, 낮은 존에 너무 팍팍한 느낌입니다. 이러면, 사이드암 / 언더핸드 투수들은 멸종입니다. 특히, 체인지업이 주무기인 고영표, 임기영, 이재학 같은 투수들은 1군 마운드에서 버텨낼 재간이 없죠. KBO에서야 규정집대로 적용한 거라고 하지만, 시스템적으로 조정이 가능하다면 공 1개 정도는 조절을 해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매우 심각해 보이는 김도영의 모습
그동안 타격감이 좋지 못했던 김선빈이 모든 타석에서 위협적인 타구를 날리는 등 안타 3개를 쳤고, 지난 주까지 딱히 임팩트 있는 타격을 못 보인 서건창도 안타 3개를 쳤습니다. 1개는 뽀록타였지만, 첫 타석에 곽빈을 상대로 날카로운 타구를 날렸죠. 이 타구가 양석환의 호수비에 잡혔는데 잡히지 않았더라면 1루 주자가 홈에 들어올 수 있었던 2루타였습니다. 오늘 서건창 선발 1루수를 보고 이게 맞나 싶었는데, 우려를 씻고 매우 좋은 타격을 보여줬습니다.
문제는 김도영이네요. 타석에서 생각이 너무 많습니다. 곽빈의 빠른 공에도 타이밍이 늦고 커브에도 타이밍이 안 맞습니다. 커브 3개 던졌는데 루킹 3구 삼진 당한 장면이 대표적입니다. 오늘만 그런 게 아니라 타석에서 무슨 공을 노리고 들어오는 지 모르겠네요. 시즌 초에 수비가 안 되면서, 타석에서도 자신감을 잃은 모습인데, 당분간은 2번 타선이 아니라 최원준과 교체를 하는 게 좋아 보입니다. 물론, 이범호 감독 성향상 라인업을 그대로 밀고 갈 가능성이 커 보이지만, 타석에서 자신감을 완전히 잃었는데 부담 적은 9번에 두는 게 나쁜 조치라고 생각하진 않네요.
그리고 오늘 재밌는 장면이 연출이 됐죠. 7대0으로 KIA가 이기고 있을 때, 라모스가 1루에 출루한 이후에 KIA에서는 1루를 비워뒀는데 2루로 도루를 시도했습니다. 이 장면이 나오자마자 서재응 해설이 '불문율을 어긴거다'라고 해설을 했는데, 지고 있는 팀에서 도루를 하는 것도 문제인 지는 처음 알았네요. 여기저기 찾아보니 선수협에서 합의를 한 상황이라고 하던대, 흥미로운 부분이었습니다. 지난 시즌까지 현장에 있었던 서재응 해설이 한 말이니까 맞는 말이겠죠.
아무튼, 라모스도 두산 벤치에서 가르침을 받는 모습이 노출됐고, 다음 이닝에서 박민이 바로 2루 도루를 시도한 걸 보면 불문율에 대한 양 팀간의 합의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불문율을 별로라고 생각하는 분들 의견도 존중하지만, 승부를 두고 겨루는 상황이라 상대방을 자극할 필요는 없죠. 사실, 지고 있는 상황은 괜찮다고 보는데, 8대0으로 이기고 있는데 이기는 팀에서 도루하면 저 같아도 개 열받을 것 같긴 합니다.ㅋㅋ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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