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배의 요인
어제 청주 경기가 취소되었기 때문에 경기를 내줬습니다. 어제 등판 예정이었던 하트가 왜 오늘 올라오는지... ㅏ....
다만 상대 투수가 잘 던져도, 우리팀 선수도 잘 던지면 이길 수 있는 게 야구죠. 하지만 불행히도, 라우어는 그런 모습을 보이지 못 했습니다. 3회까지는 하트와 라우어가 비등한 모습을 보였고, 라우어가 오히려 삼진을 더 많이 잡아냈지만, 4회부터 한 가지 이유 때문에 두 투수의 결과에서 큰 차이가 났죠.
그 이유는 '구종'... 그 중에서도 '체인지업' 때문입니다.
반대 손 타자를 잡는 구종의 필요성
야구란 스포츠는 매커니즘상 반대 손 투수, 반대 손 타자에게 더 강할 수밖에 없는 종목입니다. 그럴 수밖에 없죠. 같은 손 투수가 던지는 공은 같은 손 타자의 시야에서 더 멀어지니까요. 야구만큼 '던지는 손' '치는 손'이 더 중요한 스포츠는 제가 알기론 없을 것 같습니다.
특히 '슬라이더'는 같은 손으로 치는 타자에게 정말 유효한 구종입니다. 빠르게 존을 벗어나면서 타자의 시야에서 멀어지니까요. 이 슬라이더를 쓰리쿼터로 던지면 같은 손 타자에게 더 효과적이죠. 랜디 존슨이 대표적입니다. 물론, 랜디 존슨은 우타자에게도 잘 던지긴 했지만, 좌타자에게 랜디 존슨은 재양 그 자체입니다.
반대로 '체인지업'은 반대 손으로 치는 타자에게 유효한 구종이죠. 함덕주가 대표적입니다. 개인적으로 체인지업을 던지는 왼손 투수 중 가장 사기적인 체인지업을 던진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함덕주 상대로는 우타자가 대타로 나올 게 아니라 좌타자가 대타로 나와야 합니다. 함덕주 상대로 우타 대타 내면 '나는 바보입니다.'라고 선언하는 꼴이죠. (2023시즌 좌타 피OPS .423)
선발 투수 중에서는 역시 류현진과 양현종을 꼽을 수 있죠. 류현진 올해 안 좋다 해도, 우타 상대 피OPS(.658)가 좌타 상대할 때 피OPS(.730)보다 훨씬 좋습니다. 거의 매 시즌 이런 기록이었고요. 양현종이 올해 잘 하고 있는 이유도 망가졌던 체인지업이 올해 다시 돌아왔기 때문이고요.
하트에게 있는 것이 라우어에겐 없다.
올 시즌 현재 리그 최고의 투수는 누가 뭐라고 해도 NC의 하트 입니다. 하트가 잘 던지는 이유는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모두 다 잘 던지기 때문입니다. 좌타자를 상대할 때는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쓰고, 우타자를 상대할 때는 체인지업을 결정구로 쓰죠. 그래서 좌타에게 더 강하지만(피OPS .475), 우타 상대할 때도 좌타 못지 않게 좋은 성적(피OPS .607)을 보여주고 있어요.
참고로 하트의 구종별 구사율은 투심 17%, 포심 30%, 슬라이더 24%, 체인지업 16%입니다. 그 어떤 구종도 치우치지 않게 고루고루 잘 섞고 있죠. 그냥 완벽한 선발투수의 모습 그 자체입니다. 국내 선발 투수 중에서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을 모두 잘 던지는 투수? 현재로서는 원태인 정도만 생각나고 과거에는 윤석민이 대표적이었죠. 고속 슬라이더가 더 사기이긴 했는데 체인지업 잘 들어갈 때 좌타자들이 아무 것도 못했습니다.
서두가 길었는데, 라우어의 문제가 '체인지업'을 못 던진다는 점. 반대 손 타자를 상대할 결정구가 없다는 점입니다. 알드레드도 비슷한 문제인데, 알드레드와 라우어의 차이라면, 알드레드는 라우어보다 슬라이더가 더 위력적이었지만, 포심 구위는 라우어만 못 했고, 결정적으로 알드레드는 불펜으로 오래 뛰어서 스태미너가 좋지 못 했죠.
라우어의 경우 포심은 확실히 위력적입니다. 포심 구사율이 49%로 매우 높은 편인데, 이 포심의 피안타율이 .214에 불과합니다. 오늘 경기도 NC 타선을 처음 한 바퀴 상대할 때는 포심으로 엄청나게 많은 삼진을 잡아 냈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선호하는 투수 앵글이 창원NC파크인데 투수가 던지는 볼 무브먼트가 가장 잘 보이는 각도로 투수를 잡아줍니다. 그래서 라우어의 포심이 좌타자 기준으로 몸쪽으로 살짝 휘어져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죠. 박민우가 첫 타석에서 당한 삼진이 바로 이 포심입니다. 몸쪽에서 살짝 파고 드니, 리그에서 가장 정확성이 뛰어난 박민우의 방망이가 '포심'에 헛스윙을 돌렸죠.
문제는 라우어의 결정구가 '커터'라는 점입니다. 3경기를 뛴 현재 라우어의 커터 피안타율은 무려 .500에 피OPS가 1.420입니다. 메이저리그에서 주무기가 커터였는데, 이게 KBO에서는 배팅볼이 되고 있죠.
라우어의 커터는 어떤 문제가 있을까
커터라는 구종 자체를 문제 삼고 싶진 않습니다. 적어도 커터 커맨드만 잘 이루어지면 많은 빗맞은 타구를 양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우타자에게 던지는 커터가 커맨드가 잘 이루어져도 땅볼이 아니라 파울이 나오고 있고, 그렇게 커터 남발하다가 벨트 라인으로 커터가 들어가면 장타로 연결된다는 점이죠.
이를 알 수 있는 대표적인 타석이 4회 권희동의 타석이었습니다. 참고로 권희동 같은 유형의 타자가 가장 갑갑합니다. 히팅 포인트를 최대한 뒤로 둬서 투구 수 잡아 먹는 괴물이 되어 버리죠. 실제로 권희동이 현재 리그에서 타석당 투구 수가 가장 많은 선수입니다. 아래는 올 시즌 타석당 투구 수 TOP 10 순위.
그냥 1등도 아니고 압도적으로 1등입니다. 그래서 전 권희동이 초구 휘둘러서 안타 치면 오히려 좋아합니다. "그래 5~6개씩 공 보는 것보단 안타 치더라도 초구 쳐서 나가라"는 말이 권희동을 볼 때마다 듭니다. 아 갑자기 빡치네...
오늘 라우어가 가장 고전한 타석이 서호철과 권희동 타석이었는데 두 타자 상대할 때 구종과 투구 위치가 아래와 같아요.
서호철 타석에서 5구와 7구 커터가 파울이 아니라 인플레이 되면서 내야 땅볼이 되야 하는데, 커트가 되면서 라우어가 어려워집니다. 심지어 커터를 보완해줘야 할 커브마저도 8구째에 파울이 되면서 승부를 결정짓지 못했죠. 결국 포심이 가운데 몰리면서 9구 승부 끝에 안타로 나갑니다.
별의 커비처럼 투구 수 잡아 먹는 악마 권희동이 더 하죠.
서호철과 권희동 타석에서 들어간 공들의 위치를 보면 어딘가 휑하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바로 '바깥쪽 낮은 코스'입니다. 이 쪽으로 들어가는 구종이 하나도 없었어요. 차라리 커터를 몸쪽으로 붙일 게 아니라 백도어로 바깥쪽으로 넣는 게 어떨까 싶은데, 그런 제구가 될 리가 없죠.
결국, 우타자를 잡으려면 바깥쪽 낮게 떨어지는 체인지업이 필요합니다. 아니, 라우어의 포심 구위면 낮게 떨어질 필요도 없어요. 그냥 구속 차이만 확실하게 나면서 우타자 바깥쪽으로 살짝 달아나는 움직임만 보여줘도 됩니다. 지금 이걸 하는 투수가 김기훈입니다. 포심이 라우어만 못하고 체인지업도 어중간한 높이에서 떨어지는 경우가 있지만, 정확한 타격이 안 이루어지는 이유가 체인지업이라는 존재죠.
라우어의 잘 제구된 커터가 계속 파울이 나오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봅니다. 첫 번째 이유는 커터의 무브먼트와 커맨드가 MLB 선발 로테이션을 돌 때의 그 위력이 아니라는 이유이고, 두 번째 이유는 그냥 커터라는 구종 자체가 카운트가 몰리면 히팅 포인트를 뒤에 두고 컨택 위주의 타격을 하는 KBO 우타자들에겐 좋은 먹잇거리가 된다는 점이겠죠. 그냥 리그 성향상 던지면 안 되는 구종인 겁니다. 권희동과 서호철이 대표적으로 히팅 포인트를 뒤에 두고 타격하는 선수들이고요. 그러니 커터로 이 둘을 못 잡죠.
그렇다고 라우어가 체인지업을 아예 안 던지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도 체인지업을 7.9%의 비율, 시즌 중 가장 높은 비율로 구사했어요. 그리고 그 결과는?
4회 데이비슨 유격수 땅볼 아웃, 4회 김형준 유격수 인필드 플라이 아웃, 5회 데이비슨 중견수 플라이 아웃(심지어 실투였음)
결정적인 상황에서 던진 체인지업이 모두 좋은 결과로 연결되었습니다. 왜냐? 라우어의 포심이 위력적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라우어의 체인지업은 왜 자주 안 던지는 지 알 수 있을 정도로 커맨드가 별로입니다. 김형준에게 던진 체인지업은 높게 들어가는 실투였고, 데이비슨도 마찬가지였어요. 라우어가 왜 체인지업을 자신있게 안 던지는 지 이유는 알겠습니다. 이런 체인지업은 홈런 치기 딱 좋게 밀려 들어갈 가능성이 크거든요.
그리고 1회부터 3회까지 거의 던지지 않던 커터를 4회에 엄청 남발하기 시작했는데 이것도 이해가 잘 안 갑니다. 서재응 해설 설명이 그럴 듯 했는데, 김태군이 라우어에게 '야, 너 커터 좋아하지? 그럼 한 번 던져봐 결과가 어떤지' 라는 느낌이 들었어요. 아직 여유있는 1위를 달리고 있으니 라우어에게 실전 경험을 쌓게 해줬다고 할까나... 물론, 뇌피셜에 불과하지만요.
정리하자면, 라우어의 포심 구위나 커맨드는 리그 평균 이상인 것은 맞습니다만, 그렇다고 압도적인 수준은 아니고(그러니 두 번째 타순 돌 때 포심 구사비율을 줄였죠) 우타 상대 결정구로 쓸 수 있는 변화구가 없다는 것이 매우 치명적인 약점이라고 생각이 듭니다.
서재응 해설 말대로 우타 상대 피칭 디자인을 바꿔야 할 것 같은데, 이걸 바꾼다고 해결이 될 지 모르겠고, 개인적으로 라우어에게 기대한 구종이 '커터'가 아니라 '커브'인데, 이 커브마저도 상대 타자들이 어렵지 않게 컨택을 해 냅니다.
라우어의 커터가 계속 커트가 되는 이유가 뭘까요? 운이 정말 안 따르거나 정말 움직임이 구려서이거나 커맨드가 별로거나, 이유는 여러 개 찾을 수 있겠지만. 체인지업을 못 던지는 왼손 투수라는 점 때문에 작년 파노니의 복사판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입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정상적이라면 KBO에 올 급이 아닌 라우어가 앞으로 어떤 피칭을 해 줄 수 있을 지. 커터를 버리든지, 커터를 쓰고 싶다면 우타자 바깥쪽 백도어로 넣어 보던지, 아니면 체인지업을 더 적극적으로 써보던지, 스플리터나 다른 구종을 시험해 보던지, 다양한 시도를 좀 해봤으면 좋겠습니다. 지금의 커터로는 히팅 포인트를 뒤에 두고 타격하는 우타자를 절대 잡을 수가 없어요.
경기가 너무 일방적으로 끝나서 선수 단평으로 글 마무리 합니다.
선수 단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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