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의 투수 운용은 잘못되지 않았다.
오늘 최원태의 '그 날'이 강림했고, KIA 타선이 최원태 상대로 상성이 정말 안좋기에(빨간 유니폼을 보면 집중력이 생기는 지ㄷㄷ) 7회까지 정말 아무 것도 못 했습니다. 잘 맞은 타구도 거의 없었고, LG처럼 운이 따르는 타구도 없었죠. 솔직히 김현수의 평범한 땅볼이 잠실 땅신의 힘으로(그 순간 네일 경기에서 박해민 평범한 땅볼을 안타로 만들어 버린 지난 잠실 경기가 자동재생됨) 2점 째를 줬을 때는 오늘 경기 졌구나 싶었어요.
최원태에게 완봉도 당하겠구나 싶었는데 최원태는 7회까지 마치고 마운드를 내려왔습니다. 사실, 전 LG의 투수 운용이 잘못됐다고 생각하진 않습니다. 최원태가 설령 8회까지 올라왔어도, 9회까지 투구는 힘들었을 거라고 봤고. 리그 수위급 마무리 투수인 유영찬을 못 믿을 수는 없죠. 제 아무리 KIA전에 블론이 많았다고 해도 팀 마무리 투수는 그 상황에서는 당연히 올라와야 합니다. 그리고 그걸 극복하는 것도 마무리 투수의 역할이고요.
그리고 KIA 타선이 아무리 유영찬 상대로 강해도, 8월 들어 리그 최악의 타선이었고, 오늘 최원태 상대로도 의미 있는 타구 하나 없었습니다. 2점 차이에 유영찬을 올리는 건 당연한 용병술이었죠. 다만, 유영찬이 오늘 중요한 경기라고 지나치게 긴장했는 지 제구가 좋지 못 했습니다. 대표적인 투구가 소크라테스 타석에서 나온 포심 폭투였죠. 그때도 김선우 위원이 긴장하고 있는 것 같다고 했으니...
나성범에게 몸쪽 낮은 코스는 실투다.
9회초 마지막 공격을 복기해보면, 일단 최원준이 정말 유영찬의 공을 잘 골랐습니다. 마지막 하이 패스트볼이 조금만 더 아래 쪽이었다면, 최원준 컨디션이 아무리 좋아도 헛스윙이 나왔을 텐데 풀카운트에서 던진 유영찬의 포심이 너무 높게 떠 버렸죠. 사실, 이것도 긴장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해요. 만원 관중 앞에서 1위 팀을 잡을 수 있는 기회라는 압박감을 첫 풀타임 마무리 투수가 이겨내기란 정말 쉽지가 않으니까요.
유영찬의 가장 큰 실투는 김도영을 상대했을 때 나왔습니다. 김도영은 '포심' 하나만 놓고 타석에 들어서서 2구째 슬라이더에 헛스윙을 하고, 역시 똑같은 슬라이더를 제대로 컨택하지 못 하고 파울에 그쳤죠. 다만, 이때 타이밍이 얼추 맞았기에 박동원은 슬라이더가 아닌 하이 패스트볼로 김도영의 시각을 흐트러뜨렸습니다.
그리고 5구째 또 포심을 던졌는데 이때는 포심이 아니라 슬라이더를 던졌어야죠. 4구째 포심에 한 번 타이밍이 리셋되었고, 유영찬의 슬라이더는 좌타자에게는 효율적이지 못 하지만(그래서 유영찬의 좌타 상대 기록이 안 좋죠. 우타 피OPS .604 / 좌타 피OPS .726) 우타자에게 유영찬의 슬라이더는 리그에서 삼진을 가장 많이 잡는 마무리 투수가 된 비결입니다. 슬라이더의 컨택률이 54%에 불과하거든요.
그런데 왜 바깥쪽 낮은 포심을 요구했을까요. 아마, 김도영이 슬라이더를 생각하고 스윙을 참을 거라고 보고, 포심 루킹 삼진을 시도한 것 같은데, 좀 무모한 볼배합이었고, 이때 유영찬이 던진 포심은 한가운데 딱 치기 좋은 높이로 들어갔습니다. 잠실 구장이 아니라 좌중간이 짧은 라팍, 문학, 엔팍이었다면 동점 2점 홈런이 가능했을 타구가 나왔죠. 잠실 구장이었기에 2루타에 그쳤습니다.
소크라테스 타석에서 포심 폭투라는 드문 상황이 나왔고, 이번 달 들어 퍼올리기에 맛 들린(이럴거면 그냥 1번으로 나와서 볼이나 고르길) 소크라테스이기에 최소한 플라이라도 나오나 싶었는데 유영찬의 멀리 달아나는 포크볼을 굳이 억지로 잡아 당겨서 땅볼로 득점에 실패했습니다. 이때 조재영 주루 코치의 판단도 좋았어요. 전, 김도영의 발이 빠르기에 모험을 걸어보지 않을까 싶었는데 이 상황에서는 자제심을 발휘하더군요. 아웃 카운트가 1개 더 있었기에 가능한 판단이었죠.
그리고 타석에 들어 선 나성범. 전 유영찬이 아무리 좌타자에게 약해도, 하이 패스트볼만 잘 던지고, 바깥쪽 낮게 포크볼 하나 떨구면 나성범 삼진 잡을 수 있다고 봤습니다. 그런데 3구째 던진 포심이 나성범의 몸쪽 낮게 잘 들어갔죠. 그리고 나성범의 방망이는 빠르게 돌아갔고, 극적인 역전 투런 홈런이 되었습니다.
김선우 해설은 실투가 아니라고 했지만, 이건 나성범 한정해서는 실투입니다. 아래는 나성범의 올 시즌 핫 콜드 존입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몸쪽 낮은 코스의 OPS가 1.000 입니다. 특히, 2.167이라고 찍혀 있는 저 코스 보세요. 나성범은 몸쪽 낮은 코스는 정말 기가 막히게 장타로 연결하는 타자입니다. 그래서 전 유영찬이 홈런 맞은 코스는 일반적인 타자에게는 '실투'가 아니지만, 나성범에게는 '실투'라고 생각합니다. 나성범 상대할 때는 포심은 높게 던져야 합니다.
그렇다고 나성범의 오늘 투런포를 폄하할 이유는 없습니다. 아래는 나성범의 올해 위치별 포심 OPS 입니다.
올해 방망이가 계속 늦어서 몸쪽 낮은 포심 OPS가 .400에 불과했어요.(그 와중에 몸쪽 낮은 볼 OPS의 존재감이 ㄷㄷㄷ) 작년에는 이 코스에 포심 OPS가 무려 1.714 였습니다. 한 시즌 만에 OPS가 반의 반 토막이 난 거죠. 그래서 제가 지난 글에서 '나에게 소원이 3가지가 있다면,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나성범이 포심 잡아 당겨서 홈런을 치는 것'이라고 한 것이고요.
즉, 아직 완전한 신뢰를 보이긴 어렵지만, 그동안 강했던 코스에서도 포심이 들어오면 못 넘겼던 나성범이 오늘 경기에서는 리그 최고의 포심을 던지는 투수라고 일컬어도 무방할 유영찬의 포심을 걷어 올려서 홈런을 만들었다는 것은 매우 고무적인 현상입니다.
WRC+ 200을 기록해 리그를 씹어 먹으며 괴물 같았던 작년에도 나성범은 하이 패스트볼에 약했습니다. 올해는 더 약할 뿐이죠. 하이 패스트볼이 오면 그냥 지금처럼 파울파울 만들다가 상대 실투 받아쳐서 장타로 연결하는 것. 그게 나성범이 타석에서 생산력 있는 활약을 유지할 수 있는 전략이 되지 않을까 싶습니다.
성장하는 김도현, 중요한 시리즈의 첫 승을 만들어 내다.
오늘 경기 타자들이 아무 것도 못 하는 와중에 경기 졌어도 전 그리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하려고 했어요. 컨택 능력과 출루 능력이 뛰어난 LG 타선을 상대로 김도현이 매우 고전할 것이라고 봤는데, 오늘 비록 5이닝은 못 채웠어도 4.1이닝 동안 LG 타선을 3피안타로 잘 막아줬거든요. 3개의 사사구는 아쉬운 부분이지만, 그래도 결정적인 상황마다 삼진 5개를 잡아 내며 위기를 벗어나는 모습을 보여준 것이 고무적입니다.
올 시즌 들어 가장 중요한 시리즈였고, 첫 문을 여는 투수인데, 경험도 많지 않은 상황. 풀타임 선발 경험도 없고, 삼성전에서 2.2이닝 불펜으로 던지고 4일 쉬고 등판이었기에 상황이 녹록치 않았음에도 굉장히 잘 던져줬다고 생각합니다.
오늘 김도현이 정말 좋았던 점은 '커맨드'가 좋았다는 점입니다. 전 자주 언급했는데 김도현은 '커맨드'만 잡히면 1군에서 3선발 이상으로 통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는 우완투수라고 생각합니다. 150km/h을 상회하는 포심을 던질 줄 알고, 체인지업, 슬라이더, 커브를 모두 존에 넣을 수 있는 능력은 KBO에서 정말 매우매우매우 보기 드문 능력입니다. (물론, 그만큼 KBO에 훌륭한 투수가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김도현은 가진 무기는 많은데 그걸 정확하게 쓸 줄 모르는 원석과도 같은 투수죠.
그런데 30대6 대참사 경기 이후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KT와의 경기에서 5이닝 0실점, 삼성과의 경기에서 불펜으로 나와 2.2이닝 무실점, 그리고 오늘 LG 상대로 4.1이닝 동안 1실점에 그쳤습니다.
오늘 호투의 배경에는 '슬라이더'가 있습니다. 사실, 김도현은 한화 시절에는 체인지업과 커브로 먹고 사는 투수로 알고 있었는데, 오늘 좌타자 몸쪽으로 파고 드는 슬라이더까지 던지는 거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오히려 올해는 체인지업과 커브가 별로고, 슬라이더가 괜찮은 것 같네요. KIA로 트레이드 되기 전 김도현은 체인지업 구사비율이 평균 20%가 넘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10%가 안 됩니다. 공이 빨라 지면서 피칭 디자인도 바꾼 것 같아요.
30실점 대참사 경기를 경험하면 심리적으로 무너질 법도 한대 포스트시즌 이전 정규시즌에서 가장 중요한 경기에서 이렇게 정교한 제구력을 보여준 것을 보면, 김도현은 확실히 가진 게 많은 투수입니다. 다만, 오늘도 알 수 있듯이 투구 수가 50개를 넘어가니 구속이 뚝 떨어지더군요. 아직 선발로 한 시즌을 돌 준비는 안 된 상태라고 할 수 있죠.
그런데 뭐 당연한 거 아니겠어요? 김도현은 이제 막 1군에서 선발 로테이션을 돌기 시작했습니다. 처음부터 잘 하면 인간이 아니죠. 이러면서 성장하는 것이고, 포스트시즌에서는 불펜으로 나와서 좋은 활약을 보여주지 않을까 기대가 큽니다.
역시 LG 잡으려면 좌타자에 강한 좌투수들이 있어야
어제 승리에서 가장 큰 소득에 대해 전 불펜 낭비가 없었다는 점을 꼽았습니다. 불펜에서 김기훈, 김사윤 딱 2명만 던졌기 때문이죠. 그 덕에 오늘 KIA가 가진 '좌타자에 강한 좌투수'들을 아낌없이 쏟아 부을 수 있었죠. 심지어 오늘은 김대유를 쓰지도 않았습니다.
특히, 가장 인상적이었던 선수가 곽도규죠. 8월 타율이 무려 4할인 신민재가 곽도규의 투구에 정말이지 아무 것도 못하고 삼진을 당했습니다. 최근 7경기에서 홈런 6개를 쳤고, 오늘도 가장 날카로운 타격감을 보여 준 우타 거포 외국인 타자 오스틴마저 루킹 삼진으로 잡아냈고요. 긁히는 날에 곽도규는 이렇게 무서운 투수입니다. 쓰리쿼터에서 나오는 팔 각도 때문에 좌타자들은 정말 곽도규가 안 나오길 바랄 겁니다.
비록 실점은 했지만, 김기훈도 최소한의 목적은 했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 상황에서는 김대유를 쓰는 게 맞다고 생각했는데 이범호 감독의 선택이 매우 과감했죠. 결과적으로 안 좋긴 했어도 김기훈도 30실점 대참사 이후에는 좋은 피칭을 하고 있었고 볼질을 안 하고 있었기에 자신감을 불어 넣어줄 의도도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스틴에게 위험한 타구(사실, 이건 오스틴이 정말 잘 친 코스입니다. 바깥쪽 체인지업을 기다렸다는 듯이 큰 타구로 연결)를 허용하고, 문보경에게도 안타를 허용했지만, 슬라이더가 낮게 들어간 건대 문보경이 잘 쳤다고 생각해요. 오지환은 포심의 힘으로 뜬공 아웃으로 위기를 넘겼고요. 아직 더 지켜볼 여지는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올해 이준영은 믿지 못할 투수라고 생각하지만, 오늘은 문보경, 오지환, 김현수를 아주 잘 막아줬습니다. 특히, 오지환 상대로 마지막에 던진 슬라이더가 좋았어요. 오지환의 헛스윙 삼진으로 끝났지만, 휘두르지 않았어도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가는 슬라이더였죠. 좌타자에게 이준영의 슬라이더가 얼마나 마구 같이 떨어지는 지 제대로 체감할 수 있는 장면입니다.
장현식의 실점은 그저 불운했을 뿐이고(다만, 1사 3루에서 삼진으로 위기 넘기는 찰나에 허도환 상대로 던진 볼배합이 안 좋았죠. 허도환은 잔뜩 밀어칠 생각을 했을텐데 그 상황에서는 바깥쪽에서 원바운드로 떨어지는 슬라이더를 던졌어야 했습니다. 어째서 그 이상한 그립(?)의 포심을 고집했는 지 의문) 투수들은 전반적으로 다들 잘 해줬습니다. 정해영은 참 기이한 게 구속이 한창 좋을 때보다 떨어졌는데도 LG타선은 막네요. 박해민 상대로 ABS 삼진 잡은 게 개인적으로 컸다고 생각합니다. 사람 심판이었으면 선두타자 볼넷이었어요.
오늘 굉장히 중요한 시리즈의 첫 경기였는데, 양팀이 정말 아주 좋은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합니다. 실책도 없었고(아, 이우성 실책이 있었구나), 이해가 안 가는 투수들의 볼질도 없었으며, 투수들, 야수들 모두 만원 관중 앞에서 굉장히 좋은 경기를 펼쳤다고 생각해요.(무엇보다도 경기 시간이 짧았음) 그래서 저는 오늘 지더라도 최원태가 긁혀서 졌으니 할 말이 없다는 식으로 리뷰를 쓸 준비를 하고 있었는데, 9회에 참 극적인 순간이 연출됐네요.
내일 라우어가 두 번째 등판을 가지게 되었는데 결과를 떠나서 라우어가 호투를 해준다면 그보다 더 좋은 게 없을 것 같습니다. 첫 등판 때는 아직 적응을 못 해서 부진했던 것으로 믿고 싶고, 주무기인 커터가 상대 타자의 몸쪽으로 날카롭게 파고 든다면 호투해줄 수 있다고 생각하는데, 그게 될 지 모르겠네요. 유심히 지켜봐야 할 것 같습니다.
선수 단평
[8/18] KIA : LG - 시리즈 스윕으로 분위기 대전환 (0) | 2024.08.1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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