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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후기] 프로젝트 헤일메리 - SF의 탈을 쓴 버디 무비

영화 리뷰

by Lenore 2026. 3. 31.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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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스스로 SF 영화를 좋아한다고 생각하는 편입니다. 뇌를 자극하는 설정들이 흥미롭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전 전형적인 문과생의 삶을 살아서 과학적인 이론이나 수학적인 사고는 할 줄 모릅니다. 그래서 인터스텔라를 재밌게 봤음에도 아직도 무슨 소리를 하는 지 태반을 못 알아 먹고 있습니다. 놀란 감독의 영화를 좋아하지만 테넷을 볼 때는 이 색히 뭔 개소리를 하고 있지? 라는 생각에 좋지 못한 평을 남기기도 했습니다.(테넷은 감독의 지적 허영이 너무 과했다고 봄)

 

결론부터 말하면,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SF 영화의 탈을 쓴 '버디 무비'라고 생각합니다. 그것도 외계인과 지구인의 우정이 이 영화의 모든 것입니다. 외계인과 인간의 우정을 다룬 영화는 1982년 ET부터 적지 않게 다루어졌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영화들은 대체로 '가족영화'의 성격을 띠었다면, 이 영화는 SF 성격이 조금 더 강하다는 점이 차이점 같아요.

 

만약, SF 영화로서 완성도를 기대하고 영화를 봤다면, 이 영화에 대해서 실망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하지만, 저 같은 야매 SF 팬 입장에서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충분히 즐길만한 거리가 많았던 영화였습니다. 

 

전형적인 SF 재난 영화의 작법을 그대로 따라 간 초반

 

우주 재난으로 지구가 멸망의 위기에 빠지는 설정은 매우 흔한 설정이지만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그 설정부터가 전형적이지 않습니다. 태앙빛을 흡수하는 미생물 '아스트로파지' 때문에 지구의 온도가 떨어져서 식량 위기가 찾아 와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는 설정이죠. 

 

영화 초반에는 한 중학교 과학 교사가 페트로바선의 정체를 밝혀내는 과정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여기서도 일반적인 SF 재난영화의 모습과는 차별점이 있는데, 지구 멸망이 임박해 있는 상황에서도 등장인물들은 '유머'를 잃지 않습니다. 특히 주인공인 그레이스가 유머 감각이 넘치는 사람인데(이런 사람이 왜 쏠로지?) 법인 카드 드립을 친다거나 보안요원들이 스키틀즈를 씹으며 연구를 도와준다거나, 짝짓기 하려고 금성으로 간다는 드립을 노래 한 구절을 부르며 친다거나 중국인 과학자가 엄근진한 표정으로 이를 따라한다거나, 계속 흥미 있는 연출로 딱딱할 수도 있는 상황을 잘 모면해 나가죠. 이 외에도 영화 내에 자잘자잘하게 이런 개그 포인트들이 잘 녹아 들어가 있습니다.

 

개연성 면에서도 납득이 안 가는 장면이 딱히 없었는데 딱 한 부분이 납득이 안 된 게, 주인공이 우주선에 대해서 너무 모르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아니 우주 여행을 하기 위해서 훈련도 엄청 많이 하고,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할 텐데 저렇게 엉망진창이라고? 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이 부분도 뒷 부분에 반전이 있었기에 납득이 가능했습니다. 

 

서로 다른 두 존재가 어떻게 생사를 초월한 우정을 쌓게 되었을까?

 

서두에도 말했지만, 이 영화의 핵심 주제는 '서로 다른 별에서 온 생명체들이 나누는 우정'에 있습니다. 보통 우정도 아니고 목숨을 담보로 하는 우정의 모습까지 보입니다. 이 메시지를 설득력있게 관객에게 전달하느냐가 영화의 성패를 가른다고 봤는데, <프로젝트 헤일메리>는 이 부분을 정말 훌륭하게 빌드 업 했습니다. 일단 두 주인공(인간 그레이스와 에리디언 로키)이 처한 상황이 비슷합니다. 

 

1. 둘 다 자신의 별이 '아스트로파지'에 의해 멸망을 앞 둔 상황

2. 둘 다 우주 여행 과정에서 동료를 잃어 '외톨이'가 된 상황

 

인간 그레이스는 동료 2명을 잃었고(다만, 이 동료들과의 유대감이 강해 보이진 않았습니다. 그 이유는 뒤에 드러남) 외계인 로키는 동료 23명을 잃었습니다. 자기가 '수리'하려고 했으나 모두 죽어서 힘들어 하는 모습을 보였죠. 로키가 위험을 무릅쓰고 그레이스를 구하는 과정의 설득력을 부여 하는 서사입니다.

 

공통의 적을 두고 협력한 상황이고 둘 다 우주에서 외톨이 인 줄 알았는데 서로 만났으니 이보다 더 유대 관계를 쌓을 수 있는 상황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래서 두 존재가 서로의 목숨까지 바쳐 가면서 상대를 구하는 모습에 위화감이 느껴지지 않았습니다. 

 

지구에서는 서로 성별이 다르다는 이유로 싸우고, 피부색이 다르다는 이유로 싸우고, 믿는 종교가 다르다고 싸우고, 별 말 같지도 않은 이유로 반목하는데, 생김새도 완전히 다르고 문화도 다르고 생존할 수 있는 환경도 다른데 서로 죽을 각오를 하고 구해준다고? 연출적으로 빌드 업이 안 되면 납득하기 쉽지 않은 설정이죠.

 

 

주인공 '그레이스'의 성장기

 

여기에 그레이스의 '숨겨진 서사'도 있었죠. 그레이스가 왜 우주선을 제대로 조작하지 못 했는지, 어째서 파일럿 역할을 처음에 거부했는 지, 영화 후반부에 진실이 드러납니다. 연료량 때문에 '죽음의 우주여행'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레이스는 자신의 생명을 바쳐 가면서까지 우주선을 타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결정입니다. 과학자들이 몰살하는 불의의 사고가 아니었다면 그레이스는 지구 멸망까지 30년을 더 살 수 있었으니까요. 그 누구도 선뜻 목숨을 바쳐가며 지구를 구하겠다는 생각을 하긴 쉽지 않죠.

 

하지만 이 프로젝트의 책임자인 스트라트는 그레이스의 결정을 받아 들이지 않고 억지로 혼수 상태로 만들어서 우주에 태웁니다. 이처럼 스스로 '겁쟁이'라고 생각하고 용감한 사람이라고 생각하지 않은 그레이스가 목숨을 바쳐 가면서 로키를 구하는 마음을 먹기 까지의 과정을 이 영화는 설득력 있게 담았습니다. 그리고 관객들도 이 서사에 몰입되어서 눈물을 흘리면서 이들의 모습에 공감하게 되고요.

 

<프로젝트 헤일메리>의 가장 훌륭한 부분이 여기에 있다고 봅니다. 지구에 못 돌아가는 것이 확실한 상황에서 집으로의 귀환을 포기하고 '로키'를 구하기 위해 다시 방향을 돌린다? 결코 쉬운 결정이 아니었음에도 그레이스는 로키를 구하러 우주선을 되돌립니다. 이 종족인데? 지구인만 구하면 되는 건대 굳이? 오히려 그레이스가 로키의 위기를 외면하고 지구로 돌아 갔으면 영화가 이상했을 겁니다.

 

로키는 그레이스를 위해 편도로 끝날 죽음의 우주 여행을 '연료를 제공해준다'라며 지구로 귀환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줬고, 아스트로파지를 먹는 타우메바를 얻는 과정에서 그레이스가 사고로 정신을 잃고 목숨이 위급해지자 자신의 몸이 산소에 닿아 타오르는 것을 각오하고 그레이스를 로봇에게 인계해 치료를 받게 해줍니다. 

 

같이 서로의 별을 구하기 위한 연구를 하면서 쌓은 우정, 그리고 동료를 구하지 못 했다는 죄책감, 마지막으로 그레이스가 없으면 아스트로파지에 대한 배양을 할 수 없다는 사정 등이 모두 작용하면서 로키와 그레이스는 하나의 동일체가 되어서 영화 속에서 움직이죠. 둘이 아니었다면, 지구도 멸망했을테고, 에리디언도 멸망했을 겁니다.

 

이 일련의 사건을 겪으면서 자기 안위만 생각했던 그레이스는 성장을 합니다. 배양에 성공한 타우메바가 로키의 우주선 연료를 잡아 먹을 것이라는 것을 발견하고 그레이스는 로키를 구하기 위해 지구로의 귀환을 포기합니다. 여기에는 이번 우주 여행은 죽음을 각오한 편도 여행이었다는 점. 그레이스는 억지로 우주선에 태워 졌다는 점. 지구에 남은 식구가 없다는 설정 등도, 그레이스의 지구 귀환 포기 결정을 '자연스러운 결정'으로 보이게 합니다. 

 

 

한 편의 훌륭한 성장 영화이자 버디 무비

 

다시 한 번 이야기하지만, 이 영화는 SF 영화를 기대하고 보면 후회할 가능성이 크다고 봅니다. 물론, 전 SF 영화로서도 좋았지만, 중반부 부터 영화의 성격이 확 변합니다. 그 와중에 이 영화의 또 다른 장점 중 하나는 시종일관 '유머러스함'은 잃지 않는 다는 점이에요.

 

영화를 다 보고 든 생각은 한국인들이 참 좋아 할 영화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나라 영화들이 신파 영화가 많은데, 신파 영화를 만들 거면 이렇게 만들어야 하지 않나 싶을 정도로 <프로젝트 헤일메리>를 보면서 눈물이 차오르는 상황을 많이 경험할 수 있었어요. 

 

유머와 눈물로 인해 영화가 가벼워지긴 했지만, 좀 가벼우면 어떻습니까. 종족을 초월한 우정을 보면서 감동을 느낄 수 있었는데.

 

원작 소설은 보진 않았지만, 원작 소설의 탄탄한 설정이 영화로 잘 구현이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여기에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요소들(영상미, 음악 등)도 잘 들어갔고요. 시종일관 차갑고 딱딱하기 그지 없었던 에바 스트라트가 해리 스타일스의 <Sign of the Times>를 부르는 장면도 영화만이 주는 감동이라고 생각해요.

 

SF의 상상력을 자극하는 설정이나 우주적 재난이 주는 웅장함이 덜한 것은 이 영화의 단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이 영화가 의도했던 지점을 생각하면 단점이라고 할 수 없고, 갈수록 서로간의 반목이 심한 현 세계에서 주는 메시지도 시의 적절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루하지 않게 굉장히 신선하게, 그리고 무척이나 감명 깊게 본 영화였습니다. 2시간 30분이 넘는 긴 상영시간이 지루하지 않았고 오히려 부족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제 최종 별점은 4.5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