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05] KIA : NC 후기 - 무사사구 영봉승, 이해할 수 없는 라인업
오늘은 근무 때문에 경기를 실시간으로 보지 못 했고, 방금 티빙 다시보기로 경기를 다시 봤습니다. 정말 쓸데없는 이야기지만, 결과를 알고 방향키 눌러 가며 경기를 다시 보는 것도 재밌네요.
오늘 경기는 마운드가 다 했습니다. 올러, 전상현, 김범수, 정해영이 나왔는데 넷 다 잘 던졌어요. 정해영이 가장 불안했지만, 그래도 지난 번보다는 공에 힘이 있었습니다. 마지막 서호철 타구 정도만 잘 맞은 타구였지, 전부 3루 쪽으로 빗맞은 땅볼이 나왔습니다. 무엇보다도 오늘 좋은 결과를 낸 이유는 사사구를 단 1개도 내주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KIA 마운드의 실점이 항상 볼넷부터 시작됐다는 걸 감안하면, 볼넷이 얼마나 실점 확률을 높이는 지 알 수 있어요.
타선은 그냥 딱 이길만큼의 점수만 뽑아 줬습니다. 7안타 2볼넷으로 주자가 9명 나갔는데 3명 들어왔으면 잘 한 거죠. 하지만 여전히 타자들의 타격감은 좋다고 볼 순 없고, 구시대적인 라인업은 경기를 답답하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올러, 똑바로 들어가는 공이 단 1개도 없다.
올러는 오늘 92개의 공을 던졌는데, 실투가 거의 없었습니다. 딱 1개 나온 실투가 오늘 경기에서 가장 큰 위기였던 박민우의 2루타였죠. 박민우처럼 타격 기술이 좋고, 최근 타격감이 좋은 선수에게 한가운데 딱 치기 좋은 코스로 149km/h의 빠른 공이 들어갔습니다. 만약, 박민우보다 힘이 좋은 타자였다면 동점 홈런으로도 연결될 수 있었던 실투였어요. 다행히 주자가 느리고 중계 플레이가 빨리 이루어져서 실점을 막을 수 있었죠.
올러 투구의 가장 큰 장점은 홈플레이트에서 똑바로 들어가는 공들이 거의 없다는 겁니다. 빠른 공이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살아 들어간다는 게 화면에서 확연히 보입니다. 여기에 홈플레이트 근처에서 한 번 솟아 오르는 듯한 느낌을 주면서 평범한 플라이를 무수히 양산해 냈습니다. 그 덕분에 투구수를 크게 줄일 수 있었죠. 사인 미스로 인한 스트라이크 낫아웃만 아니었다면 8회까지 맡길 수 있었을 정도로 오늘 구위가 좋았습니다.

올러의 빠른 공은 특히 하이존으로 들어갈 때 그 위력이 더해집니다. 우타자 바깥쪽 높은 코스로 들어가는데, 타자들이 예측하고 스윙을 해도 배트의 윗부분에 공이 맞아서 이지 플라이로 연결됩니다. 하이 존에 최적화된 ABS와 올러 특유의 움직임 많은 빠른 공이 겹쳐 KBO 무대에서 더 위력적으로 들어가지 않나 싶어요. 여기에 투구 수 80개가 넘어가는데 153km/h을 던질 정도로 스태미너도 뛰어 나고요. 스태미너야 말로 네일과의 가장 큰 차이죠.
여기에 주무기인 슬러브가 포수의 요구대로 들어가지 않더라도 움직임이 너무 크니까 타자들이 속을 수밖에 없죠. 특히, 오른손 타자들은 올러의 투구가 진짜 까다로울 겁니다. 빠른 공은 몸쪽으로 말려 들어가는 느낌이 드는데, 슬러브는 바깥쪽으로 크게 흘러 나가면서 떨어지죠. 그래서 올해 올러의 우타자 상대 피안타율은 .095(좌타 상대 .182)에 불과합니다. 그렇다고 좌타 상대로 딱히 약한 것도 아니죠. 작년에는 우타자, 좌타자 상관없이 비슷한 스플릿(우타 피OPS .603 / 좌타 피OPS .599)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시즌 올러의 단점은 주자 있을 때 슬라이드 스텝으로 공을 던지면 제구가 크게 나빠지면서 실투가 늘어난다는 점이었는데, 올 시즌 두 차례 등판에서는 그런 모습도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아, 생각해보니 박민우에게 2루타를 맞았을 때 주자가 1루에 있긴 했네요. 그래도 올해 주자 있을 때 피안타율이 .091로 주자 없을 때보다 더 좋습니다. 현재까지는 매우 순항 중이에요.
자주 언급하는 내용인데, 지난해 올러의 FIP(수비 무관 평균자책점)은 리그 3위로 그 위에는 폰세와 앤더슨 메이저리그 진출한 두 명의 투수 밖에 없었습니다. 네일이 FIP 리그 7위였는데, KIA는 수비만 안정이 되면 리그 최고의 원투펀치 외국인 투수를 오래오래 써먹을 수 있어요. 두 투수 모두 MLB 진출하기엔 구종이 단조로운 게 약점이라, 오히려 이 약점이 KIA 입장에선 축복입니다. 둘 다 불펜으로는 MLB에 갈 수 있을 거에요. 하지만 두 투수들이 그걸 원할까 싶습니다. 네일은 이미 한국 생활에 만족하는 모습을 보였고, 올러 역시 동양 문화를 좋아하는 편이라(오타쿠 ㄷㄷㄷ) NPB에서 입질하지 않는 한 오래 볼 수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전상현과 김범수 믿음직한 우완/좌완 불펜의 모습

전상현은 한결 같이 좋습니다. 하이 존을 활용하고 그 존으로 변화구를 떨어뜨리면서 상대 타자들을 잘 잡아 냈어요. 첫 타자 신재인(이 친구 이거이거 주목해야 할 듯)에게 맞은 안타도 실투가 아니었어요. 몸쪽에 굉장히 잘 붙인 포심이었는데, 그걸 페어 지역으로 보낸 타자가 대단한 거죠. 살짝 다른 이야기인데, NC는 투타의 세대교체가 정말 잘 되었네요. 앞으로 몇 년간 꾸준히 상위권에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오늘 정말 좋은 공을 던진 투수는 김범수였습니다. 오늘 김범수의 피칭은 그야말로 예술의 경지였습니다. 전상현으로 끝까지 갈 것 같았는데, 박민우가 나오자 김범수 카드를 꺼내 들었는데, 삼진을 잡아내며 탁월한 선택이 됐죠. 아래는 김범수가 박민우를 상대할 때 던진 구종과 위치입니다.

4개의 공 중 버리는 공이 단 1개도 없었습니다. 초구 빠른 공도 스트라이크존에서 살짝 벗어난 투구였고, 2구와 3구째 빠른 공을 몸쪽 하이존으로 넣어 버리면서 박민우를 삼진 잡기 위한 셋업 피칭을 완벽하게 만들어 냈습니다. 박민우 같은 타자도 속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몸쪽 빠른 공으로 시선을 분산 시킨 다음에, 바깥쪽 보더라인으로 흘러가 떨어지는 슬라이더로 완벽한 헛스윙 삼진을 잡았죠. 보면서 탄성이 나올 정도였어요.

김범수가 오늘 같은 투구를 꾸준히 보여줄 수 있다면, 좌타자 입장에서 김범수를 공략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일입니다. KIA가 그동안 슬라이더 원툴인 이준영을 주로 이 상황에서 올려 보냈는데, 이준영은 김범수처럼 제구가 정교하지도, 빠른 공이 위력적이지도 않죠. 슬라이더만이 리그 평균 이상의 움직임을 보이는 투수인데, 이준영도 바깥쪽 낮게 빠른 공을 던지고 그 코스로 슬라이더를 던질 게 아니라 김범수처럼 빠른 공은 좌타자 몸쪽 하이존으로 놓고 바깥쪽 슬라이더를 결정구로 던지는 피칭 디자인을 짜 보면 어떨까요? 하지만 이게 되면 이준영도 김범수처럼 20억을 받겠죠.

내내 못 하다가 지난해 처음으로 잘 했기에 김범수에 대한 의심의 시선은 여전히 감출 수 없지만, 이번 주 등판했을 때의 모습을 꾸준히 보여준다면 가뜩이나 파이어볼러 없는 살림에 시간이 오래 걸린다고 해도 150km/h을 던지는 유망주 투수(양수호)를 내준 손실은 생각 나지 않을 수도 있어 보입니다. 단순하게 이번 주와 같은 피칭(3경기 1.2이닝 무피안타 3탈삼진 1볼넷)을 계속 보여주면 3년 20억원은 헐값이에요.
이해 할 수 없는 이범호 감독의 라인업
중계는 못 봤지만, 오늘 라인업을 보자마자 한숨부터 나오더라고요. 1군 경험이 거의 없는 풋내기 타자를 1번과 2번 테이블세터에 내세우는 감독이 이 세상에 어딨을까 싶습니다. 박재현이야 발이 빨라서라고 이해하고 싶지만, 박상준은 도대체 왜 2번 타자일까요? 겉 모습은 과거 KIA와 한화에서 뛰었던 이종환(좌나비로 불렸죠.)을 떠올리게 하는데, 왜 2번 타자로 내세웠는 지 모르겠습니다. 박상준이 2군에서 올해 굉장히 좋은 성적(타율 .436 / 출루율 .468 / 3홈런)을 기록하고 있는 건 사실인데 스몰샘플에 불과하고 지난해 2군에서 128타석에서 타율 .280에 불과했습니다. 다만, 지난해 출루율(.383)은 타율 대비 훌륭하긴 하네요. 하지만 그렇다해도 이제 갓 1군 무대에 올라 온 선수에 불과하죠.

검증되지 않은 타자 2명을 한 경기에서 가장 많은 타격 기회를 부여 받는 1번, 2번 타자에 나란히 배치하는 건 무슨 의도인 지 모르겠어요. 박재현이야 마지막 타석에서 2루타 하나 쳤다지만, 그 전의 모습을 보면 아직 1군 투수들의 노련함을 이겨내려면 멀어 보이고, 박상준은 생각보다 괜찮은 컨택을 보여주고 있지만, 검증된 건 하나도 없죠.
이걸 보면, 이범호 감독의 머릿 속에는 도대체 무슨 생각이 들어가 있는 지 모르겠습니다. 작년에 가장 많이 비판 받는 부분도 1번 타자로 박찬호를 쓴다는 점이었고, 2번 타자로 오선우를 주로 기용하는 등 납득하기 쉽지 않은 기용이었는데, 올해는 그래도 작년에 좋은 타격감을 보인 김호령을 1번으로, 여기에 컨택이 좋고 발도 빠른 편인 카스트로를 2번으로 기용하면서 달라지나 했는데 여전하네요.
이러고 경기 이겼다고 또 이런 라인업을 들고 나올 지 모르겠는데, 이건 선수에게도 좋은 일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리고 애초에 이범호 감독은 쓸데 없는 고집을 부린다고 밖에 생각하지 않는 게 '최원준'의 KT에서의 활약이에요. 제가 KT 경기를 본 게 아니라 실제 활약보다 과대 평가된 스탯일 수 있지만, 현재 최원준은 부동의 1번 타자로 기용되면서 .361의 타율과 .452의 출루율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떠날 때 최원준도 아쉬운 소리를 하기도 했죠. 자기는 늦게 몸이 풀리는 선수가 아닌데 톱타자로 못 뛰는 타자로 만들어 버렸다며.

저는 웬만하면 현장의 시각을 존중하는 편인데 이범호 감독의 라인업은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1번 타자 감이 없으면 그냥 김도영 1번 박고 쓰면 됩니다. 아니면 최근 타격감이 괜찮은 데일을 쓰던지요. 체력 부담이 큰 유격수 포지션의 박찬호는 1번 타자로 잘만 쓰면서 데일은 1번으로 안 쓰는 이유가 뭘까요? 아직 시차 적응 중이라고 생각하는 건가요.(참고로 데일은 지난 해 일본에서 뛰었음) 아니면, 최원준처럼 데일도 늦게 몸이 풀리는 타입인가요? 이범호 감독의 고집은 정말 알 수가 없습니다.
아직 시즌 초라 큰 의미는 없다지만, 현재까지 KIA의 1~2번 타순의 기록은 타율 .194 / 출루율 .275 / OPS .614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타율 리그 꼴찌, 출루율 리그 꼴찌, OPS 리그 9위입니다.(10위는 놀랍게도 LG) 아직 8경기 밖에 안 했으니 이 기록이 그대로 갈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생각하지만, 이범호 감독이 1~2번 타순을 계속 이딴 식으로 짜면, 올해 최악의 테이블세터를 가진 팀은 KIA 타이거즈일 겁니다.
선수 단평
- 박재현 - 2루타 하나 쳤지만, 너가 있을 곳은 1번 타자도 아니고 1군도 아니다.
- 박상준 - 나름 날카로운 타구를 계속 보여주는 중, 하지만 2번 타자가 아니라 7번 이하에서 쳐야 한다.
- 김도영 - 안타 하나 쳤지만, 아직은...
- 카스트로 - 3점째를 만들어 내는 '팀 배팅'은 외국인 타자 답지 않았다. 팀 퍼스트가 느껴졌음
- 김선빈 - 잘 쳐도 전부 정면이네
- 한준수 - 사인미스맞지?
- 김호령 - 1번에서 내려오니까 맹타? 그런 거 없으니 그냥 1번 박자.
- 정현창 - 매우 불만스러운 타격, 더 불만스러운 주루, 그래도 좋았던 마지막 아웃 카운트 잡는 수비
- 데일 - 머리 뒤로 넘어가는 빗맞은 타구 잡아 내는 수비는 박찬호를 연상케했다.(다만, 박찬호였다면 그냥 뛰면서 잡았을 듯)
- 정해영 - 포수가 바깥쪽으로 앉았을 때마다 몸쪽으로 들어갔는데 그 공들이 오히려 더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