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4] KIA : 롯데 - 타선 침묵, 그러나 희망 던진 윤영철
패배의 요인
오늘 경기 결과를 요약하면 '무난하게 졌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경기를 내준 이유는 명확해요. 단 1점도 뽑지 못 했기 때문입니다. 몇 경기 째 타자들의 타격감이 바닥이기도 했지만 롯데의 효과적인 이어 던지기에 당하기도 했고, 비교적 잘 맞은 타구가 정면으로 잡히는 등 운이 안 따르기도 했습니다.
특히, 1회에 득점을 하지 못 한 게 경기를 내내 꼬이게 만든 것 같아요. 첫 타자 박찬호부터 유격수 라인드라이브에 잡혔고, 오선우의 2루타와 최형우의 볼넷으로 만들어진 찬스, 한준수의 타구가 정말 잘 맞았는데 그 총알 같은 타구가 우익수 정면으로 갔습니다. 한준수의 타구 속도만 보고 '됐다' 싶었는데 이 타구가 잡히면서 그 이후에도 계속 꼬인 것 같아요. 뭐, 이런 경기도 있는 거죠.
윤영철, 내가 알던 그 투수가 맞나?
오늘 경기 선발이 윤영철인 걸 보고 애초에 마음을 비웠습니다. 한현희도 올 시즌 첫 선발 등판이라지만 오늘 전까지 윤영철의 WHIP은 4.0이 넘어갈 정도로 1군에 있으면 안 될 투구를 하고 있었죠. 한현희보다 못한 상황이었습니다.
그래서 전혀 기대를 걸지 않았고, 2군에서도 구속이 올라왔다는 이야기도 없었음에도 오늘 경기 투구하는 걸 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1회부터 145km/h를 던지질 않나, 오늘 경기 내내 포심 구속이 140km/h 이상이었습니다.
아래는, 올 시즌 윤영철이 던진 경기에서 포심 평균 구속입니다.
- 3/26 - 139.0km/h
- 4/10 - 139.1km/h
- 4/18 - 135.3km/h
- 5-14 - 141.2km/h
올 시즌 내내 포심 평균 구속이 140km/h을 넘지 못 했는데 오늘 경기 평균 구속이 141.2km/h를 기록했습니다. 첫 3회까지는 포심의 위력에 롯데 타자들도 적잖이 놀란 느낌이었어요. 그 덕분에 공이 느려서 삼진을 잘 잡지 못 하는 윤영철이 오늘 이닝 당 1개 꼴인 4개의 탈삼진을 잡아냈을 정도입니다. 심지어 포심 헛스윙 삼진도 있었고요.
윤영철이 작년에도 포심 평균 구속이 140km/h을 넘긴 적이 있던가 싶어서 스탯티즈 기록을 찾아 봤습니다. 지난해 윤영철은 18번의 선발 등판을 했는데 단 한 번도 포심 평균 구속이 140km/h을 넘긴 적이 없습니다.(시즌 평균 포심 구속 137.5km/h)
데뷔해에 있었던가? 싶어서 2023년 기록을 찾아보니 26번의 선발 등판에서 포심 평균 구속이 140km/h을 넘긴 경기는 5월 24일 경기가 유일했고, 이 경기에서도 포심 평균 구속은 140.3km/h을 기록하며, 140km/h을 간신히 상회하는 수준이었어요.(데뷔해 평균 포심 구속 137.6km/h)
즉, 오늘 윤영철은 본인 커리어 최고 수준의 포심 평균 구속을 기록했다는 뜻입니다. 단순히 숫자에 찍히는 숫자 뿐이 아니라, 오늘 윤영철의 직구에는 힘이 느껴졌습니다. 1회에는 존에 포심을 우겨 넣었음에도 롯데 타자들의 타이밍이 늦어서 평범한 뜬공이 나왔으니까요.
갑자기 뭐가 달라진 걸까요? 70개만 던지기로 해서 오버 페이스를 했다고 하기에는 마지막 이닝에서도 대부분의 포심이 139km/h에서 140km/h 정도를 기록했습니다. 141km/h까지 던지기도 했고요.
물론, 1회에 비하면 포심 평균 구속이 급격히 떨어지긴 했기에 아직 개선점이 필요하다고 생각은 하지만, 윤영철은 커리어 통틀어 오늘 1회 같은 구위의 포심을 던진 적이 없는 투수입니다. 그런데 신기하게 포심 구속이 붙었습니다.
실점은 했다지만, 오늘 투구 내용도 좋았죠. 어제도 언급했지만, 롯데는 리그에서 가장 정확한 타격을 하는 팀입니다. 그런 팀 상대로 안타를 4개 밖에 안 맞았어요. 문제는 3개의 사사구였죠. 윤영철의 올 시즌 투구를 보면 체인지업이나 슬라이더나 타자 머리 위에서 형성되는 경우가 많은데 슬라이더와 체인지업만 존에서 낮게 떨어뜨리면, 상당히 좋은 투구를 기대할 수 있어 보입니다.
타선에 새로운 바람을 넣어 주고 있는 오선우
오늘 전반적으로 타자들이 다 좋지 못 했지만(특히, 어제 맹활약한 김도영이 오늘 병살 포함해서 너무 부진한 게 패인이죠.) 그 와중에 눈에 들어 오는 타격을 한 선수가 오선우였죠.
첫 타석부터 굉장히 잘 맞은 2루타를 치더니, 두 번째 타석에서도 잘 맞은 1-2루간 안타를 칩니다. 아무래도 사이드암 투수의 공이 잘 보이는 좌타자이기도 하고, 선수 본인도 사이드암에 강한 느낌이 들긴 해요. 그렇다해도 굉장히 인상적인 타구질이었습니다.
오늘 오선우가 한현희를 상대로 잘 공략을 하니, 승리 투수까지 아웃 카운트가 불과 2개 남겨 둔 한현희를 오선우 타석에서 교체를 했죠. 그리고 오선우는 좌타자 상대로 피안타율 .149에 불과한 정현수의 주무기 슬라이더를 공략해서 우익수 앞으로 큼지막한 타구를 날리기도 했습니다. 발사각이 너무 높아서 문제였지, 까다로운 정현수의 슬라이더를 낮게 떨어지는 포인트에서 잘 받아쳐서 좋은 타구를 만들었죠.
정철원 상대로 찬스에서 삼진을 당하긴 했지만, 그래도 쉽게 물러나지 않고 6구 승부 끝에 삼진으로 물러났죠. 타석에서 경험치를 쌓으면 쌓을수록 성장하는 느낌이 듭니다.
현재 오선우는 .292의 타율과 .352의 출루율, .431의 장타율로 OPS .783을 기록하고 있고, WRC+는 119.2를 찍고 있습니다. 아직 71타석에 불과한 스몰샘플이긴 하지만, 1군에서 잘 버텨주고 있죠.
오늘 스포티비 캐스터가 언급하기도 했지만, 올해 오선우가 좋아진 이유는 '컨택'이 좋아졌기 때문입니다. 오선우는 통산 스윙을 했을 때 컨택률이 64.9%에 불과했습니다. 그런데 올해는 71.2%를 기록하고 있어요. 지난해 57.1%를 기록한 것에 비하면 장족의 발전이죠.
컨택률이 좋아지면서 투 스트라이크 이후의 삼진율도 작년 75%에서 올해 30.1%로 좋아졌습니다. 물론, 여전히 높은 비율이에요. 하지만 적어도 '발전'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부여할 수 있죠.
참고로 오선우의 현재 컨택률이 71.2% 내외의 컨택률을 기록하고 있는 타자는 박동원(71.7%), 오지환(70.8%), 김재환(69.8%), 양석환(69.7%), 카디네스(72.2%), 푸이그(72.8%) 등이 있습니다. 목록을 보시면 아시겠지만, 다들 큰 풀 스윙을 즐겨 하는 선수들이죠. 오선우의 컨택률이 여기까지 올라왔다는 건 매우 긍정적인 신호입니다.
물론, 지금의 컨택률이 끝까지 유지 될 지는 알 수 없습니다. 체력적인 문제와 상대 투수들의 약점 공략으로 무너지는 경우가 훨씬 많기 때문이죠. 하지만 파워가 있는 선수가 컨택 툴에서 발전했다는 그 사실만으로도 현재의 오선우에게는 기회를 줄 이유는 충분합니다.
선수 단평
- 박찬호 - 오선우와 함께 팀 내 유이한 멀티 히트
- 김도영 - 어제의 영웅, 오늘은 역적
- 최형우 - 3타수 1안타 1볼넷이면 할 일 다 함
- 한준수 - 지독하게도 안 풀리는 타구 운
- 이우성 - 마지막 타석 2루타로 체면치레
- 홍종표 - 그래도 백업 내야수 중에서는 가장 낫네
- 변우혁 - 변우혁의 포텐은 도대체 언제 터질까요.
- 박재현 - 1군 투수들의 공에 전혀 대응이 안 됨. 2군으로 고.
- 김규성 - 기적의 안타
- 박정우 - 이제 최원준과 무슨 차이지?
- 김선빈 - 대타로 나와서 초구 평범한 뜬공. 어느새 타율 .286까지 떨어짐
- 김기훈 - 안타 맞는 건 괜찮다. 볼질 안 하면 그걸로 됐어.
- 김건국 - 긴 인터벌은 보기 괴로웠지만 롯데 타선을 정말 잘 막아줬음.
- 장재혁 - 손호영의 홈런은 그냥 자연재해였다고 생각하자, 그래도 구위나 변화구 구사능력은 인상 깊었음.
- 윤중현 - 패전조 중에 현재까지 가장 나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