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3] KIA : LG - 상대의 실수를 놓치지 않다
승리의 요인
양현종이 퀄리티 스타트를 기록했고, 올 시즌 처음 상대하는 외국인 투수를 상대로도 9개의 안타를 집중시켜 6점을 뽑아내며 리드를 잡은 이후, 무난하게(?) 승리했습니다.
먼저, 가장 의외인 건 LG 벤치의 모습이었죠. 4회 첫 타자 소크라테스가 친 타구가 우측 라인선상을 따라갔고, 오스틴이 잘 잡았는데 투수에게 던진 공이 너무 높게 들어가면서 1루에서 뱅뱅 플레이가 됐습니다. 그런데 맨눈으로 보기에도 에르난데스가 1루 베이스를 먼저 밟았는데 심판은 세이프 선언을 했고, LG에서 당연히 비디오 판독을 요구할 줄 알았는데 아무런 신호가 없었습니다.
물론, 일요일 경기 삼성 포수 이병헌이 1루 베이스를 밟은 것처럼 보였지만, 실제로 못 밟은 것처럼. 판독 센터에서는 다른 화면을 보여줬을 수도 있지만, SBS 스포츠에서 내보낸 느린 화면으로는 분명히 에르난데스의 발이 베이스를 더 빨리 밟았습니다. 오심도 오심이지만, 비디오 판독으로 충분히 뒤집을 수 있는 상황에서 시도를 안 한 건 좀 이상하더라고요.
이 외에도 승부에 영향을 준 타구는 아니지만, 9회 이영빈이 정해영의 포심을 잔뜩 노리고 휘둘러서 중앙 담장을 아주 사아아아아알짝 넘겼는데, 이것도 왜 비디오 판독을 요구하지 않았는 지 의문입니다. 심지어 홈런 판독은 비디오 판독 카운트에 들어가지도 않는데 말이죠. 어차피 승부에 영향이 없었다해도 신인급 선수가 친 프로 데뷔 첫 홈런이었는데 선수 입장에서는 집에 와서 하이라이트 보면 참 허망할 것 같네요.
그리고 LG 쪽에서 느슨한 주루 플레이와 느슨한 수비가 두 차례 나왔고, 이게 승부에 영향을 미치기도 했죠. 6회 양현종이 흔들리면서 존 안으로 계속 힘 없는 공을 던져 오지환에게 홈런 허용하고 김현수에게 2루타를 허용했는데(전, 당연히 바꿀 줄 알았는데 2위와의 경기 차이가 6.5경기 차이라서 밀고 갔다고 생각합니다.) 김범석의 중견수 플라이마저도 굉장히 잘 맞은 타구였죠. 포수는 몸쪽 높은 포심 요구했는데 가운데로 몰리면서 큰 타구를 허용했습니다. 다행히 최원준이 잘 잡아내긴 했지만, 이 과정에서 발목을 살짝 삐어서 대타 박정우로 교체되기도 했죠.
LG의 느슨한 주루 플레이는 다음 타자 박해민의 타구 때 나왔죠. 김선빈이 몸을 돌리며 어렵게 타구를 잡아내긴 했고, 홈으로 던지려면 몸을 한 번 돌려야 하므로 송구까지 시간이 소요되는 것은 맞지만, 홈까지 거리가 너무나도 가까웠습니다. 게다가 3루 주자가 신민재나 박해민이면 모를까, 김현수면 빠른 주자도 아니죠. 빠른 주자였어도 홈에서 사는 것을 장담하기 어려웠는데 무모한 시도였고, 김현수의 무리한 주루 플레이 때문에 좋지 못 했던 양현종이 6회를 오지환의 홈런 1실점으로 넘길 수 있었습니다.
LG의 또 다른 느슨한 플레이는 7회말 수비에서도 나왔죠. 6회초 상황과는 반대되는 상황이었는데 1사 1, 3루에서 홍종표가 친 타구는 그냥 내야 플라이였습니다. 3루 주자가 들어오기 어려웠죠. 하지만, LG에서는 극단적인 전진 수비를 시도하고 있었고, 그래서 2루수 구본혁이 우익수 홍창기에게 타구를 양보했습니다. 하지만, 바람이 역방향으로 불었는 지 타구는 내야 그라운드로 떨어지며 행운의 1타점 내야 안타가 되었죠.
아마, 구본혁은 자기가 잡으면 몸을 돌려서 잡아야 하고, 그러면 발 빠른 3루 주자 박정우가 홈에 들어올 수 있을 것이라고 판단하고 우익수 홍창기에게 공을 양보한 것 같은데, 이게 적극적으로 공을 따라 가서 잡은 김선빈의 좋은 수비와 비교되면서, 정반대의 결과를 낳았습니다. 그리고 8회에는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한승택의 추가 적시타까지 터졌고요.(한승택을 대타로 안 바꾸는 거 보고 이범호 감독이 여유가 생겼구나 싶었던...)
KIA가 올해 LG 상대로 강했던 이유
오늘 KIA가 또 다시 LG를 잡으면서 시즌 전적은 최종 13승 3패가 됐습니다. 그야말로 압도한 시즌이 되었는데, 올해 KIA가 LG를 상대로 우세한 전적을 남긴 이유를 알 수 있는 이닝이 8회초 수비입니다.
그동안 잘 던졌던 전상현이 7회 박동원에게 큰 타구를 맞으면서(비록 중견수 플라이로 잡혔지만) 불안함을 줬는데 8회 선두타자 오스틴에게 안타를 맞고(오스틴이 참 좋은 타자인게, 극단적인 풀히터가 아니라 필요할 때는 스프레이 히터의 모습을 보이기 때문입니다.) 문보경에게 던진 포심이 바깥쪽 벨트 라인으로 형성되면서 2루타가 됐죠. 소크라테스의 글러브에 들어갈 뻔도 했지만, 애초에 타구 자체가 잘 맞았습니다.
무사 2, 3루 상황이라 1실점은 당연한 상황이었고, 최악의 경우 2실점 이상도 가능했는데 이 위기를 꺼준 선수가 '곽도규'입니다. 오늘 타격감이 나쁘지 않아 보였던 김현수를 유리한 카운트에서 던진 커브로 얕은 플라이를 유도하며 3루 주자의 홈 태그를 막았고, 역시 앞 타석에서 좋은 타구를 날렸던 김범석을 상대로 올해 우타자에게 좌타자보다 좋지 못한 성적(좌타 피OPS .503 / 우타 피OPS .748)을 기록하고 있음에도 투심만 5개 던져서 평범한 투수 땅볼로 막았죠.(올 시즌 내내 곽도규 1루 송구가 엉성해서 에러하는 줄 ㅋㅋ)
좌타자가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LG를 상대로 KIA는 좌타자 상대로 확실한 무기가 있는 좌투수들을 여럿 보유하고 있는 것이 올해 LG 상대로 우세한 전적을 기록한 이유고, 오늘 경기에서도 그게 여지 없이 드러났죠. 아래는 올 시즌 주요 KIA 왼손 불펜투수들의 LG 상대 기록입니다.
- 곽도규 - 7.2이닝 피안타율 .207, 피OPS .550
- 이준영 - 4.2이닝 피안타율 .118, 피OPS .402
- 김대유 - 3.0이닝 피안타율 .200, 피OPS .533
- 최지민 - 4.1이닝 피안타율 .333, 피OPS .889
올해 성장통을 겪고 있는 최지민만 안 좋고, 곽도규, 이준영, 김대유 셋 다 LG만 만나면 피OPS .600 미만으로 억제하고 있어요. 여기에 우완이라도 LG 상대로 통산 2실점(오늘이 오랜만에 실점인...)에 불과한 정해영도 있고요.
최지민도 올해 안 좋을 뿐이지 작년에는 LG 상대로 9.0이닝 동안 피안타율 .133, 피OPS .429의 극강의 모습이었어요. 최지민만 구위와 제구를 회복하면 LG 상대로는 무려 4명의 왼손 계투요원들을 적재적소에 투입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8월에 ERA 제로를 기록하고 있는 김기훈도 있고요.
개인적으로 정해영이 LG 상대로 좋은 성적을 기록하는 이유는 홈런 타자 숫자가 상대적으로 적고 국내에서 가장 홈런 치기 어려운 홈구장을 쓰는 팀이 LG이기에 '뜬공 기적형 마무리'투수라서라고 생각합니다. 오늘 이영빈에게 맞은 타구도 중앙 담장이 가장 깊은 잠실이었다면? 잡혔을 지도 모르죠.
더불어서 KIA 타자들이 올해 LG 불펜을 잘 공략하고 있는 것도 이유 중에 하나이기도 하죠. 유영찬의 KIA전 피안타율이 4할이 넘고, ERA가 8.10입니다. 유영찬 다음으로 뛰어난 불펜인 김진성도 올해 KIA전에서는 ERA 6.35, 피OPS .987을 기록하며 재미를 못 보고 있고요.
결국, 그동안 왼손투수를 많이 수집하고 육성한 결과가 LG 상대로 작년과 올해 모두 우위를 가지게 된 원인이 되지 않았나 싶습니다. 불펜투수들이 꾸준히 잘 하기 어렵지만, 앞서 언급한 최지민이 회복하고 김기훈이 지금의 감각을 계속 유지한다면 KIA는 왼손 투수만으로 6명을 불펜으로 투입하는 리그에서 가장 '유니크한' 팀이 될 수도 있어 보이네요. 그야말로 좌파 타이거즈 ㄷㄷㄷ
김도영, 최원준의 부상이 크지 않아서 다행
오늘도 타자들은 참 잘 치더라고요. 경기 전에는 LG 선발 에르난데스의 슬라이더가 너무 뛰어나서 우타자들은 공략하기 어려울 거라고 봤어요. 그래서 소크라테스, 최형우, 나성범의 역할이 중요하다고 봤죠. 그도 그럴 게 에르난데스는 올해 우타 상대 피OPS가 .549에 불과하고, 좌타 상대 피OPS는 .886으로 좌우 스플릿이 매우 대조적인 투수였습니다.
하지만, 오늘 게임을 풀어간 건 KIA 오른손 타자들이었죠. 4회 선취점을 올릴 때 김도영의 안타가 디딤돌이 됐고, 김선빈이 2타점 적시타를 쳤습니다. 5회에도 박찬호의 적시타가 있었고요. 오히려 나성범이 에르난데스의 하이 패스트볼에 고전하면서 아무 것도 못 한... 그 정도로 타자들의 타격감이 좋아 보입니다. 김도영의 첫 타석 타구도 맞는 순간 홈런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잘 맞은 타구였고요.
특히 요즘 박찬호는 '내가 왜 1번 타자면 안 되는데?'라는 메시지를 온 몸으로 표현하고 있죠. 요즘 치고 있는 모습 보면 타격 도사 된 느낌입니다.
하지만 식겁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죠. 5회에 김도영이 에르난데스의 150km/h 포심에 직격당해 타석에서 쓰러져 괴로워하는 모습이 나왔고, CT 촬영하러 병원 간다는 소식에 마음이 편치 않았는데 최종적으로 타박상으로 끝나서 다행이었습니다. 만약, 팔꿈치 뼈에 문제가 있었다면 포스트시즌까지 악영향이 갔을 지도 몰라요.
최원준의 부상도 위험했죠. 김범석의 타구를 잡은 것까지는 좋았는데(사실, 호수프레라고 생각...) 착지하면서 발목을 삐었으니까요. 최원준 역시 큰 부상 아니고 보호차원의 교체라서 다행이었습니다.
정규시즌 1위가 매우 유력한 상황에서 주축 선수들이 부상으로 아웃 되는 것만큼 타격이 큰 게 없죠. 네일의 부상, 윤영철의 부상이 바로 이 경우이기도 하고요. 다행히 네일의 회복이 빨라 포스트시즌 등판이 긍정적인 신호로 바뀌긴 했지만, 남은 17경기 선수들 부상 없이 좋은 결과로 잘 마무리했으면 좋겠습니다.
선수 단평
- 박찬호 - 아직도 내가 9번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해?
- 소크라테스 - 확실히 좌익수 수비가 좀 어설프다.
- 홍종표 - 광주로 가는 길에 쓰레기 좀 주웠나 보다.
- 최형우 - 솔직히, 4회 2루타는 당연히 홈런인 줄 알았다.
- 나성범 - 에르난데스와 뭔가 안 맞았음.
- 김선빈 - 안타보다 더 빛났던 6회 정확한 홈 송구
- 이우성 - 여지 없이 반복되는 아쉬운 수비. 내년에는 외야수로 다시 나가는 게 어떨까요?
- 한승택 - 대타? 나 한승택인데요?
- 최원준 - 큰 부상 아니어서 다행이지만, 언제쯤 수비가 더 늘어날까...
- 박정우 - 부상으로 들어 온 타자가 안타 1개 쳤으면 할 일 다 한 거
- 양현종 - 5회까지만 던지고 내려왔어야...
- 이준영 - 홍창기를 삼진 잡았을 때의 바깥쪽 하이 패스트볼을 더 적극적으로 써야 한다.
- 전상현 - LG 상대 ERA 7.71, 피OPS .923. 포심을 다 알고 치는 느낌
- 정해영 - 사실상 최근 4경기 3피홈런. 하지만 후속 타자는 삼진 하나 곁들이고 다 잡았으니 칭찬해줄게